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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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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4. 15:45 횃불/1999년

영원한 구원(12)

H. p. 바커

영원한 보증과 경건생활

경건한 생활을 위한 성경의 호소는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위협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은사와 확증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위협으로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만들어보겠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만약 은행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헌신에 대한 보장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우리의 생애를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희생에 온전히 바칠 수 있겠습니까? 정결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위한 성경의 가장 강력한 호소는 믿는 자의 영원한 보증을 확실히 일러주는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내주고 말하기를, 이 숙제를 잘하면 성적이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 선생님은, 모든 정규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숙제와는 상관없이 그 과목에서 낙제가 된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때에 학생들은 숙제를 잘 해야겠다는 의욕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숙제를 잘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말로 신자를 위협하는 것은 오히려 경건한 생활에 대한 의욕을 빼앗아 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 해 동안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던 어떤 신자가 어쩌다 조금 옆길로 나갔다고 하여 그 결과로 구원을 잃게 된다면, 그 사람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1,2).

이 말씀에 나타난 대로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권면은 구원을 놓친다는 위협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어는 바울이 앞장에서 열거한 하나님의 모든 자비를 전제한 말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에 관한 말씀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칭의 -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되었다( 3:28,5:1).

● 그리스도와 같게 됨 – “그리스도안에있으므로 죄와 율법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거듭남을 얻었다( 6:1-10).

●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아래 있다( 6:14).

● 성령님이 내재하신다( 8:1-27).

●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8:26).

● 하나님이 택하여 주셨다( 8:33).

● 영광에 이르게 되었다( 8:18).

●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 8:35-39).

●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시는 데서 이 신실하심이 나타나 있다( 9-11).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 6:15).

이 말씀에서도 그 호소하는 내용이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5:19,20).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호소도 성령님이 신자들 안에 거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값으로 사셨고우리의 몸과 영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1-3).

여기에서도 그러므로라는 접속어는 앞장에서 언급한 바 있는 기초들, 즉 합당하게 행하라는 호소에 기초가 되는 것들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이러한 기초가 구원을 잃는다는 위협이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앞장을 보면 거기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신분과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모든 것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 1:4).

● 우리는 구속을 받았다( 1:7).

● 우리는 기업을 얻었다( 1:11).

● 성령의 인을 받았다( 1:13).

● 우리를 하늘에 함께 밝도록 하여주셨다( 2:6).

● 한 시민으로서 성도가 되었다( 2:19).

●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다( 2:22).

●그리스도의 사랑( 3:19).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3:20).

그러므로 거룩한 생활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보증을 깨달은 결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2:11,12).

여기에서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일에 대한 호소도 아비가 자기 자녀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듯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많은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책방과 구원에 대한 위협에서 멀리 떠나 있는 호소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나라와 영광의 세계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로마서 11:29에서 언급된 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유의하기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은 철회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2:11,12).

여기에서 우리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살아갈 것을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는 지를 유의해 보십시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도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위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3:1-3).

여기에서도 위엣 것을 찾으라는 호소가 구원을 놓칠지도 모른다는데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졌다는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영원한 보증이 경건한 생활을 남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6).

여기에서도 신자들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호소를 다음 사실들에 기초를 두고 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자들이라는 사실, (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라는 사실, (3)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 이 사실들은 우리에게 조금도 틀림이 없는 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3:5).

여기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어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4절의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호소하고 있는 여기 이 말씀도 우리가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구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이 말씀은 무조건적인 말씀이며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정결한 생활을 해야겠다는 동기는 이 말씀에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열거한 어떤 죄악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지 못하게 되는 일(구원을 놓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신자가 죄를 범하려 할 때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특별히 가르쳐 주신 이 귀한 말씀을 망각하는 처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여기의 이 호소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벧전 1:23)라는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즉 이 호소의 기초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보증인 것입니다.

만약 구원받은 사람의 새 생명의 영원성에 대한 사실이 부인된다면(즉 영원한 보증이 부인된다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이 모든 악한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의 양식을 사모하라는 근거와 기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썩지 아니할 씨로 거듭났으며 또한 우리가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깨닫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북돋아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여기의 이 호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위하여 오실 때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는다는 고린도전서 15:51-57 말씀의 주님 재림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호소가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우리의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잃을지도 모른다면 이 호소는 그 호소력을 상실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이 이 호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5-10).

자지 말고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라는 이 호소는 우리들이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진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라는 진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구원을 잃는다는 위험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존재이며 무엇을 소유하게 되었는가 하는 데 기초를 두고 권면한 것이 나타나 있을 뿐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18-22).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구속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구원을 놓친다는 위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여기의 이 호소는 우리들의 구속에 그 기초를 두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불을 들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여기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는 말씀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유의하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을 가리키며 예수님께서 오실 때 저희도 그리스도와 같이될 줄 알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소망이란 말은 어떤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아직 미래에 속한 일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가능하다는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1).

여기에서 주 안에 서라는 호소는 먼저 구절에서 나타난 사실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그가····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3:20,21).

 

여기에서 우리는 구원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런 위험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는 구원의 확증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공포(구원을 놓친다는 공포)가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의 원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기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나타내신 그 사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옛 것은 지나가고 또 율법의 저주와 정죄도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영원히 사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고후 5:15-19).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끊어질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의 대상자가 된 모든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J. F. 스트롬백(Strombeck)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받은 구원을 다시 놓치게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 가르침은, 앞에서 본 여러 가지 호소의 말씀들이 기초하고 있는 그 모든 조건들을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그 모든 조건들을 미약한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 왜냐하면 구원을 놓칠 수도 있다고 하는 가르침은, 앞에서 본 많은 성경 말씀의 조건들이 가지고 있는 불변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세속적인 현상은 영원한 보증의 진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를 바로 가르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원한 보증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교리들을 완전히 가르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영원한 보증의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치는 자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세속적인 현상을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음 호에 계속>

 

(1999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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