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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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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7. 16:01 횃불/ 2000년

여호수아 강해

 (약속의 땅을 정복함)

알버트 맥쉐인 지음/ 서규송 옮김

땅에 들어감(1:1 -5:12)

서문(1:1-9)

 

1장의 첫 아홉 구절은 여호수아서의 도입부이다. 우리는 1-2절에서 여호와와 교통하는 여호수아를 보며, 요단을 건너 백성을 인도하라는 명령을 보게 된다. 3-5절에서 여호수아는 그 땅의 범위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한 약속을 듣는다. 그리고 6-9절에서는 담대하여 여호와의 계명을 주의하며 순종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와 같은 구약의 다른 책들처럼 여호수아서도 그래서그리고와 같은 접속사로 앞의 책과 관련되어 있는데(우리말 성경에는 없음), 진정한 의미에서 이 책은 신명기의 마지막 이야기와 연결된다. 신명기가 민수기와 이런 방법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음이 눈에 띄는데, 이는 신명기가 광야에서 머무른 백성들을 위해 쓰여지지 않고 백성들이 자기들의 기업에 들어가게 될 때의 안내서로 기록되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신명기 34장에 기록된 모세의 죽음과 장례는 여호수아서에는 없으며,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의 귀에 친히 말씀하신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는지 모른다. 우림과 둠밈으로, 또는 시은좌를 통하여, 혹은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직접적으로 하셨는지 모른다. 여호와와 그 종이 교통하는 길에는 장벽이나 방해물이 없으므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있다.

애굽을 떠나 광야 40년 간 자신들을 인도한 위대한 인물을 잃게 되자 백성들은 위기를 느꼈으며, 그들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모세는 반석에서 행했던 실수로 약속의 땅으로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는 광야에서 죽었다. 오히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이 일을 도우셨는지 알고 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의 중대성이나 웅장함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며, 몇 마디 간단한 말씀으로 그에게 주어진 책무를 그가 들었을 때에 그가 어떻게 느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물이 넘실대는 강을 건너 2백만 이상의 백성을 인도하는 것, 전에 알지 못하던 곳에 장막을 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남은 여생을 그곳에서 정착하는 일은 작은 모험이 아니었다. 비록 이 일은 애굽을 떠날 때 목표로 삼았던 목적이었지만, 이제 그 일이 곧 이루어지려는 시점에 용기가 필요한 때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은 어려운 일을 명하실 때 그분은 그 일을 감당하는 자를 격려하시며 도우신다고 늘 약속하신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여호수아에게 그가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그가 차지하리라고 확신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미 그 땅은 차지한 바 되었다. 그분은 약속들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약속들을 받을 능력도 주시고, 그분은 계명들을 순종할 합당한 힘을 주시지 않고는 계명을 주시지 않는다. 손 마른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이나( 12:9- 13), 죽은 나사로를 향해 무덤에서 나오라( 11:43)는 명령을 생각하면 오직 주의 힘으로써만 순종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여호수아에게 있어서의 책임은 그 발을 약속된 땅에 내딛는 것이고, 팔장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안락하게 거주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책임이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과 동반하여 나아감을 배운다.

그 땅의 범위는 남쪽의 광야에서 북쪽의 레바논 숲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유프라데에서 서쪽의 지중해까지이다. 우리는 다윗 시대에도 그 땅의 일부를 가나안 족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며 하나님이 재어준 그 땅을 이스라엘은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음을 본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의 생이 끝날 때쯤에도 여전히 차지할 땅이 아직 많더라라는 글을 읽는다. 오늘날 영적인 영역에서, 비록 성령께서 우리가 그분의 뜻을 우리가 행할 수 있게 하시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업을 완전히 차지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호수아와 백성이 나아가 그 땅을 차지하는데 한 가지 중대한 장애는 그 안에 살고 있는 거인들이었다. 이 강대한 민족은 대부분의 정탐들을 겁에 질리게 했기에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세력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확신을 주시되, 비록 그들이 아무리 키가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의 대적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그는 모세와 함께 하신 여호와께서 당대에 가장 강력한 사람이었던 바로를 어떻게 패하시고 홍해에 수장시키셨는지를 모세의 삶에서 보이신 실례를 목격해 왔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리라 하신 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한 약속은 야곱에게 처음 주어졌고, 모세가 백성들을 떠나려 할 즈음에 다시 반복되었다( 31:6). 이는 그들이 건너가 땅을 정복할 즈음에 두려움을 들고 용기를 북돋기 위한 뜻이었다. 후에 적들이 종종 연합하여 공격해 올 때 이 약속은 여호수아에게 되풀이되었고 그에게 적지 않은 격려가 되었다(10:8 11:6을 보라).

세상 사람들은 가끔 공포와 겁에 휩싸이게 되는데, 하나님의 전쟁터에서 전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약점이 머물러서는 안되기에 여호수아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말씀과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듣는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불신하는 것만 드러냈으리라. 일찌기 모세는 두려워하여 마음에 겁내는 자들은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그들 때문에 전투에 임하는 다른 사람들을 겁먹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20:8). 일반병사들의 겁내는 마음이 다른 병사들에게 영향을 준다면, 더우기 군대의 대장이 겁내는 마음을 가진다면 전군의 사기는 얼마나 더 떨어지겠는가. 후일의 역사를 보면, 공포에 가득찬 사울은 공포에 떠는 부하들을 만들었으며(삼상 13:7), 이와 반대로 다윗의 용기는 그를 따르는 자들을 강하게 했다

여호수아의 용기는 전쟁터에만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면에서도 요구되었다.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누리려 한다면 분명 율법의 요구에 대한복종이 그 조건이었다. 세상의 전쟁터에서의 명성을 얻는 무모한 용기나 자연적인 담력은 이런 경우에는 아무 쓸모가 없으며 다만 비참한 결과로 끝날 뿐이다. 여호와의 계명에 대한 순종만이 성공하게 할 것이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행하든 상관없이 그분의 도우심은 반드시 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 성을 처음 공격했을 때 여호수아가 이 뼈아픈 교훈을 배웠음을 알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이 범죄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대적 앞에 무력하게 패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고는 순종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말씀을 열심히 배우는 학생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군의 총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유념하여 앉아서 묵상하는 것은 귀중한 시간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가 성공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겸손한 순종이다. 다윗은 시편 1:1-3 말씀을 기록할 때 동일한 교훈을 가르쳤다. 그가 복 있는 사람에 관해 쓸 때 바로 이 구절이 마음에 있었음이 분명하다.”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가르치는 책임은 제사장들의 음이라고 그럴듯한 주장하며 이 의무로부터 벗어나기를 변명하고, 이것을 그들의 일이라고 떠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설사 그의 할 일이 백성들의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율법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이를 잘아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슬프게도 어떤 이들이 성경을 읽되 그들 자신을 위해 성경에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읽는 것보다, 오히려 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자 성경을 보는 사람이 있음은 두려워할 일이다.

본서의 서문을 뒤돌아보면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가치 있는 교훈들을 그 안에서 찾아 살펴보고자 한다. 그 교훈들 중 하나는, 나이든 지도자들이 떠날 때 오는 변화이다. 우리 모두는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그들이 없이는 진전될 수 없다고 거의 모두가 결론짓는다. 그러나 뒤에 남은 사람들은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하며, 과거의 지도자들에 대한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의 책임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전날의 지도자에 대한 존경을 보이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이 떠난 곳에서 계속적으로 경영하는 일이다.

이 구절들에서 지도자들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고유한 일들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여호수아가 율법을 제정했던 사람이나 성막을 세웠던 사람이 아닌 여호와의 군대사령관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전임자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들을 진척시키려고 부름을 받았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더 좋은 교훈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교제의 중요성이다. 우리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경험처럼 오늘날 주님과 직접 말씀하시는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으나, 그런데도 그들이 그분으로부터 분명한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성령께서 전혀 의심을 남기지 않는 분명한 방법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성도들 가운데서 인도자가 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돌아서려는 사람들과 직면할 때는 더욱 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한 두려움 때문에 굴복하지만, 인도자들은 이 일을 바로 처리해야 한다. 진리를 위하여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인기 있는 것도 아니다. 책임 있는 자들이 진리에서 돌아서면 그 자신의 인생이나 그들이 소속하고 있는 교회에 큰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또한 명심해야 할 사실은 그들은 자신들을 나타내서는 안되며 주님을 나타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그분의 도움을 구하며 문제의 극복이 오로지 주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 겸손히 순종함이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특징이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인도하는 성도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것은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는 모두는 그들의 인도자가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말씀이 명하는 모든 것을 불순종하지 않기 위해 떨면서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임을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과 습관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들이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반응하여 나타난다. 교회들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이탈의 주요 원인은 성경을 등한히 함으로 생기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애통하게 만든다. 모든 참된 부흥은 성경으로 돌아옴으로 나타나며 또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순종함으로써 특징 지워진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아는 사람들만이 그것에 순종할 수 있으며, 말씀을 이해하는 일에 마음을 쏟게 되면 당연히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뒤따라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미래의 왕들에게 가르침을 줄 때, 그는 같은 원칙을 가르쳤는데, 이는 동일한 사본이 그들에게 주어져 그들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평생 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7:18-19).

 

여호수아의 백성에 대한 명령과 그들의 대답(1:10-18)

앞 문단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여기서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명하는 모습을 본다. 그에게 전해졌던 것은 그 자신에 관한 일뿐만 아니라 그가 인도하는 백성들에게도 관계가 있었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놀라운 소식은, 모든 백성은 3일 안에 요단을 건너 그들의 기업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라합을 방문한 정탐들이 3일간 정탐을 마치고 회보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렀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3일 간의 언급은 우리에게 조금 어려움을 준다. 두 정탐들이 이 말씀이 있기 전에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이는 쉽게 해결이 된다

그들에게 음식물을 가지고 가라는 명령은 그들이 홍해를 건너려 할 즈음에 모세가 유월절에 내 린 지침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한다. 그때 그들이 가지고 간 무교병은 여기서의 음식물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땅에 건너가려고 서두를 때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없음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애굽에서의 그 밤, 그리고 그렇게 험한 이동을 해야 할 때 양식을 지참해야 하는 중대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만나는 광야만을 위한 식량이었기 때문에 그는 또한 그 땅에 들어가면 만나가 그치리라는 사실도 예상했다. 동쪽의 지파들이 기업을 차지했을 때 벌써 만나가 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확신하는 바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자 만나가 내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만약에 백성들이 그 땅에 정착해서도 만나가 내렸다면 이는 그들 가운데서 나태함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경작을 하지 않으므로 평야가 사막화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곧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음식이 공급될 수 있다면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사람을 위하여 하시지 않으며, 기적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공급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지파들은 요단의 동쪽에서 자신들의 분깃을 취하여 정착하였으므로 요단을 건너기를 원치 않는 지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지파의 도움을 받아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취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준 권고가 다시 되풀이되었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의 거민들을 멸하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얻도록 하기 위해 무장하고 요단을 건너라는 명령을 받았다.

르우벤, ,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그들의 기업에 정착했는데, 이 지파들이 그 정착지를 얻기 위해온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제 앞으로 있을 전투에 참여하여 형제들에게 빛을 갚으라는 말을 들어야 함은 당연하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있다는 것은(그 기간 중에는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거의 알 수 없거나 전혀 알 수 없었다) 작은 시련이 아니었다.

본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11만 명의 후보들 중에서 4만 명만이 실제로 이들 지파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기로 군사로 계수된 사람들임을 알고 있다. 만약에 모두가 건넜다면, 처자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민족들에 의해 침략을 당하여 그들이 차지한 땅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지파를 대표하여 건넜던 사람들은 갈 수 있었던 모든 사람이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 동쪽 지파들의 숭고한 응답을 듣고서 여호수아는 무척 격려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불순종하려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열심까지 보여주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에게 한 약속들에 매우 유념하였으며 그 앞에 놓여있는 위대한 일을 하는데 그의 용기를 북돋고자 최선을 다했다.

모든 인도자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하기를 원하시는 바를 확실하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인도자들의 가르침이 모호하다면 그들이 순종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모두가 자신들이 행해야 할 다음 일들을 알고 있었기에 백성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앞에 놓여있는 바를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모임에서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되고 있는 바를 모르고 있다면 이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바울은 자신이 세웠던 모임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본을 보이며 또 말씀으로 명확히 가르쳐서, 그들이 증인으로서 어떻게 행하여야 하며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 가운데의 비행(非行)에 관해 불평하고 있으며, 무엇이 올바른 행위인지 자신들은 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바를 공적으로나 또는 사적으로까지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음식물 공급을 준비함은, 특히 전진과 변화가 발생할 때에는 매우 중요하다. 허기진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일은 힘을 빼는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그들이 곤란한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특별한 일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에 온전한 양식이 공급되어야 한다. 분명 만족스럽게 전해진 복음은 그 안에 성도들을 위한 자양분을 품고 있으나, 수고가 시작되기 전에 만약 그들이 적절한 사역에 의해 강건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에 약하게 될 것이다.

동쪽 지파들이 가나안을 차지하는 일을 돕는데 동의한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에 대해 신중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양심에 별로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많이 약속하는 사람들은 그 약속의 이행이 가장 실망스러움을 잘도 입증한다.

그 땅에서 모든 지파들이 적을 마주대하여 통일된 전선을 이룬 것은 여호수아에게 적지 않은 위로였다. 만약 동쪽의 지파들이 돕지 않았다면, 다시는 메울 수 없는 틈이 민족 가운데 생겼을 것이다. 모든 인도자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가능한 한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영적인 부요는 주님의 도움을 통하여 오며, 주님께서는 영적인 부요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이미 이러한 부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허락된 분깃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옳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수고의 대가로 유익을 얻었으므로, 아직 자신들의 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선한 수고를 함은 우리의 의무이다. 여호수아의 부름에 대해 동쪽 지파들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응답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받게 되는데, 인도자들의 모든 가르침과 권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임으로 그 반응이 인도자들에게 격려가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주님을 위해 말하고 독단적으로 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부름 받은 일에 적합한 자들임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인도자들은 주님의 양들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말뿐인 인도자들이다. <다음 호에 계속>

 

2000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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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