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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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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4. 15:42 횃불/1999년

무너진 하나님의 질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세기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실 때 거기에는 놀랍고 철저한 질서를 주셨다.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으며 또한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 다.

서두에 기록된 말씀은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에게 하신 말씀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담 이후에 인간의 세계에 나타날 인간들의 흐트러진 삶을 정확하게 묘사해 놓은 것이다.

남편을 사모한다고 하는 사모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테슈카로서 갈망, 열망이라는 뜻인데 본래는 원하다라는 뜻의 슈크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사랑하여 원한다는 뜻이 아니고 소유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어떤 새로운 번역에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고 적어 놓았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예언인가!

문자로 기록된 인류의 역사에는 이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 증명되고 있다.

모든 곳에서 여자는 남편을 여러 방법으로 주무르려 하고 주장하려 하므로 비참한 인류의 역사가 쓰여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궁중에서는 남편들이 알아서 해야 할 모든 일에 여자들이 끼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들의 뜻대로 일을 진행시키려 하여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지 아니한가?

어떤 경우에는 아예 여자들이 나서서 남자들을 제치고 모든 것을 장악하다가 망하게 된 경우가 한 두 번인가?

TV에 나오는 역사극을 보면 우리의 역사에도 이것이 핵심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천 년 동안 여자들은 여권신장을 부르짖었으며 남녀평등을 외쳐 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요즘은 민주화의 척도를 여권신장으로 기준을 삼는 경향마저 나타나는 실정인 것이다.

어떤 초등학교 여교사가 필자가 강사로 참여한 전도집회에 동료 교사를 따라 나왔다. 그는 성경 속에 기록된 남녀질서에 관해서 듣고 충격을 받아 돌아갔으며, 다음날 집회에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반박적인 언어로 질문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창세기 2 21절에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 때 남자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들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 갈빗대라는 단어는 첼라라는 히브리어로써 (), 측면, 옆구리의 뜻이다. 즉 여자는 남자의 한 편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가 주도하는 일에 있어서 돕는 배필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이것이 인류를 지으신 하나님의 질서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남자는 전체를 보는 능력이 있고, 여자는 부분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체를 통제하고 지도하는 직책은 남자에게 맞는 것이며 여기에 여자의 도움과 조언을 받아 일이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말하려는 것이요, 창조시의 질서를 말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를 강하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여자는 연약하게 창조하셨다.

남자는 밖에서 생업을 하게 창조하셨다.

여자는 안에서 가사를 돌보게 창조하셨다. 남자는 주장하게 하셨고 여자는 그 일에 동역하도록 하셨다.

예컨대 미장원에서 머리를 만지는 일이 여자들이 하는 일로 통상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미용사는 남자이며, 세계의 미용계를 이끌어 가는 것이 남자가 아닌가? 요리하는 일이 당연한 여성들의 일로 알려져 있지만 각 호텔이나 큰 음식점의 주방장은 대부분 남자이지 아니한가? 여성들의 옷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여자들이 해 왔지만 그러나 패션계의 거두는 대부분 남자이지 아니한가?

이와 같은 것은 모방의 수준에서는 여자들이 대부분 하지만 창조의 수준에 이르러는 여자가 따를 수 없도록 본래부터 질서를 두셨다. 인간은 이 순리를 거슬리려 하여 노력하지만 결국은 순리를 따라야만 한다.

나라에서나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여자들이 남자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현상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의 작은 지혜가 대세를 보는 남자들의 지혜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지금 세상은 시끄럽고 혼돈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여권 신장을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뛰고 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 이 운동에 영합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지위가 올라간 유럽이나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이혼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혼은 곧 가정파괴를 의미하며 가정파괴는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길거리나 고아원에 내물리고, 그들은 다시 불량배가 되어 사회에 악한 죄를 선물하는 것이다. 필자가 뉴욕에 갔을 때 충격적인 사실을 보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부모나 가족이 학교까지 데리고 와서 선생님께 인계하여야 하며, 수업이 끝나면 직접 인계 받아 와야 하는 것이다. 부모가 오지 않으면 아이는 파출소로 넘겨지며 이런 일이 두 세 번 반복되면 학교에 보낼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남녀 평등이 잘 되고 있는 선진국의 모습이다. 물론 남녀 질서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가까운 중국은 어떠한가? 공산당치하에서 남녀 성차별을 완전히 없앴다. 심지어 부엌일도 같이 하거나 남자가 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이혼율이 상상을 초윌하며 이혼경력 없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지경까지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수많은 부부들의 갈등을 상담해왔다. 그들 중 상당은 여자가 남편을 마땅치 않게 보고 무시하기 때문에 오는 문제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자존심이 상하니 자연히 다툼이 일어나고 폭력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근간에 신문을 보니 호주제도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모양이며 또 이 주장이 상당한 호응을 받는 것 같은데 이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벧전 3:6).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창조의 원리인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 남편은 주가 되는 것이다. 나라에는 군주나 대통령이 있는 것이며, 단체에는 단체의장이 있어야 마땅한 것처럼 가정의 가 있고 가장이 있어야 하거늘 금일의 한국사회에서는 가 무너지고 가장이 무너져가니 이것이 비극으로 가는 길목이요, 창조를 거스르는 죄악인 것이다.

2년 전에 여론조사 기관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를 모시겠느냐 물어 본 적이 있다. 응답자의 6,70%정도가 부모를 양로원으로 보내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슬프고 놀라운 일인가? 지금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에 틀림없다.

필자는 여자를 무시하고 깔보며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폭력으로 다스리는 남자우월주의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질서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아내를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아름다운 동역자로 알아 아끼고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벧전 3:7). 다른 말씀에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라고 말씀하고 있다(고전 11:3). 하나님은 창조 시에 여자의 머리를 남자로 정하셨다. 그러나 여자가 선악과를 먼저 따먹고 남편에게 주었다. 다시 말하면 여자가 남편을 주관하였다. 결과는 타락이요, 비극이요, 죽음이었으며 에덴에서 쫓겨나는 것이었다.

생각하여 보라. 머리가 몸의 각 부분을 주관하는 것이 우리 몸의 구조가 아닌가? 머리가 손발을 움직이도록 지시하고 명령하여야 마땅하지 아니한가?그런데 손발이 머리를 움직이려고 명령하고 지시한다면 이 얼마나 우습고 이상한 이야기인가? 손발이 머리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현상을 우리는 병든 자라고 말한다. 소아마비 환자나 중풍환자, 하반신마비 환자 등이 그러하다. 머리에서 신경조직을 통하여 연결되는 기능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애처롭고 안타까운 모습인가?

오늘날 창조의 질서가 무너져 남편의 권위,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 사회가 이러한 모습이다.

병든 사회, 병든 세상, 병든 인간들의 절규를 보시라. 들으시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만든 병든 사회를 들여다 보라.

필자는 어느 가정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아내의 친정은 부잣집이요, 그녀는 명문대 출신이다. 남편도 역시 비슷한 수준이며 직장도 잘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으며 가정형편은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정의 한 가지 문제점은 아내의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남편에게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여러 번 마찰이 일어나면서 겨우겨우 지내 왔는데 어느 날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였다. 남편의 감정이 심히 악화되어 그럴 테면 이혼해 버리자고 제안하였다. 여자는 속으로는 놀랍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존심을 억제하지 못하여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 가정의 그 후를 생각해 보라. 아이들의 불행과 장래를 생각해 보라. 이러한 비극이 의외로 수없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다 무엇인가? 창조의 질서를 깨닫지 못한 소경 인생들의 슬픈 삶인 것이다.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이 말씀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질서가 깨어지므로 인류가 당할 비극을 예언하여 주고 있다. 인류 역사 동안 남편과 아내를 지은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여 인류가 당한 고통은 다 기록할 수 없으며 표현 할 길도 없다.

수많은 시인, 학자, 철학자들이 행복이 무엇인가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고 있지만은 진실된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1,2).

 

(1999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