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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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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러지

만나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살아 있는(육체를 입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31-32에서 자신을 만나를 상징하는 사람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빵을 주어 먹게 하였도다, 한 것 같이 우리 조상들은 사막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 오직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빵을 주시나니.”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처럼 많은 비교가 이루어지겠지만 대조적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나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육체적으로 지탱하게 했다면, 참 빵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으로 영원토록 만족시켜줍니다. 따라서 버가모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계 2:17). 광야에 떨어진 만나가 굴욕을 당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금 항아리에 숨겨진 만나(히 9:4)는 세상으로부터 숨겨져 있고 영광 속에 있는 동일한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그분을 향유할 것이며 그분의 인격은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찬송가 작사가가 말한 것처럼, “영원한 세월의 영광은 결코 모두 펼쳐지지 않으리.”

 

만나의 환경

만나는 이집트에서 떠난 지 30일 만에 처음으로 “신 광야”에서 내렸습니다(출 16:1). “신”이라는 단어는 확실하지 않은 파생어이지만 “가시덤불” [1]과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저주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왜 만나를 먹이시기 전에 한 달을 기다렸을까요? 그분은 그들에게 겸손과 하나님에 대해 의지하는 것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신명기 8:3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하고 그들의 혼을 먹이거나 만족시킬 수 없고, 척박하고, 죄로 저주받은, 건조한 사막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광야의 나그네이자 순례자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습관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고안된 사탄의 시스템입니다. 악하고(갈 1:4) 부패로 가득 차 있으며(벧후 1:4) “악한 자”(요한 5:19)의 권세 안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2년 후 그들은 이집트의 음식을 달라고 외쳤습니다(민 11:4-6). 하나님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들의 혼에게 야위게 하는 것을 보내셨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엄숙한 일입니다(시 106:15). 우리가 이 세상의 유혹과 매력을 추구하며 그것을 의지한다면 영적 빈곤보다 더한 것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아침마다 성경말씀(만나)에서 그리스도를 모으고 그분을 우리 일상의 분깃으로 삼도록 합시다.

 

만나의 본질

만나로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혼을 감동시키기 위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출 16:4). 하나님은 은혜 안에서 불평하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불과 유황을 퍼붓지 않고 “하늘에서 빵”으로 내리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지 않고 그분을 통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분의 영광 (출 16:7). 놀랍게도,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첫 번째 언급입니다. 만나는 별로 볼품이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의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은 은혜(하나님은 사랑이시다)와 진리(하나님은 빛이시다)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신 분입니다(요 1:14 참조).

 

그분의 겸손(출 16:14). 만나는 “작은 것이었습니다” – 오, 영원한 말씀이 육을 입으신 경이로움! 여기에 최고급 밀가루(레 2:1)와 작은 참새 두 마리(레 14:4)로 표현되는 분이 계십니다. 어떤 겸손함입니까! 만나는 “흰 서리”만큼 작았는데 이것은 “속죄”와 “긍휼의 자리”와 같은 어근에서 유래 한 히브리 단어에서 왔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작은 아기가 보이는가요? 바로 이 분이 온 세상의 죄를 속죄하고 심지어 화해를 이룰 것입니다!

 

그분의 영원(출 16:14). 만나는 “둥글었으며” 생명의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분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요 8:58)고 말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무한하심(출 16:15,18). “만나”는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전에도 결코 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심지어 다른 세상에서 그들의 경험 밖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동료들조차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다른 세계에서 온 외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나에는 일종의 탄력성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모았던 사람의 식욕을 정확하게 충족시켰습니다. 만약 광야에 약 2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고 각각에 오멜이 모이면 하나님은 매일 4,500톤의 만나를 공급하신 것이었습니다(연간 백만 톤). 참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은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가 원하는 만큼 그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의 순결함(출 16:31). 만나의 색은 모두 흰색과 “베델리엄”(민 11:7) 같았으며 진주와 같은 광채가 났습니다. 만나가 이슬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광야 바닥의 먼지나 흙이 순수한 흰색 만나를 건드리거나 오염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분의 흠 없는 삶, 사랑스러운 걸음걸이, 모든 면에서 진실하고, 사방의 더럽혀짐에서 어떤 악의 오염도 없었다”고 노래합니다.

 

만나의 즐거움

우리는 이 글을 실제적인 내용으로 마무리합니다. 만나의 풍성한 공급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모으고(21절) 먹는(15절) 활동이 없으면 아무런 이득이 없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모아먹어야 했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모아야 합니다. 나는 오늘 그분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요? 성경의 모든 구절은 나에게 그분의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우리 마음에 적용하고 동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만나를 먹는 것은 혼에 달콤함을(꿀, 출 16:31), 영적인 힘을(신선한 기름, 민 11:8) 그리고 슬픔에 잔긴 마음에 위로를(고수풀, 출 16:31) 가져다 줄 것입니다.

 

[1]  확장 스트롱 사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