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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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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9. 20:31 횃불/1996년

차별이 없다

-O. J. 스미스-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3:22,23).

 

두가지 밖에는 없다

오늘날 이 세계에는 두 부류의 사람 밖에는 없습니다. 죄 있는 사람과죄 없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죄인과 성자 두 부류입니다. 당신도 이 두 부류 중 한 편에 속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든지 그렇지 안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길도 두 길 밖에 없습니다. 멸망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과 하늘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 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이 두 길 중의 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넓은 길 아니면 좁은 길인데 중간 길은 없습니다. 즉 당신은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도 두 주인 밖에는 없습니다. 한 주인은 하나님이고 한 주인은 마귀인데 당신은 두 주인 중 하나를 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 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속했습니까? 그리고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한편에는 유죄판결문이 붙어있고 다른 편에는 무죄판결문이 붙어있습니다. 당신이 선한 생활을 했든 악한 생활을 했든, 당신이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은 유죄든지 무죄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수천명이 다니는 교회의 교적부에 이름이 등록된 사람일 수도 있고 교회의 활동적인 일꾼일 수도 있으며 혹은 한 때 저지른 큰 범죄로 몇 해를 교도소에서 복역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차 별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유죄입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당신 위에 머물러 있으며 당신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 속한 것입니다.  당신이 지적으로 세련되고 지성인일 수도 있으며 칭찬받을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죄인의 자리에 두시고 유죄 라고 낙인을 찍는 것입니다.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다 동일하게 타락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죄인이라는 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대홍수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인류 전체를 멸망시킨 저 대홍수를 생각할 때 우리 앞에 그려지는 환상이란 비참합니다. 도덕적인 생활을 하던 선한 죄인들이 무섭게 타락한 죄인들과 함께 그들을 영원으로 횝쓸어버린 사나운 물결 밑에 죽어갔던 것입니다. 오직 두 부류 밖에 없었으니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과 방주 밖에 있던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많았느냐 적었느냐,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그들이 착했느냐 아니면 악했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복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안전한 방주로 피하라는 경고를 무시하였고 결과적으로 선택의 길이란 없었습니다. 문제는 방주가 아니면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의 통곡을 했으나 그들의 눈물의 기도가 그들을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대홍수를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모두 동일하게 멸망했습니다. 그들이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살인했거나 당신의 손이 붉은 피로 물들었기 때문에 멸망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의 피난처인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했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이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2:3). 들어보십시오! “악인들이 지옥에서 불탈 것이요 하나님을 잊은 나라들도 그러하리라!” 당신은 외적으로 대단히 선한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오늘날 행해지는 많은 범죄 사건에 한번도 관련된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구원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등한히 여기고 잊어버린 까닭에, 당신은 유죄이며 따라서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도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파멸하셨을 때, 그 성에 살던 사람들이 다 동일하게 범죄했고 타락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중에는 흉악범도 있고 가벼운 죄를 범한 사람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들 모두가 다 범죄자들이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전부 유죄였습니다.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떨어질 때 남녀노소는 물론 선인 악인의 차별 없이 모두 멸망했습니다. 모두 그 도시 안에 있었으며 같은 부류에 속했으며 모두가 유죄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들

애굽의 장자들이 모두 동일하게 악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의심할 것 없이 그들의 대부분은 훌륭한 정치가, 시인, 철학자, 제사장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애굽기 12:13)라고 하셨습니다. 문인방과 문설주에 피가 발라진 집은 무사했지만 그러지 않은 집의 장자는 죽었습니다. 죄의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복종과 불복종의 문제였습니다. 피가 뿌려져 있었는가, 아닌가의 문제였습니다.  여기에도 역시 두 부류의 구분이 있었습니다. 즉 피로 덮음을 받은 사람들과 피로 덮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보호되어 있습니까? “영혼을 속죄하는 것은 피 “( 17:11)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9:22). 하나님은 누구도 변개할 수 없는 말로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12:13). 당신은 피로 덮여졌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경고를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의 물결이 당신을 뒤덮을 것입니다.  죽음과 영원은 아직도 당신 앞에 놓여있습니다. 이것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모두 유죄

교도소에 가 보면, 여러 부류의 죄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살인자로부터 경 범죄인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유죄이며 다 정죄된 것입니다.  깊은 물 속에 빠져야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한 길 물속에 빠져도 익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의 죄가 당신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며, 멸망의 무리 속에 던져지는 것은 수천가지 죄의 결과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2:10)!

어떤 사람이 열개의 고리로 엮인 쇠사슬에 매달려 있다고 가정합시다. 갑자기 쇠줄이 끊어져 그는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조사하여 본 결과는 그 중 한개의 고리만 끊어지고 다른 아홉개는 아직도 단단히 엮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쇠줄은 끊어졌습니다.

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이라는 율법으로 묶여 있습니다. 우리가 그 중의 하나를 깨뜨렸다고 합시다. 그것이 비록 열개 중의 하나라 할지라도 우리는 율법을 깨뜨렸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는”( 2:10)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죄

그래도 당신은 무죄라고 한다고 합시다. 당신은 결코 범죄한 일이 없다고 합시다. 나는 당신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를 지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이 유죄 언도를 받을 수 있는 범죄 중에 가장 몸서리치는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 한 죄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사랑을 거절했고 그분의 부르심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렸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불신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 죄는 성경에 지적된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이것은 배은의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선물로 주셨는데 도대체 감사할 줄 모른다면 당신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종류의 죄입니까?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입니까? 아닙니다. 들어보십시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 16:8,9).

불신앙! 이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입니다. 당신은 친구의 선물을 거절하므로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의 영원한 구원이 놓여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하고, 또 좀처럼 생각도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바로 이 순간 당신은 불신으로 유죄인 것입니다. 당신이 범하고 있는 가장 무서운 죄,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구원에 관한 잘못된 생각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거짓 경험과 거짓 터전에 신앙의 기초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실 구원 받지 못했는데 구원받은 줄로 믿고 있습니다. 수천 수만의 교회 참석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천국 소망을 가지는 원인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몇가지 단순한 질문을 해보면, 그들의 대답은 이방인만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마귀가 그들의 눈을 멀게 했고, 귀를 먹게 했고, 이해를 둔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거의 먹과 같은 암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러한 상태에 그들을 가두어 두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며 제직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선하고 도덕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믿으며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드리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정받는 신자가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되고 천국에 들어갈 것을 충분히 기대하고 이 세상을 떠났는데 막상 가고 보니 천국문은 그들을 향하여 닫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얼마나 뼈저리고 처참한 실상이겠습니까?

 

구원에 대한 사람의 생각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생각은 그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영생이 선물인 것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노력과 공로로 구원을 성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찌는듯한 햇볕 아래에서 못이 박힌 널판 위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생을 벙어리로 지낼 것을 서약하는 사람도 있고, 손이 빳빳하여질 때까지 두팔을 높이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백마일의 순례여행을 기어가거나 걸어서 갑니다. 구원을 받으려고 수천명이 겐지스강에서 목욕을 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희랍정교나 유대교나 로마 카톨릭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행위의 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의 쇠사슬이 인간을 얼마나 심한 고통 속으로 끌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번 영생은 선물이고 따라서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나타내셨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생은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없다

인간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는 인간이 조작한 피가 인간으로부터 하나님께로 흐릅니다. 그것은 보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로 흐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양의 탈을 쓴 거짓 목자들이 우리 청년들에게 전쟁터에서 죽으면 구원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고, 한 사람이 그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었던가요! 저는 단언합니다. 인류 역사상의 모든 전쟁에서 흘린 피를 가지고도 단 한점의 죄도 씻지 못합니다.

그러나 2,000여년 전에 갈보리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의 죄를 씻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영생을 보상으로 얻기 위해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래 전에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 19:30)고 외치셨습니다. 그분은 용서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미 완성 된 일에 인간이 무엇을 첨가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도덕이나 인간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죽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2:21)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간이 자신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은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절대로 무능하고 구주가 필요한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도덕이 당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 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며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013).

바리새인의 기도는 모두가 중심 이었습니다. “나는 금식하고, 나는 그러지 않고, 나는 이것을 하고! “ 오늘날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의 토대에 관하여 물어보면 수천명이 나는 교회에 나가고, 나는 십일조를 바치고, 나는 주일학교 반사고, 나는 세례 교인이고, 나는 교회에서 활동적인 인물이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입니다. ! ! 그리스도는 도대체 생각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그 일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하는 것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괴수라고 한 바울과 얼마나 다른 생각입니까!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성품인 죄인의 자리에서 떠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를 자랑합시다.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을 기억합시다!

 

구원의 거룩한 섭리

구원에 대한 인간의 계획은 언제나 보상을 토대로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은혜입니다.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과 어떠한 사람이 되는 것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2:5)고 하십니다. 은혜는 보상의 정반대입니다. 만일 구원이 은혜로 이루어진다면 보상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습니다. 만일 구원이 보상으로 이루어진다면 은혜를 통하여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보상의 결과이든지 은혜의 결과이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은혜는 성경에서 위대한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설명한 구절 가운데 가장 반가운 해답이 로마서 3:24에 적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 예로 구속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뜻은 다시 사다라는 뜻입니다. 인류는 첫 아담으로 인하여 사단과 죄와 죽음에 팔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우리의 죄를 친히 지고 그 죄값을 치룸으로써 우리를 사단의 노예 시장에서 다시 샀습니다.

그분이 치룬 값은 그분의 생명의 피였습니다. 저 정열의 사도는 외치기를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고 했습니다. 구속의 댓가로 지불된 것이 돈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배로운피였습니다. 따라서 구속의 값이 완전히 치러졌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값없이 라고 번역된 단어는 요한복음 15:25연고 없이라는 단어입니다. “저희가 연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등의 이유나 동기가 없이 미워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방법인데 연고없이”, “값없이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동정을 받을만한 선함이 없습니다. 그분이 의롭다 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 위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는 공로가 없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도저히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을 구할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법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두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법을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키지 못한데 대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죽음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6:23),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18:4). 법은 언제나 그 법칙을 따르며 그 법을 깨드리면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보내어 인간 죄의 화목제물혹은 만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므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5). “저는(그리스도)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값인 죽음을 치루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게 된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필요

니고데모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철저하였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사람 앞에서 외형적으로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활의 모든 행동은 종교적 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흠없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야,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나는 네가 선하고 도덕적인 인물인 것을 안다. 너는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 그러나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게는 영적 생명이 없는 것이다 너는 악과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 그 까닭은 네가 한 그 모든 일이 네게 생명을 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니고데모야! 네게는 생명이 없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기 전에는 그분을 영영 보지 못하리라. 그런고로 너는 거듭나야 한다. 새 생명을 체험하여야 한다.” 당신은 이 생명을 가졌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죽은 행위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회개에 대한 통념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하고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게 하는 일은 진정 힘든 일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그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고집합니다. 예를 들어서 회개에 관한 통속적인 관념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인간의 본능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관념 중의 하나는 사람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슬픔과 고통, 쓰디쓴 후회와 심적인 고민과 눈물을 흘리며 죄를 회개하고 용서와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죄의 회개라고 합니다.

그가 정죄를 느꼈다고 합시다. 그러나 정죄는 회개가 아니고 회심을 형성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밝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경험이 구원의 요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긴 시간에 걸쳐 소위 죄를 회개 (사실상 회개가 아니지만)하면 하나님이 결국은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를 구원하시리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죄로부터의 완전하고 자의적인 떠남을 결과로 하는 마음과 목적의 변화인데 이것은 언제나 구원의 믿음에 포함되며 반드시 구원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와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법을 불복종하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을 쳤다고 가정합시다. 이것이 당신을 구원하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은사를 이러한 행위의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모든 행위를 하기 전에 자신의 모든 행위에서 떠나서 즉 눈물, 기도, 회개, 고백 등을 떠나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의 흘린 피를 의뢰하며 당신의 믿음을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신 갈보리의 그리스도 위에 놓고 그분이 모든 죄값을 치렀다는 것을 믿는 순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우리가 전도지를 배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다 한장씩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가가 호호 방문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때 만일 한 사람이 우리 곁에서 무릎을 꿇고 전도지를 한장만 달라고 구걸을 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욕할 것입니다. “저런 저런, 저 사람들 보게, 저 사람이 저렇게도 애원을 하는데도 전도지 한장을 안주는구먼. 도대체 왜 그럴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모두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가 할 일은 일어나서 받아가면 되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하여 등을 지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구걸하고 애원하고 졸라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그분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아들을 보내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분은 멸망하는 인류를 양하여 손을 내미시고 와서 잡아서 받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물을 주시며 인간들이 그것을 받기를 간원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때 우리는 기도를 합니까? 즉 졸라대느냐 말입니다. 주는 사람을 안다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미 주어진 선물들 달라고 간구한다면 그것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 대한 큰 모독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선물을 받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꾸고 그분의 선물을 받고 그분께 감사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구절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이 결정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사도행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43에 고넬료에 관한 이야기에서 첫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하는 중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을 얻으리라.”

다음 사건은 13:39에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전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사람(예수 그리스도)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사건은 16:31에 있는데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말한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오직 믿음

그러면 영생은 오직 믿음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4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16:3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20:3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느니라”( 6:47).

나는 예수의 생명을 받을 뿐,

그것이 나의 할 일이니

성령은 재창조 하리라,

나의 새생명을 위하여.” 

 

그렇습니다. 단순합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그 나머지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 구원의 기초이고 믿음은 죄인과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준비된 역사(役事)를 의뢰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참 복음적인 회개가 따르며 따라서 새 생명으로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구원의 믿음이 아닙니다.  옛것은 모두 지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새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좋은 소식이 아닙니까!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7). 믿음이 어떻게 옵니까? 하나님께서 죄에 관하여, 당신에 관하여, 그분의 아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들음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거나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으로가 아닙니다. 몸부림을 치거나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거나 조용히 묵상함으로가 아닙니다. 

당신은 죄를 지었으며 당신은 유죄입니다. 그 까닭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하나님의 선고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살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저는 오늘 당신에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요일 1:7)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식이며 좋은 소식입니까! 당신은 이 소식을 믿지 않겠습니까? 이 구속의 댓가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모두 오십시오! 길 잃고 방황하는 죄인의 자리에 서서 차별이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유죄인 것을 인정하십시오!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유죄 언도를 받은 무리 중에서 택하여 하늘로 가는 좁은 길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멸망의 도시를 떠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개인의 구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에게 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1:12) 때문입니다. 그분을 지금 그 자리에서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모셔 들이십시오!

 

(1996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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