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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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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2. 17:36 횃불/2001년

보혜사 성령님

하롤드 p. 바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실 무렵 제자들에게 그들 속에 거하실 다른 보혜사(保惠師)”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6).

이 보혜사 곧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14:26), 곧 그리스도의 특사로 그리스도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를 대행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실 분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것을 받아 그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자들에게 알리시는 그리스도의 전권대사가 될 분이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으로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6:13,14).

성령님은 자신을 증거하시기 위해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신성한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사역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제삼위

세상에 계실 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이셨습니다. 이것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1:23). 삼위 중 제2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14:9).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 수년간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의 영광을 보았으며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4,18).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삼위 중 제이위가 아니라 제삼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한 몸이 예비되었지만( 10:5) 성령님을 위해서는 한 몸이 예비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은 육신을 입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신자들의 몸 속에 거하십니다. 이 신자들의 몸은 성령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성전입니다(고전 6:19).

성령님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인격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인격과 임재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성령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감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령님을 언제나 그것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는 위대하고도 축복스런 감화를 일으키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성령님 자신은 감화를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성령님 자신은 능력을 초월하시는 분이 십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 16 13,14절 말씀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이 말씀 가운데는 성령님이 한 분의 참된 인격이심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증명해 주는 일곱 가지 사실이 진술되어 있습니다. 그 사실들이 무엇인지 찾아보겠습니다.

(1) 그분은 오십니다.

(2) 그분은 인도하십니다.

(3) 그분은 들으십니다.

(4)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5) 그분은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6) 그분은 받아 가지십니다.

(7) 그분은 알리십니다

이것들 가운데 어떤 말은 능력이나 감화를 서술하는 단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전부는 아닙니다. 능력이 들을 수 있습니까? 감화가 받아 가질 수 있습니까? 물론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위에 열거한 일곱 가지 사실들은 성령님이 진실로 한 분의 인격이심을 증거합니다.

다른 곳에 보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4:30)는 말씀이 있습니다. 능력이나 감화가 근심할 수 있습니까? 특히 위에서 언급한 요한복음 16 13,14절 말씀에 3인칭 대명사 라는 낱말이 여덟 번 쓰였음을 주목하십시오(우리말 성경에는 3번 나옴-역주). 감화나 능력을 인칭 대명사 라는 낱말을 사용하여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언급할 때 그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실 때”

요한복음 15 26절에 성령님이 오실 때라는 표현은 당시에는 성령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이라고 한 요한복음 16 13절 말씀의 참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말은 어떤 사람을 어떤 장소에서 기다릴 때 쓴다면 합당한 말이지만 그 사람이 이미 그 장소에 와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성령님께서 세상에서 역사하신 사실은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1:2). 성령님은 다윗이 기도할 때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51:11). 성령님은 브사렐( 31:2,3), 기드온( 6:11,12) 등과 같은 그분의 택한 그릇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보혜사가 오실 때라고 말씀하실 때 다른 것을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의 마음에는 아주 새로운 것이 있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말씀만이 성령님의 오심이 미래의 사건으로 언급된, 복음서에 나타난 유일한 예는 아닙니다. 요한복음 14 16절에서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셨고 26절에서도 역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된 성령님의 오심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임하심과 다른 것은 비단 성령님께서 거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사실뿐만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성령님의 오심 이 대부분 어느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어떤 택한 그릇에게 능력을 힘입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성령님이 아무개 위에 임하셨다고 일반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웃니엘, 기드온, 입다, 삼손, 다윗, 아사라, 아사히엘, 스가랴 등등 위에 임하셨습니다.

이것과 대조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4 17절에서 저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고전 6:19)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 8:11)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딤후 1:14)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에안에혹은 속에의 구분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식의 돛단배와 현대의 동력선을 생각해 보십시오. 돛단배는 바람이 돛에 안길 때 배의 진행이 용이하고 빠릅니다. 그러나 동력선은 내부의 힘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 힘은 끊어지지 아니하고 지속됩니다.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산처럼 높이 일어날 때라도 동력선은 언제나 앞으로 전진합니다. 왜냐하면 그 동력선을 움직이는 힘이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돛단배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은 동력선과 같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내부의 힘에 의존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진보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쁨, 우리의 봉사, 우리의 증거 모두가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 의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안 계시다면, 그리고 우리 영혼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은혜로우신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도. 또 그분의 위대한 일들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약속과 사실

제삼위 하나님께서 지구라 불리는 이 유성에 거하고 계시다는 것은 가장 위대하고 근본적이고 심오하고 독특하고 원대한 기독교 진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삼위께서 이 세상에 거처를 정하시기 위하여 강림하시기 전에 전제되어야 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7 39절 말씀에 명백히 진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배척을 받으신 예수께서 높임을 받으시기 전에는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은 오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7)라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가 왔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보혜사께서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성령님의 오심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사도행전 2장에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시기 전에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1 3절에서처럼 성령님을 받기 위해 기도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120명의 무리가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쓴것은 물론 성령님의 오심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1:14). 그러나 돌연 기도가 찬미로 변했습니다. 세상이 배척한 예수께서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높이시매성령님을 보내사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그들 안에 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후부터는 성령님을 달라고 구하는 기도의 흔적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는 그와 같은 기도가 정당하고 적절한 것이 되겠지만 성령님이 오신 지금 그와 같은 기도는 합당치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거처하고 계시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살던 사람들이 기도한 것처럼 기도하는 것은 무지나 불신에 기인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도록 보호해 달라고, 우리의 속 사람이 성령님으로 강건해지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사 생수의 강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게 하도록,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도록 도와달라고, 또한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소망이 넘치도록 기도할 수 있으며, 또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상에 말한 것들과 같은 일들을 위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완료시상

독자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자가 지옥 가지 않도록 자기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른 기도일까요?

여러분은 아니요?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4:32, 1:14, 2:13).

신자가 영생의 선물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른 기도일까요? “그것은 옳은 기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신의 소유가 된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매한 일입니다라고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과 같은 축복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기도해야 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앞에서 한 대답과 동일한 대답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2)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모든 사실들은 매우 명확합니다. 이 황금과 같은 완료시상은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관련해서도 신약성경에 여러 번 쓰였습니다.

사도행전 5 32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 22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4 6절에도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라고 기록되어 있고, 데살로니가전서 4 8절에서도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요한일서 3 24절에도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구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찬미와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만일 독자가 성령님을 주신 이 큰 선물에 대해서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한 적이 없다면 지금 바로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감사들 가운데 그 감사를 첫째로 하시기 바랍니다.

 

(2001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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