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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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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3. 10:28 횃불/1996년

고난의 의미와 그 축복(2)

3. 고난의 유익과 그 축복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은혜에 넘친 밭은 유익과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은 진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여( 48:10)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1)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주시며 잠시 시험 가운데 두심은 우리를 보다 더 완전하게 만드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 2:10)하신 것입니다.

고난은 완성의 첩경입니다. 고난이 없는 곳에서는 완성도 없습니다. 고난이야 말로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양약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그 약이 잠시 동안은 써서 우리가 먹을 때에 괴롭고 힘들지만 그 고난의 체험을 통해서 건강을 다시 회복케 됩니다. 시험을 받아 고난 중에 있을 때 주님의 친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스런 채찍과 너그러운 가르침을 보게 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는 표증이요, 징계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하시는 자녀가 되었다는 아버지의 목소리요, 채찍질은 우리를 그분의 참 아들로(사생자가 아닌) 받으셨다는 기쁘고 복된 종소리와도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참 고난과 그 교훈을 통해서 우리는 연단을 받고 바로 잡아지고 양육됩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성장할 수 없으며 이 귀한 고난의 진리를 인식하고 체험하지 못할 때 참된 완성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고난의 쓴 잔을 마심으로써 그분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주께서 고난을 거절하거나 회피하셨다면 멸망할 죄인을 구원하시는 천상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금강석보다 더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의 결정체입니다. 만일 주께서 타락하지 않은 다른 영이나 영계를 주관하시려면 이런 처음이자 마지막인 최고의 고난이 필요없을 것이지만, 완전히 죄로 타락하여 멸망하게 된 죄인을 대속하심에 있어서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저주를 받아 십자가 위에서 모든 피를 다 흘릴 때까지 온전한 고난을 당하도록 잠시 내버려 두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신 합당하신 아버지께서는 그 고난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온전케 하심은 더욱 합당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말씀 곧 교회의 진리는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도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아들의 수난을 통하여 이미 우리를 조금도 부족 함이 없이 온전케 하신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시험과 역경에서도 그분의 온전하심과 같이, 아니 그분이 우리를 온전케 하신 것에 대하여 결코 불신함이 없이 우리가 온전케 하심에 합당한 생활을 믿음 안에서 이루어가기를 심히 바라고 계십니다. 

(2)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더욱더 주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내 것이 있을 때, 의식주가 넉넉할 때는 별로 주님을 생각하거나 의뢰하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위급하여 내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 (고후 1:9)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고난은 의뢰자를 찾게 만듭니다.

(3)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몸소 시험을 당하셨고 또 시험받는 자들을 도와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기도의 사람들은 모두가 고난 속에서 실망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했던 이들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이들은 주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됩니다.  고난은 주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켜서 호흡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작용과도 같습니다. 마치 우리는 산소통을 지고 무섭게 요동하는 바다 속에 들어간 잠수부와 같습니다. 잠수부의 생명은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 견고한 호스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산소를 계속 공급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오직 우리는 의뢰하는 믿음으로 값없이 숨만 쉬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고의적으로 숨을 쉬지 않거나 호흡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죽은 사람이거나 가사상태에 빠진 사람일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잠자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 하지 않는 죄를 범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고난 속에서 그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줄기찬 기도를 등한시 해서도 안됩니다.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5:13). 극심한 고난 속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았을 뿐 아니라 구원을 받았고, 엘리야가 기도할 때 3년반 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가 왔으며, 모세가 기도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고, 또 바위에서 생수가 쏟아졌으며, 히스기야 왕이 기도 할 때 하루 밤에 앗수르 군대 18 5천 명이 진멸했으며, 기도할 때 전혀 성태치 못한 한나가 자식을 낳았으며, 기도 할 때 금방 죽게 된 히스기야가 15년간을 더 살았으며, 여호수아가 기도할 때 태양이 중천에서 거의 24시간 종일 머물러 승전할 수 있었으며, 다니엘이 기도 할 때 뜨거운 풀무불과 사자 굴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그뿐 라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성경을 깨닫게 되고, 새 힘과 기쁨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 기도하게 되고 시험 중에서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4)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은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니 이는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순결해지기 때문입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친 후 더러운 것들이 사라지고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과 깨끗한 길거리가 드러나듯, 우리가 시험을 받고 환난을 거쳐나올 때 우리의 불결한 것들은 다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이 세상과 정욕에 눈이 어두워 말세에 재물을 쌓고, 심지어 주의 일을 썩어질 물질과 인본주의적인 업적으로 기준을 삼고, 자기의 기반 위에서 자행하고 있는 경우에는 언제인가는 사단의 올무와 무서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어두운 상태에서 맹렬한 불길 속의 고난을 당한 후 다시 주께로 돌아온 이들은 틀림없이 고난을 통해 순결해진다는 진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 13:9)할 때 주님을 부르게 되며 주님의 깨끗케 하심과 참 평온을 회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통해서 바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케 되며 주께 돌아와 순종케 됩니다.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빨래하는 자의 잿물과 같으리라”( 3:2).

(5)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영원한 소망과 깊은 위로와 폭 넓은 기쁨을 얻게 됩니다. 전쟁과 그 살육 속에서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고, 죽음을 맛본 사람이 생명의 귀중성을 깨닫듯, 우리는 그리스도의 깊은 고난 속에서만 참된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3,4)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홍해를 건너 메마른 광야와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내산을 거쳐 마지막엔 요단강까지 건너간 젊은 세대들만이 가나안의 큰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모든 역경을 통과한 후에 수없는 축복과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주의 경륜을 따라 일터와 고향과 친척을 떠나 무조건 앞으로 나아간 아브라함이나, 무죄한 의인 욥의 피나는 고난이나, 이스라엘인들의 40년간의 광야 생활이거나, 주께서 들어 쓰시기 전의 모세의 80년간의 긴 세월은 결코 무의미한 허송세월이 아니라 주께서 고난의 시련을 통해 온전하도록 훈련시키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시켜 주신 이후 즉시 데려가지 않으시고 죄악과 고난이 들끓는 이 세상에 그대로 잠시 놔두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이 땅위에서 주의 뜻을 이루며 고난 가운데서 더 온전하게 가르치시며 시련을 통해 하늘의 상급을 더 많이 얻을 기회를 제공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고난은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6) 고난은 하나의 미덕으로 생명의 상승 작용과도 같습니다. 산 고기가 물결을 헤쳐 올라가듯 구원받아 새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죽은 고기처럼 떠내려가지 않고 자꾸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살아있는 존재의 살아 움직여 올라가는 산 행동이야말로 그 얼마나 아름다우며 힘이 있습니까! 이는 오직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40:29)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40:30,31).

고통이 즐거움의 근본이 되고, 환난이 소망을 이루며, 괴로워하는 것 같으나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유익이 되고 선이 됩니다. 고 난이 아름답게 생각되고 핍박받는 이들과 순교자들이 복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중병에서 건짐을 받고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38:17)고 주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고난은 우리들에게 감사의 동기가 됩니다.  주의 교회의 역사는 피로 인한 고난의 역사이었고, 주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세찬 고난 속에서 끝없는 감사와 힘찬 찬양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아무도 승리하지 못하며, 이것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깊은 사랑과 자비스런 동정과 이애와 용서를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예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 중에서 시를 짓게 하며 노래를 부르게 하며, 고운 마음을 가지게 하며, 겸손히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하며, 빈곤에 빠진 이웃을 돕도록 만드십니다. 고난은 우리의 눈을 주께로 향하게 할 뿐 아니라 나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경건하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 몸에 채울 때 그 영혼은 더욱 더 성령님으로 충만 해지며 그 인격은 고매해지며, 내 생활은 날마다 새 생명에 넘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흐르지 않고 항상 고여서 그대로 있는 썩은 물처럼 내 육체의 안일과 기분에 맞춰 사는 생활에는 아무런 새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높은 산을 타는 등산가나 산골짜기의 바위 틈으로 쏟아지는 물은 부패하지 않고 신선하듯, 고난의 풀무 속에서 연단되어 나온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높고 깊고 넓은 그릇이 되어 주께서 보실 때에 쓸모가 있는 귀한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깨끗한 그릇을 귀히 쓰실 뿐 아니라 고난을 거쳐 나온 단단한 그릇을 영구히 쓰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하고 신령한 인격을 본받을 수 있는 첩경입니다. 고난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며 하늘나라의 영광과 존귀, 칭찬과 상급을 풍성히 얻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고난은 내 믿음을 시험하고 저울질해 볼 수 있는 기회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울 수 있는 거룩한 축복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시련을 당할 때 비록 낙심하리만치 매우 괴롭고 참기 어렵지만, 믿음 안에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담대하게 참을 수 있고, 고난을 이길 힘과 생명의 말씀을 기억케 하시는 주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고 죄에서 떠나 경건하게 살아감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떠나서는 고난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떠나서도 고난의 참된 유익과 축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모든 고난 중에서 주님만을 위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할 뿐입니다. 이는 우리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 것들은 전부 무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1:29).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199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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