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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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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9. 20:33 횃불/1996년

잊혀진 명령- 거룩하라

13: 죄에 대한 해부와 회개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말과 행동, 생각 또는 동기이다( 3:23).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어기는) 모든 것이며 악을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죄이다( 4:17). 의심을 가지고 하는 모든 것이 죄이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인간의 의지와 법을 어기는 것이 죄이다(요일 3:14). 죄는 우주적이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7:20). 죄는 선천적이다.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잉태되어 태어난다( 51:5). 죄는 퍼지는 습성이 있다. 사람은 완전히 타락했으며 인간의 모든 분야에 죄가 스며 들었다( 3:1418). 사람은 책에 기록된 모든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1:1315). 사람은 그의 생각(마음)에 서 사람의 눈이 볼 수 없는 죄악의 골짜기를 헤맬 수 있다. 사람은 처음에 악한 것을 생각하다 그것을 즐기고 나중에는 그 죄 가운데 빠지게 된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다( 51:4).

인간이 받는 고통에서 죄의 심각성을 보며, 우리 주님의 받으신 고통과 불신자들이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서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본다.

죄는 사람을 구속한다( 6:15,16). 죄는 그 포로들을 정욕과 탐심 그리고 온갖 악한 습관으로 잡아맨다.  죄는 사람을 속인다. 죄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 형벌을 피할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건져 주지 못한다. 죄는 보기에는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그 뒤에는 추잡함이 도사리고 있다.

죄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보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를 쉽게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도 우리에게는 용납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죄있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변호한다. 다른 사람의 죄는 우리의 부패한 마음을 위로한다.

죄는 마음을 강퍅케 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죄를 범할 때 우리의 양심은 상당한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계속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양심의 소리는 적어진다. 어느정도 지나면 이제 죄를 쉽게 범하게 되고 양심은 전혀 반응이 없게 된다. 즉 죄에 대해 무감각한 자가 되는 것이다.

죄는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게 한다.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그는 하나님과 그의 아내에게 책임을 돌렸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내게 주므로····”( 3:12). 이브는 사단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13). 이제 그의 후손들은 환경이나 부모 또는 그 동료들을 비난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이 보험회사에 말한 사고의 이유들이 있는데 다음은 그 몇가지이다.

보행자가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해서 그만 들이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길을 다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번 그를 비켰는데 결국 치고 말았습니다.”

길로 막 나와 잠깐 장모님을 보는 사이에 그만 차 뒤를 들이 받았습니다.”

전봇대가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내 차 앞을 쳤을 때 나는 그만 길옆으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는 절대로 감출 수 없다( 4:13). 이 세상에서 은밀하게 지은 죄라도 하늘에서는 밝히 드러나게 된다. 죄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죄는 누룩처럼 일한다.  거짓은 다른 거짓으로 덮어야 한다.

사람이 부도덕한 죄를 범하면 이미 죄를 지었으니 될대로 되라고 방치할 수도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묵과하는 경향이 있으며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일수록 죄를 정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죄는 마치 눈덩이와 같다.

죄는 무죄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며 그 후 세대까지 고통을 가져온 다. 알콜 중독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그 자녀들에게까지 전하며 에이즈도 피를 통하여 무죄한 자들에게 전염시킨다. 마약도 산모들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친다. 그 누구도 이러한 죄의 영향에서 무관할 사람은 없다. 선이든 악이든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죄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그 영향을 미친다. 죄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 그리고 몸에 그 영향을 미치며 그 들을 영원한 사망과 지옥으로 인도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지 않고서는 죄의 결과로부터 피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우리 죄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의 삶에서는 어떻게 역사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다윗은 준수한 외모와 건강, 명예, 지위, 재산, 가족, 친구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왕위에 앉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또 장래가 아주 밝게 보장된 사람이었으며 온 세상이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태함에 빠져 방심하게 되었다. 왕들이 출정할 때가 되었을 때에 다윗은 궁전에 남아 호화로운 낙을 누리며 안주하였다 만일 그가 바쁘게 일했더라면 자신의 삶을 망칠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을 복종시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사단에게 송사할 기회를 주고 말았다.

시험! 그는 방심하고 있는 동안 궁전 뜰을 거닐며 건너편에서 목욕하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그의 마음은 뛰기 시작했다. 그는 공상에 공상을 거듭하다 그녀를 원하게 되었다. 그 리고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 그녀를 갖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왕으로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는가?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그러나 한쪽에서 마음이 걸렸다. 마음에서 그의 양심은 안돼! 안돼! 안돼! 그래서는 안돼. 그것은 죄야. 그것은 간음이야. 그만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를 그에게 데리고 온 신하도 그에게 말하기를 그에게 가장 충실한 신하 중의 한 사람의 아내라고 이야기했다.

격렬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옳고 그른 것은 아주 분명했다. 가장 현명하고 합당한 것은 양심의 소리를 듣고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여인을 갖고자 하는 더 강한 정욕이 있었다. 그것이 비록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파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만 했다. 정욕이 불타는 그 순간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일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기꺼이 그의 행복이나 가정, 그리고 평판을 희생하기를 원했다. 

 

무가치한 선택

그래서 그는 무가치한 것을 선택했다.  정욕이 양심의 소리를 몰아내었다.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육체의 정욕이 그에게 있어서는 더 설득력이 있었다. 심지어 하늘에 대한 소망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 움도 그것을 통제하기에는 미약했다. 그는 일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간증, 가정에서의 존경, 친구들의 존경, 그리고 훌륭한 인격의 능력을 져버렸다.

알렉산더 맥클라렌 (Alexander Maclaren)그는 그 자신이 의에 목말랐던 것을 잊어버렸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내던져 버렸으며, 그 영혼을 흑암에 두고, 성공에 종지부를 찍었고, 남은 삶을 재난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으며 대피에 그의 이름과 종교를 비난하는 자들의 표적이 되게 하였다. 사람으로서, 왕으로서, 군인으로서 그는 모자라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렸다. 겉에서 보기에 죄는 참으로 아름다웠으나 이제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되었다. 그는 부정함을 느꼈다. 그는 그것을 합리화시키려 했지만 죄책감에 빠지고 말았다. 죄에 대한 그의 양심의 자각은 그에게 심한 아픔을 남겨 놓았다. 그는 그것을 덮기 위하여 그 충성스런 신하를 맹렬한 싸움터에 보내 죽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태중에 있는 아이를 그 신하의 아이로 생각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또 그 여인과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윗 왕은 아무도 사실을 모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진노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너무 사랑하심으로 다윗이 그죄 가운데 계속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1년 후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간음죄와 살인죄를 상기 시키셨는데 다윗은 이제 갓 코뚫은 송아지 마냥 저항하였다. 그는 부끄러움과 수치감 가운데 있으면서도 회개 또는 고백하기를 거부했다. 교만 또는 사악한 완고함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결국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비유로 이야기하게 하셨다. 그 비유는 어떤 부자 한사람이 한마리 밖에 없는 가난한 자의 양을 탈취한 것이었다. 다윗은 공정한 판단을 내려 그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올무였는데 왕이 거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바로 그 양을 탈취한 부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죄는 볼 수 있어도 자신의 같은 죄는 볼 수 없었다. 부자에 대한 그의 정죄는 곧 자신에 대한 정죄였다.  그는 할 말이 없었으며 변호할 것이 없었다. 

 

진정한 회개

나중에 그는 통회하였다. 그의 마음속 깊은 샘이 터져서 솟아나왔다. 그는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회개하였다. 그것이 시편 51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이에 의지하여 제가 범한 죄에 따라 저를 대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나이다. 당신의 자비는 끝이 없는 자비이기에 당신의 거룩한 법을 더럽힌 저를 용서해 달라고 이렇게 감히 간구하나이다. 당신의 길에서 떠난 저의 죄악에서 저를 씻기시며 표준에서 떠난 이 추악한 죄에서 저를 씻겨 주소서 오, 나의 하나님. 제가 당신의 법을 어긴 것을 이렇게 공적으로 시인하나이다. 저는 공공연히 죄를 지었고 저의 고백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나이다 저의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밤낮 저를 찔러 더 이상 견딜 수 없나이다. 이것이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나이다. 제가 당신께 죄를 범했나이다. 그리고 또한 밧세바와 그녀의 신실한 남편 우리야에게도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주여 그 용감한 장군에게 행했던 저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소서. 모든 죄는 무엇보다 먼저 당신에 대한 죄라는 것을 알았나이다.  당신의 법이 손상되고 의지가 경멸을 당하여 그 이름이 멸시를 당했나이다. 그래서 저도 당신편에 서서 제 자신을 정죄하나이다. 당신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으시며 아무도 거기에서 흠을 찾을 수 없나이다. 주여 제게는 선한 것이 없나이다. 저는 죄악 중에 잉태하여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 그렇다고 제가 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저의 어머니에게 돌리거나 변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제가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저의 본성 자체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죄를 싫어하고 사람 속에 있는 진실함을 원하시기 때문에 당신께로 옵니다. 저의 마음 속에 지혜를 가르쳐 주옵소서. 당신은 문둥병자들에게 청결의 예식으로 우슬초와 흐르는 물을 사용하라고 하셨나이다( 14:18). 주여 저도 도덕적으로 문둥병자와 같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제가 죄를 범한 후로 저는 찬송을 잃었나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 버린지도 오래 되었나이다. 주여 저로 하여금 다시 기쁨의 음악을 듣게 하소서.

제가 죄를 범한 이후로 저는 마치 주께서 제 뼈를 부러뜨려 불구자로 만드신 것과 같음을 느끼나이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의 거룩한 잔치에 나올 수 없나이다. 주여 저를 고쳐주사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그 즐거운 잔치에 저도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오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저의 죄와 심판에서 당신의 얼굴을 돌이키소서. 저의 이 큰 죄악의 자욱을 없애주소서.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저를 찌르나이다. 돌이켜볼 때 모든 문제는 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나이다. 저의 생각이 부패했었고 죄를 범할 때까지 제 안에 들어온 그 악한 생각을 품고 있었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이제 제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소서. 샘이 깨끗해야 강물이 깨끗함을 아옵나이다. 주여, 제 안에 속사람을 새롭게 하사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기게 해주옵소서.

주여, 저를 포기하거나 당신의 존전에서 쫓아내지 마소서. 당신의 존전에서 쫓겨난다거나 성령을 제게서 취해가신 다는 것은 견딜 수 없나이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불순종하는 이들에게서 당신은 성령을 거두어 가심이니이다.  사울에게도 그렇게 하셨나이다(삼상 16:14). 제가 그 일을 생각했어야 했나이다. 주여, 부디 그것만은 제게 허락하지 마옵소서. 앞에서 제가 고백한 것처럼 저는 찬송을 잃었나이다. 제 영혼이 아니라 제 입에 찬송말입니다. 당신의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말입니다. 이 제 당신 앞에 죄를 고백하고 버리며 회개함으로 나아오니 제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다시 말해 모든 일에 당신을 순종하며 기쁘게 해드릴 수 있도록 저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의의 길로 행하게 되리이다. 

죄를 용서받은 저의 경우가 다른 범죄 자들에게도 좋은 증거가 되리이다. 저도 그들에게 용서와 평강의 길을 전하겠나이다. 그들이 당신이 제게 하신 용서에 대해 듣게되면 그들도 당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게 되리이다. 주여! 피를 흘림이 죄에서 저를 깨끗게 하시면 온 세상이 당신의 구원에 대한 저의 간증을 듣게 되리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야의 피에 대한 죄책이 저를 무겁게 누르나이다. 저를 깨끗케 하소서. 제가 영원히 당신을 찬송하리이다. 저의 죄로 인하여 제 입이 봉함을 당하였사오니 저의 죄를 용서하사 제 입을 열어 당신을 찬양하며 경배하게 하소서.

주여, 저는 저의 죄사함을 위하여 의식이나 예식을 의지하지 않사옵나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의식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옵니다. 만일 당신이 짐승의 제사를 원하신다고 생각했으면 당신께 가져왔으리이다. 그러나 당신은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당신이 제사나 제물들을 제정하시기는 하셨지만 그것들은 당신이 원하시는 최선이 아니옵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 앞에 이렇게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왔나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원하시는 제사이옵나이다.

주여, 이제 제 자신을 포함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옵니다.  그들에게 선을 베푸소서, 예루살렘의 성벽을 다시 세우소서, 저의 죄가 당신의 일의 진행을 방해했으며 당신의 이름에 불명예를 돌렸나이다. 이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행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버리며 당신과 함께 동행할 때에 당신은 우리의 의의 제사를 인하여 기뻐하시리이다. 당신께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제사가 당신의 마음에 기쁨이 되리이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우리가 수소를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동성연애를 포함해 모은 성적인 죄에 대해 다시 생각 하게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성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사회이므로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1996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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