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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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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11. 15:46 빛 가운데로 걸으며

믿음과 용기

시편 23에서 가장 낯익은 구절이라면 바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일 것입니다. 이 귀절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 슬플 때에나 죽음이 다가올 때에 자주 인용되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시편 기자가 이 귀절을 기록할 때에, 어쨌든, 아마 그는 죽음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실제 있는 장소, 음침한 골짜기나 아니면 아주 캄캄한 골짜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소년 시절에 양들을 지켰던 유대의 언덕들 어디엔가는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여 통과하여야 할 계곡이 있었습니다. 땅거미는 빨리 내리고 들짐승들은 양을 기다라며 웅크립니다. 목자는 양들을 보다 높고 푸른 초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이 가파르고 좁은 골짜기들을 양들을 인도하여 통과하였을 것입니다. 목자를 따라서 이 위험한 계곡을 통과하는 데에는 양들에겐 용기를 필요로 했으므로 양들은 목자를 의지함으로써 용기를 얻었습니다. 목자 옆에 계속 가까이 있는 것과 목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이 안전하였습니다.

다윗이 의미하는 것은, 삶의 두려운 경험들을 통과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자신을 그러한 경험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거기에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시는 목자가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대의 시인이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간에 그 경험이 수세기 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번역되어 온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어두운 골짜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을 통과할 때 두려워하며,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닥칠 때에는 더욱 두려워합니다. 그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삶의 묘미를 앗아 갔으며 또한 늙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모 든 적 가운데서도 죽음은 마지막 것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죽음을 통과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에 많은 것을 허비합니다. 나이는 어느새 먹어가지만 우리는 그것을 뒤로 돌려려 애를 씁니다. 미장원이나 건강클럽에 가서 이곳에서의 삶이 영원히 계속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속이기 위하여 머리에 크림을 바르고 염색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직면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꽃으로 죽음을 변장시키고 부드러운 음악으로 그것을 덮어버립니다. 끝장을 볼 때까지 게임을 하고는 시체 위에 입술연지를 바르고 그가 얼마나 활동적으로 보이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바로, 죽음 을 직면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우리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죽음의 음침한 곳에 대해서 알았었지만 그는 용기를 가지고 그것에 감연히 맞설 수 있었습니다.

시편 23편 중단에서 흥미있는 대명사들의 변화를 주목해 보십시오. 시작하는 단계에서 다윗은 목자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4절에서는 변화가 생겨 다윗은 목자에게 이야기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시편 기자는 찬양에서 기도로 노래를 바꾼 것입니다. 아마 다윗은 사울이 질투심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사막까지 쫓아가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려 했던 때를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그는 자기의 왕좌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살해하려 까지 했던 반역자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공포의 끈적끈적한 손이 마음을 쥐어짜는 것을 느낄 때,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한 작은 소년이 대륙 횡단 기차를 타고 미합중국을 횡단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소년은 안정하지 못하고 물을 마시려 자주 일어나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경고하기에 지쳐서 기진맥진해지자 통로 건너 자리에 앉아있던 부인이 그 엄마가 가엾게 생각되어 이 작은 소년을 불렀습니다.

얘야, 너 참 잘 생긴 아이로구나!라고 부인이 말하자 소년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너 입고 있는 해병 옷도 참 멋있는데?라고 또 부인이 말하자 이 소년은 자기 옷을 내려다 보더니, 우리 엄마가 만들어 주셨어요. 엄마가 이 단추도 달아 주시구요, 또 까만 줄도 붙이시고 바지에 다는 이 허리띠도 만들어 주셨어요. 이 소년이 부인에게 자기 엄마가 해주신 일들을 열심히 얘기하고 있을 그 때, 기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가서 온통 깜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소년은 같이 얘기하고 있던 부인을 떠나 통로를 뛰어 건너가서 엄마 목에 팔을 걸치고는, 엄마, 엄마, 엄마가 여기 계시니까 난 무섭지 않아요, 그렇죠, 엄마? 모든 것이 밝은 데에 있을 때는 엄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이 닥쳤을 때, 그는 더 이상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 이제는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다윗도 그와 같이 하였습니다. 그가 안정과 -휴식과 햇빛 비치는 푸른 초장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에, 그는 자신의 목자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나왔던, 그러고 가야만 했던 인생의 어두운 부분들에 대하여 생각했을 때, 그는 주님께 직접 이야기하였습니다. 내가 이러한 곳을 지날 때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누군가가 죤. 웨슬리에게 부흥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웨슬리는 대답하기를, 우리 성도들은 죽기를 잘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슬픔과 죽음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매우 실제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자신의 믿음을 그리스도에게 둔 사람이면 누구나 그분이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옮겨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인격적인 임재를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셨으며, 그분은 승리와 함께 다른 쪽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승리를 주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 23 4절이 그리고 있는 것은 죽음 이외에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른 체험들과 종종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어두운 골짜기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을 당할 때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목자의 능력에서 충당 받아야 합니다.

양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용기이겠습니까? 양들에게 필요없는 용기가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대적과 맞서서 싸우는 용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양이라 할지라도 가장 작은 늑대에게 잡아 먹히기 쉬운 먹이가 될 것입니다.

양들에게는 목자를 의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자가 양떼를 침범하러 올 때에나 늑대가 가까이 다가올 때에, 양들에게는 오직 목자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올려다 보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양은 목초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는 데에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습득하기 어려운 과제는 영적 전장(戰場)에서 자기 혼자 힘으로는 싸울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무력한 양들이며, 목자가 우리의 적들을 멸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의 사막 어디에선가에서 찢겨지고 피 흘린 채 발견될 것입니다.

인생의 두려운 사건들로 하여금 우리의 목초지에서의 식사를 방해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도 두려워질 때에 우리는 단 한번의 타격으로 그 사건들을 처리해 버리기를 원할 것입니다. 목자를 의지해야 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우리는 그 싸움을 그분의 손에 맡겨드리고 식사하는 데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용기를 줍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목자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시길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7,18)라고 하셨습니다. 이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당신의 생활가운데 들어가셔서 그분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현재와 그리고 미래에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1981년도 횃불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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