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이안 W. 깁슨

누가복음 4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반드시 다른 도시들에도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여야 하리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보내어졌노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보내신 말씀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이를 것과 말할 것을 친히 내게 명령으로 주셨느니라”( 12: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해야 하는 하나님의 강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 선포

하나님의 종의 한 가지 근본적인 책임은 메시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든 그가 대표하는 분의 메시지를 신실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종들은 그들이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섬기기 위해 움직이기를 꺼려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시려고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명령이 모세에게 임하셨을 때 모세는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4:1). 주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영접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말씀을 거부할 것임을 알고 계셨지만 완전한 종으로서 그분은 항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광야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공적 섬김에 나아가십니다. 처음에는 그분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시더라”(15). 이것은 또한 나사렛 회당에서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초기 반응이기도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읽은 그분은 그분이 추구할 영적 사역을 선언하고 그의 청중은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혜로운 말씀들에 놀랐”(22)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배척한 민족의 과거 실패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들의 경이는 진노로 바뀌었고 그들은 주 예수님을 쓰러뜨리려는 의도로 나사렛이 세워진 산 벼랑으로 주 예수님을 인도합니다.

 

주님이 30년 동안 온전한 삶을 사셨던 곳이 그분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첫 번째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53:3)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이사야서 61장을 읽는 것을 주의 깊게 중단하지 않으시고 의도적으로 문장 중간에 책을 닫지 않으셨다면 나사렛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복수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 61:2)은 아직 이르지만,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때는 “주의 받아 주시는 해를 선포”(19)할 때였습니다. 은혜 가운데 계신 주님은 그들의 가운데를 지나가시며 동일한 메시지를 그곳에서 전파하기 위해 가버나움으로 계속 가십니다.

 

가버나움에서의 그분의 사역은 분명히 성령의 권능 안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귀신들이 꾸지람을 받고 병자들이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침을 받을 때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사역이며 이 복은 그들이 그를 거부하지 않았더라면 나사렛에서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주님은 아버지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제를 나누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1:35 참조). 여기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50:4을 성취하시는 것을 봅니다. 주 예수님은 의존하는 하나님의 종의 자리를 차지하셨고, 그 이른 아침 고독한 시간에 그분의 아버지는 그분이 매일 해야 할 말씀을 열린 귀에 부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가버나움의 사람들이 그분이 그들의 도시에 머물기를 원할 때, 그분은 그들에게 즉각적인 응답을 “내가 반드시 다른 도시들에도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여야 하리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보내어졌노라”( 4:43)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서 그분의 우선순위였습니다. 그분은 다른 곳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더 선포해야 합니다. 그분의 동기는 결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버지께서 그분에게 말하기를 원하시는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기 위함이었으며, 가버나움에서처럼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든 아니면 나사렛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려는 우리의 강박

구주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이 우선순위를 관찰할 때 우리 앞에 분명한 모범이 보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유일한 메시지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그러한 의무를 어떻게 느꼈는지 알려 줍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앞으로 끌려갔지만 그들은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노라”( 4:20)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복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선언합니다. 그는 선포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탕감해야 할 부채입니다. “나는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빚진 자니라”( 1:14).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선포하는 것이 구속력 있는 의무였습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고전 9:16).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인류에게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는 일에 있어서 모든 인류에게 빚진 사람으로 느껴야 합니다. 불신자들의 무관심한 반응과 상관없이 “말씀을 전파”(딤후 4:2)해야 할 필요성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강요입니다. 우리는 이 빚을 탕감하고 사람의 반응과 하나님과의 전도 결과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