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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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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메칼리스터

2. 현 시대의 상태

 

무천년주의자는 교회가 지상적인 축복에 관한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약속들을 () 성취한다고 말한다. 우리들 주변을 살펴보자, 그리고 우리가 현재 이 주장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인지 아닌지 검토하자. 

 

우리가 향할 수 있는 많은 위치가 있지만 우리 스스로 두 가지로 제한할 것이다: 성경 안에 첫번째 책에서 하나, 그리고 마지막에서 하나.

 

창세기 12:1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5절에서, 그는 가나안에 도착하고 하나님은 그분께서 주목하게 하셨던 “이 땅”이라고 말씀하신다. 13:14,15에서 하나님은 그가 보고 있던 땅이 영원히 그에게 그리고 그의 자손에게 속할 것을 그에게 말씀하신다. 이것은 15:7에서 다시 말씀하신다. 8-21절에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그에게 주어질 “이 땅”(18)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그분의 계약을 거행하신다. 더욱이 하나님은 땅의 경계선을 확인하신다(18-21).

 

무천년주의자는 이들 약속이 문자 그대로 결코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들은 현재 교회 안에 영적인 실현을 가진다. 그러나 상기의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분께서 정확한 경계를 함께 언급하시는 “이 땅”인 것을 아브람에게 문자 그대로인 땅을 보이며 분명히 하신다. 창세기에서 “땅”이 사용될 때는 문자 그대로인 땅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15:13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이것은 이집트이고, 또한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요셉( 50:24)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려 가시는 곳, 그가 말하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가나안의 문자 그대로의 땅이었던 그 땅이었다. 모세( 32:13)도 이것에 관해 확실히 동일하다.

 

무천년주의자는 가나안의 문자 그대로의 땅이었음을 그렇다고 구약 성도들이 믿었다는 그것을 말하는 것에 반대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서 우리가 교회의 현재 축복들에서 영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과 함께 보이는 문제는 구약이나 신약 중에서 어디에도 없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이 우리가 무시할 정도로 주어졌으며, 어디에도 약속을 무효로 하거나 교회에게 옮겨진 것이 없다. 반대로, 신약성경은 가나안의 문자 그대로의 땅을 확인하고 언급한다. 사도행전 7:3-8에서 스데반은 “지금 너희가 거하고 있는 이 땅”(4)인 “그 땅”(3)을 그의 비난자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와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셨던 땅이었다. 그것은 신약에서 아브라함의 문자 그대로의 자손에게 문자 그대로 땅의 약속을 거듭 주장하는 것으로 보다 더 명확하지 않을 수 없다. 히브리서 11:9에서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체류했음을 말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땅이어야 한다. 따라서, “약속의 땅”의 상태는 변화지 않으며, 그것에 관련하는 약속은 이행을 기다린다.

 

우리는 계시록 20장으로 넘어간다. 무천년주의자는 이 구절에서 현재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하면서; 1,000년은 현재 시대이고; 사단의 묶임은 십자가에서 그의 패배함이며; “첫째 부활”은 어떤 사람이 그가 구원을 받을 때 경험이며; 그 신자들은 곧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으며; 그리고 이것은 세상 끝에 죽은 사람이 함께 부활하는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무천년주의자의 해석을 액면 그대로 취해보자. 즉시로 우리는 세 개의 무한한 문제를 볼 수 있다:

 

(1) 계시록 20:2은 사단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하여 “묶일 것이라는 점을” 말한다. 우리는 3절에서 이것의 의미를 말했었다: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우리의 주변을 바라보자, 그리고 이것이 세상에 현존하는 상태에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다. 현 시대에 관해 고린도후서 4:3,4과 같이 이렇게 생생하게 성경에 기록된 것은 믿지 않는 자의 마음에 사단의 묶임을 묘사하고, 그리고 우리는 (신자들) 그의 공격에서 안전하지 않다: 베드로전서 5:8에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포효하는 사자”의 묘사는 영향력이 묶이고 불가능한 자를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또한 사도행전 5:3; 고린도후서 11:14; 에베소서 2:2; 데살로니가전서 2:18; 그리고 디모데후서 2:26에서 사단의 현재 활동에 관한 증거를 보라. 그리고 매일 뉴스 첫 머리에는 민족들을 기만하고 있는 사단의 능력을 증명한다.

 

(2) 계시록 20:3,7,8 1,000년 후에 사단이, 그 단기간에 풀릴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는 민족들을 다시 속일 것이다. 무천년주의자는 모두가 부활되고 심판될 때를 현재 시대가 세상의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원한 상태가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사단의 놓임에 대해 무엇인가를 위해 상응하는 아무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만약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단의 묶임이 십자가에서 그의 패배라면, 그 때 그것은 묶이지 않도록 그를 위한 십자가의 일을 원상태로 돌리는 것일 것이다. 무천년주의자의 계획에는 사단의 놓임을 위한 아무 설명이 없다.

 

(3) 계시록 20:4는 순교자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를 말한다.  무천년주의자는 이 “부활”은 그리스도를 확신하는 때 영적인 생명을 얻은 것에 대해 나타낸다고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고 5절에서 의미하는 그것이 말하는 때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영적으로 의미한다 할 수 없다. 그가 정직한 경우에, 그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부활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절들이 두 개의 다른 그룹 사이에 경험(: 문자적인 부활)에 대비를 설명하는 것에 문맥과 언어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4절 끝과 5절 시작 부분에 있는 단어 “살고”가 주어진다. 무천년 해석은 구절의 명백한 가르침을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태를 바라보는 우리는 무천년 교리가 면밀한 조사를 낳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 땅의 약속과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도들의 약속은 둘 다 미래 실현을 필요로 한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무천년 해석에 있는 모순의 무언가를 보았다. 다음의 기사에서 우리는 성경 해석의 일관성으로 더 멀리 바라볼 것이다.

http://www.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