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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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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11-12)

 

디모데전서 5장의 난해구절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경건한 중에 진리를 순종하며 또한 진리 안에서 경건한 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훈들을 배우기로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교훈들이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 잘 기록되어 있으니 그 말씀들을 여러분이 자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무질서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암혹시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였듯이 악을 선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5:20-24)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람마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때이며 또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딤전 1:5)을 버림으로써 믿음에 있어서 파선하는 사람들 의 수가 날로 늘어가고 있는 때입니다.

디모데전후서를 보면 에베소 교회는 그때 이미 그 형세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로 더욱 악화될 것을 사도 바울은 내다보고 에베소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엄숙한 마음과 자세로 사도 바울이 경계하신 교훈들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 3절에서 그 경계의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그러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 1:6,7)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같은 경계의 말씀을 1 19절에서 디모데에게 또 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그러나 어떤 이들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그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고 하여 기도할 때의 바른 자세를 명하는가 하면 또 이와 같이 여자들은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딤전 2:9-15)하며 여자들의 복장문제와 단정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감독의 자격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특히 감독의 자격 중에서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1)라고 강조하고 있고, 또 집사의 자격 중에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9)라고 한 말씀 중에서 깨끗한 양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2)고 경고하고 있고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7)고 하여 경건을 강조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는 과부로서 명부에 올릴 자는...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란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9,10)라며 선한 행실을 강조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6장에서는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3)라고 한 말씀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11)라고 한 말씀을 중점으로 경계와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네가 이 세대의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6:17,18)고 한 말씀을 더욱 주목하여 교훈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다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사람이 청결할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떠날 때에 율법의 선생이 된다고 하였습니다(딤전 4:5-7).

둘째로 착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에서 떠나 파선한다고 하였습니다(딤전 1:19).

셋째로 양심이 화인 맞았을 때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된다고 하였고 또 외식함과 거짓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딤전 4:1.2). 넷째로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그는 교만해져서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며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해져서 진리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딤전 6:3-5). 이상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청결한 마ㅇ을과 선한 양심을 지키는 것이 우리 자신을 주님과 진리 안에서 가장 건전하게 지키는 일임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쓰러져가는 교회를 재건할 수 있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무에게나 가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을 지키는데 힘쓰는 자들뿐인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신자의 구원은 영원하다

그러면 이제 디모데전서 5 6,11,12절의 난해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6).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11,12).

이 말씀은 그렇게 난해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지고 신자의 구원의 영원성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5 1-16절은 신자의 구원 문제를 논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고 신자의 생활문제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의 말씀은 의지할 곳 없는 과부들의 부양문제를 그 주제로 함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5절은 참 과부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의지할 곳 없는 과부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오는 과부들에 대해서는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여기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죽었느니라고 말씀했으니 생명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죽었느니라고만 말씀한 것이 아니라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과부들에게 생명이 있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을 볼 때 5절에서 말씀한 참 과부들과 같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며 경건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서 5 5절의 말씀과 같이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마음을 살찌게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분상으로는 살았으나간증상으로 볼 때 죽은 사람”, 곧 믿지 않는 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와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 돌아온 탕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15: 24)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탕자가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교제에 있어서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에 있다가 다시 회복되어 온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한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생명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교통함에 있어서는 그 교제가 단절된 것임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고 11,12절에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고 한 말씀도 의심 많은 마음으로 보면 자기의 구원을 능히 회의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상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 이 말씀은 젊은 과부가 재혼하는 것을 가리켜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14절에 젊은 과부들에 대해서 재혼할 것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말씀의 전 강조점은 정욕에 있는 것입니다. 6절의 예와 같이 정욕에 이끌려서 일락을 좋아하므로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처음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말씀한 것이지 재혼 자체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것이거나 처음 믿음을 저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15절에 보면 이와 같이 정욕에 끌리기 쉬운 젊은 과부들 가운데에는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생활에서 떠나 일락을 취미로 삼고 살아가는 것을 묘사한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심판을 받느니라고 한 말씀은 단순히 징계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쓰인 심판의 원어는 정죄를 뜻하는 낱말이 아니라 징계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이같은 낱말이 고린도전서 11 29절에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느니라고 한 말씀의 그 라는 말과 같은데 그 라는 말이 난하주에 보면 판단으로 나와 있는데 이것은 곧 그 다음 구절에 말씀하고 있는 징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30).

이 말씀에 이어지는 32절을 보면 세상과 함께 죄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 죄정함이란 낱말이 곧 정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모데전서 5 12절의 심판을 받느니라는 낱말은 정죄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징계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이 뜻하는 것은 구원얻은 사람이 다시 생명을 잃는다든가 또는 정죄를 받게 될 위험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그러면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신자는 세상 일락과 육신의 정욕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기도와 간구하는 헌신된 생활을 하라는 것이며, 또한 시간의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집집에 돌아다니며 게으름을 피우고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위해서 분주하게 일하는 것이 자기 영혼을 지킴에 있어서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본의 아니게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는 말씀을 유의하여 마음에 간직함이 좋을 줄로 생각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