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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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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8. 18:36 빛 가운데로 걸으며

온전한 구속

찰스. 스텐리

어린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 것처럼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도 구약에 나타난 그림 혹은 상징을 통해 완전하고 복스러운 하나님의 진리들을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펼치면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길을 보여주는 정확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의 강에서 건짐을 받은 모세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죽음에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3장을 읽으면서 애굽의 잔인한 압제와 바로의 철장(鐵杖) 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看役者)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憂苦)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땅에 이르려 하노라"(3:7~8). 이것이 곧 사단의 노예가 된 모든 인간들의 상태가 아닙니까? 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에게 임한 그 비참함은 얼마나 끔찍한 것입니까! 인간 사회의 번지르르한 표면과는 달리 그 이면에는 얼마나 소름끼치는 저주의 모습들이 실재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수 마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으며, 그 타락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그 복락의 동산으로부터 그 비참한 사단의 애굽까지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고통과 비참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가련한 인간들을 구하시기 위해 내려오셨으며, 도울 자들이 아무도 없을 때 그 권능의 오른 손이 구원을 가져오셨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당신은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장 끝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역으로 인해 부르짖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眷念)하셨더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부입니다. 그들에게는 내세울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바라보시고, 구원하려고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어떠한 사랑과 동정으로 억압당한 자들의 친구되심을 나타내셨나이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이것은 당신의 영혼에 일어났던 사실과 똑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하러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구속(救贖)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1장과 2장은 이 복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거기에서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으로부터 온 구속과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축복들을 묵상하며 황홀해지는 것입니다.

4장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즉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사랑과 동정을 나타내어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도록 위임하여 보내었는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이 놀라운 은혜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아론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구출의 복음이 백성들에게 전해집니다. "(이에)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억압에 눌려 신음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에 대해서의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을 만나셨을 때 믿음이 들음에서 왔으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5장에서 백성들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됩니다. 그들은 구출을 바랐고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짐은 점점 무거워만 갔습니다. 그들은 짚을 구하지 못하여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5장은 쟁투(爭鬪)로 끝이 나며 구출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과하는 것은 일깨움을 받은 영혼에게 있어서 쓰라린 일입니다. 벽돌을 만들고자 하나 짚이 없었듯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하나 악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고 율법을 지킬려고 애를 쓰지만 얻는 것은 오직 쟁투뿐 구원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루터도 이 벽돌 가마 속에서 오랫동안 몹시 고생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거기에 있어 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이스라엘자손의 비장(牌長)들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비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사도 바울도 그 벽돌가마의 갈등을 롬7장에서 잘 표현했습니다. 독자들께서 알아두셔야 할 사항은 애굽의 벽돌 가마 속에서는 온전한 구속을 알 수 없었듯이 그러한 경험을 겪고 있는 영혼은 온전한 구속을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독자께서는 지금 혹시 그런 상태에 있지나 않으신지요? 복음이 당신에게 전해졌을 때 당신은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진지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갈망하며, 사단과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소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새 성품의 갈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도 온전한 구속을 배우지 못했으며, 구원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할 능력이 없어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 백성들에게 짚이 없었던 거와 같습니다. 그들에게 짚이 없었던 것처럼 당신에게는 능력이 없는데도 사단은 율법의 과제를 내놓으며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의 간역자(看役者) 들은 행위에 의한 구원을 전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흡사합니까!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如數)히 바칠지니라." "가서 일하라 율법을 지키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이 두 말은 본질적으로 너무나 비슷합니다.

6장에서는 백성들이 벽돌 가마의 잔인한 압제 아래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에 의해 위안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1~8절까지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나는 여호와로다.""내가 너희를 빼어 내며" "내가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그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벽돌 가마의 고역 아래 있을 동안 그들이 이 귀한 하나님의 약속들에 의해 전혀 위안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

만일 독자께서 생명을 소유한 영혼이면서도 아직도 율법의 속박 아래 있다면 이것은 조만간 당신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아주 귀한 것이지만 저는 제과업을 이룰 수가 없어요. 저는 율법을 지키려고 몹시 노력하고 있지만 종종 아니 항상 실패만 하고 있답니다."! 한 영혼이 율법 아래 혼자 힘으로 서 있는 동안 그가 발견하는 것이라곤 오직 실패, , 심령의 괴로움,

잔인한 속박뿐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간에게 이처럼 자아에 집착하려는 강한 성향(性向)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모든 것들은 사실 온전한 구속이 무언지 모르는 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우리는 애굽의 벽돌 만드는 백성들처럼 율법아래 혼자 힘으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귀한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서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압제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기 시작하십니다. 하지만 아직도 구출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잘 보여주는 심각한 그림들이며, 그 마지막 심판은 요한계시록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그 교만한 압제자들은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애굽에 그렇게 크게 나타났는데도 한 영혼도 구출받지 못했던 것은 이상하게 보입니다. 우리도 이와 똑같은 사실을 4복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충만한 은혜와 권능이 주 예수님의 복되신 생애 가운데서 풍성히 나타났는데도 그분의 사역이 끝날 즈음에는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만약 끝부분에서 보여주신 그 위대한 사역이 없었다면 그분은 아마 혼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기적들이 아무리 크고 그분의 가르침이 아무리 신령하고 그분의 삶이 아무리 거룩했어도 그분이 만일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지 않으셨다면 아담의 자손 중 단 한 명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애굽에서도 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애정에 찬 동정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으며, 원수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3장에서 11장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가 뿌려지기 전까지는 단 한 영혼도 속박에서 구출되지 못했습니다. 이 표상들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가르침은 너무나 정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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