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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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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9. 20:20 빛 가운데로 걸으며

온전한 구속(2)

독자께서는 심오하고 흥미진진한 12장을 깊이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장에서 우리를 구속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소경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5:7에서 이렇게 말했음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흠없고 일년된 어린 양을 그 달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온 회중이 그 양을 잡았던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흠없는 양으로서 자신을 하나님꼐 드리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유월절날 밤에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22:15). 이보다 더 큰 사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어린 양의 피는 문설주에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12:13).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셨으며,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한 사람은 그 날밤 단 한 사람도 멸망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피틀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하나님꼐서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무엇을 보시고 게신지 생각해 보십시요. 그것은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의 진가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한번 피를 흘리며 죽으신 주 예수님을 일으키사 가장 높은 영광의 보좌에 앉히신 것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토록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순수한 은혜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무엇을 보고 계신지를 잘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어린 양의 피! 이 얼마마한 사랑의 징표입니까! 주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와 죄에 대한 진노를 보여주는데 반해 그 어린양의 피는 가련한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저는 종종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므로 큰 위안을 얻습니다. 그분의 의는 온전히 보존되었으면서도 그분의 사랑은 우리에게 충만하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설주에 왜 피가 뿌려졌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 피 뿌려진 집에 살던 모든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구출해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 이제 피가 뿌려진 문설주로 가봅시다. 문설주에 뿌려진 그 피에서 당신은 무엇을 읽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입니다. 그 피는 말합니다. “나는 바로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라고 .... 그리고 그것은 또 이렇게 선언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로 가까이 가서 거기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영원히 배워도 온전히 다 못배울 복된 교훈들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왜 그처럼 거룩하신 분이 그렇게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못에 찔린 그 손과 발은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도망갔습니다. 그 분을 미워하는 자들은 그분 주위에서 이빨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세 시간 동안의 어두움이 임했을까요? 그분은 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을까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음은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 어두움의 시간 동안 주 예수님께서는 구속의 온전한 값을 치루고 계셨으며, 그분은 이내 머리를 숙이면서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은 그렇게 죽어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없느니라”라는 말씀도 읽습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애굽의 모든 첫 태생들이 죽임을 당했던 그 유월절 밤 이전에는 한명의 히브리인도 애굽에서 구출을 받지 못했는데 그 밤이 지난 이후에는 딘 한명도 그 속박 아래 남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 아닙니까? 이것을 통해서 준엄한 진리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죽음이 있어야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이스라엘의 대속물이었던 어린양 위로 지나갔으며, 죽음이 애굽의 첫 태생 위로 지나갔습니다. 그와 같이 죽음과 심판이 독자 여러분의 대속물인 하나님의 어린 양 위로 지나갔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영원한 죽음과 진노가 당신의 영원한 분깃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그렇게 뿌려졌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처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죄를 위하여 한번 고난을 받으셨으며,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구속의 교훈은 온전히 이해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14장에는 사단의 최후의 노력을 묘사한 그림이 나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았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화께서 그 날 행하셨던 구원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요!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른 땅 위를 걸어서 통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했던 바로 그 바다는 뒤를 쫓던 모 든 대적들을 수장(水葬)시켰습니다. 단 한 명의 히브리인도 죽지 않았으며 단 한명의 애굽인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찬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는 그처럼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입니까! 어찌 이 이상 더 완벽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벽돌 만드는 일도 없고 더 이상 애굽인들의 잔인한 압제도 없으며, 더 이상 매를 맞는 일이나 억압도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바다가에서 죽은 애굽인들의시체를 보았을 때 그 광경은 어떠했겠습니까! 단지 우리의 구속에 대한 상징에 불과한 이것이 그처럼 완전하였다면 그 실재에 있어서야 어떠하겠습니까?

가련하게 떠는 한 영혼이 엣 이스라엘처럼 구속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할 때면 앞을 가로막는 굽이치는 파도와 뒤에서 맹렬하게 쫓아오는 사단과 죄의 군대를 바라보고는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의 대장되신 그리스도의 육신의 삶이 끝나갈 무렵 그분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시커먼 물결이 닥쳐왔을 때, 이 세상 임금이 손을 대었을 때, 피할 길은 전혀 없었으며 그보다 더한 두려움이 그분에게 엄습했습니다. ! 그분에게는 마른 땅의 통행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단의 모든 힘이 인간의 극한 증오와 분노의 형태로 그분에게 맹렬히 달려들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그분에게 지워졌던 그 공포의 시간에 비한다면 그 애굽 군대에 대한 두려움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타격과 큰 물결이 연이어 그분을 강타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굽이치는 죽음의 물결이 그분의 영혼에 그렇게 엄습했던것일까요?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분은 우리가 발을 적시지 않고서도 죽음과 심판의 바다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분 스스로 그 모든 일들을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이 잔인한 애굽의 속박으로 내려오셨으며,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롯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얼마나 완전한 것이었는지요!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진노의 시커먼 물결 아래 더 이상 있지 않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홍해가 바로와 그의 군대를 멸절시킨 것처럼 주예수님께서도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셨습니다(2:14).

비록 광야라 할지라도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께로 인도된 이스라엘 위치는 얼마나 새롭고 온전한 것이었겟습니까! 그들에게는 아직도 배워야할 것이 많이 남아있긴 햇지만 그들은 이제 모세의 찬양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온전한 구속의 노래였습니다! 그것을 다시 한번 읽고 제 질문에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노래는 곧 당신의 마음의 노래입니까? 당신도 하나님의 구속안에서 그처럼 기뻐하십니까? 당신은 이 축복스런 역사의 가르침을 이해하십니까?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님의 죽음이 모 든 은혜의 자녀들의 신분을 온전히 바꿔놓지 않았습니까? 죄와 사단의 모든 힘이 당신의거룩한 대속물에게로 이끌려 갓을 때 온전히 정복되고 멸망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이 홍해와 대적들의 시체를 뒤돌아보면서도 아직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겠습니까? 우리가 주 예수님의 빈 무덤을 뒤돌아보면서도 “나는 구원받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취된 일인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찬송은 확신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말도 그와 같이 확신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꼐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l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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