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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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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3. 10:29 횃불/1996년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

 

얼마전 어떤 지역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에 대해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직은 아이들을 다 키우지도 않아 내게는 적합지 않았고 또 무엇보다도 어려운 주제여서 한사코 사양했지만 그쪽 또한 그렇게 쉽사리 물러서지를 않아 결국은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만 이 자녀 교육만큼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몇년 전 어느 경건한 노부모님이 40이 다된 아들이 이혼한 것으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시던 일이 생각납니다만 부모는 주님 나라에 갈 때까지 그 자녀들에 대하여 마음을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마음 쓴다고 해서 그 자녀들이 노년이 되기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간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자녀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몇 가지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치관의 문제인데 어느 것이 자녀에게 있어 중요하며, 또 어느 것을 진정한 성공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교육의 방법 즉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부모의 역할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자녀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며 위로와 격려를 받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마음에 무거운 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녀교육은 100%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또한 100% 부모와 그를 양육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제 저의 이 어리석은 이론을 조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성경에 있는 양극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부모에게 꼭 경건한 자녀들만 있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렇게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이스라엘이라 큰 아들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셨던 다윗의 아들들 중에도 성경에 기록되는 경건한 자녀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께 헌신된 신실한 사무엘의 아들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악한 자들 즉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자식이라고 모두 하나님에게서 떠나 죄만 범한 것이 아니라 많지는 않더라도 그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온 경건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기는 자식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고 또 그 성격과 자질 또한 타고난 것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경건한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선두주자라고 해서 꼭 선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처럼 자녀교육 또한 전적으로 그 부모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더 높기는 하겠지만 경건한 가정에서 훌륭한 부모의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라고 다 훌륭하게 자라는 것은 아니며 경건한 가정에서 양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 곁길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신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양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핑계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것들을 양극의 진리라고 칭했으며 이 자녀교육 또는 자녀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그를 양육하는 자들의 손에도 달려있음을 시인하게 됩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사실 이 자녀교육에 대한 문제만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온통 자녀들에 대한 관심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래전 어떤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자기 아내와 의견이 맞지 않아 때로 다투는 일까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의 교육에 대해 그를 의사로 만들고 싶어서 의대를 보내야 한다고 했고 그의 아내는 친정 쪽에 법조계에서 일하는 자들이 많아 법대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의견이 맞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에게 사실 부부사이에는 자녀교육 문제로 어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고 말하고 아들이 몇 살이며 몇 학년에 다니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직 돌도 안된 아들의 대학 진학을 염려하고 부부가 다툴만큼 사람들은 자녀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녀교육은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어려움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도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야 하고 주님 안에서도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부분 모두에서 자기의 자녀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내기를 원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자녀교육은 먼저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그 자녀들을 양육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도 부모로써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일까요? 어떠한 모델을 우리는 성공적인 것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때로 부모들이 모이면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이야기하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공부는 잘 하는지, 그리고 어느 대학에 진학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식들을 인하여 즐거움을 갖지만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잘 알려지지 않는 대학에 들어간 자녀를 둔 부모들은 마음에 즐거움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녀교육은 명문대학과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갈수록 더 성공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비록 조금 부족하다 할지라도 아니 겨우 교회에 참석할 정도만 된다 할지라도 세상적으로 명문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었다면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또 세상에서는 완전히 낙오자가 될지라도 교회에는 열심히 참석하는 교회의 우등생을 만드는 것이 잘한 것인지, 물론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를 다 갖는 것입니다. 명문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신실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몸된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게 되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우리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도록 허용하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자녀들이기에, 아니 세상의 가치관과 주님 안의 가치관은 완전히 서로 다르기에 두 곳 모두의 가치관에 따라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그의 친구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너무나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가까이 지내자면 주의 말씀에서 멀어지기 쉽고 주의 말씀대로 살자면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곳 모두에서 성공하기보다는 어느 한 곳에서의 성공을 바라보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후 우리의 가치관은 변했습니다. 그리고 변하지 않았다면 변화되어만 합니다. 그러나 자녀교육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가치관이 대부분 변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헐어 버리셨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 인종간의 벽,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의 벽, 그리고 많이 배운 자들과 배우지 못한 자들의 벽이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세워지고 거기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형제 자매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자녀교육에 대한 경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된 우리가 자녀교육에 대한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하늘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영적인 것에 비중을 두고 키워내느냐, 아니면 세상적인 것에 비중을 두고 키워내느냐에 따라 자녀교육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적인 것에 비중을 두고 자녀를 기르는 일일 것입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고 유치원에 다닐 나이쯤에는 몇 곳의 학원을 보내고...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소용없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또한 영적인 것에 몰두함으로 아이들을 세상의 낙오자로 만들어야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녀교육은 먼저 부모로부터 즉 부모의 가치관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주님 안에서 자기의 자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않고는 올바르게 자녀를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두고 있는 젊은 부부들을 만나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녀들에 대한 작품(?)구상들이 주안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일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작품구상은 그 자녀들의 성격을 좌우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사례들에 따라 우리의 자녀를 양육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시는 진정한 자녀교육의 성공이 무엇인지를 알아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평가하시는 그러한 자녀교육, 그것은 우리가 실천이 어려워서 그렇지 어느 정도 우리 마음에 알고 있는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의 성공적인 자녀교육 또한 담대한 믿음과 실천이 필요한 일입니다.

 

(1996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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