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칭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거스트 반린-
보편적으로 기독교계에서는 “목사” 또는 “교주” 등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옹호하며 “이 시대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심각한 죄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의 설교자들에 대한 존경심과 공경심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칭호를 가지는 것은 정당하다.” 고말했다.
그러나 칭호를 얻는다고 존경심을 유발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세속적인 자기 본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말할 수 없이 불경건하고 부도덕하다. 그러면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고 자랑을 한다. 그러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 칭호를 뽐내면 존경심은 더 멀어진다. “목사”라는 말의 의미를 틀림없이 격하시킬 뿐이다.
주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부끄러운 삶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그 때문에 우리 주님은 그들을 그토록 엄히 꾸짖으신 것이다.
삶이 그저 그렇거나 혹 악하다면 칭호가 그에게 존경을 안겨주지 않는다. 칭호가 없어도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지닌 도덕적이고 영적인 가치는 사람들에게서 숨겨지지 않는다. 명예와 존경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는 말씀은 여전히 참이다.
신약성경이 “공적 신분 증명”에 대해 아주 조그마한 암시라도 내비치고 있는가? 공적인 어떠한 계급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속적인 잘못된 종교인들은 이러한 일을 자행하고 있다. 교회에서 일단의 장로들과 집사들은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한 개인이 형제들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형제들 중의 특수계급에 대해 성경은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한 분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형제이다. 동등한 형제인 것이다. 모든 신자는 제사장의 신분이다(벧전
오직 한 분만이 그들 위에 계신다. 바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의 성직 수여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을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에 불충성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는데, 그가 어떤 인간이나 인간 단체에 가서 그들의 권위와 승인을 얻으려 한다면 참으로 하나님께 불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칭호 받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리새인처럼 ‘작은’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헐뜯는 것이다.”
칭호를 취함으로써 주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는 것이 작은 일인가? 주님은 만물의 첫째 가는 분이시지만 가장 낮아지지 않으셨는가? 그러한 주장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
칭호를 취하는 이 악한 일을 강력히 주장하는 중에, 수많은 그리스도의 경건한 종들이 이러한 공적인 구별을 받아들인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 편에서 전혀 우월해 하는 태도나 자부심 없이 성직 칭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좋은 믿음으로 그 일을 행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동일한 칭호를 수만 명의 현대 배교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 배교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중요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또한 로마 카톨릭 사제들도 다 그 칭호를 쓴다. 종교 학교를 나왔으나 전혀 구원받지 못한 무수한 성직자들이 바로 그 똑같은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의 참된 신자가 그들과 동일한 칭호를 사용하면, 무수한 불신자들 혹은 배교자들과 한 편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이유가 무엇인가?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무 지나친 적용인가.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 말자. 칭호 사용을 옹호하는 주장들은 잊어버리자. 그저 성경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도의 유일한 권위이다. 진실로 성경은 우리에게 온전한 만족을 가져다 주는 권위가 아닌가.
신약성경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신약이 제공하는 교훈과 본보기를 상고해야 한다. 성경은 성직 칭호 사용을 책망한다. 복스러운 주님 자신이 이 일에 있어 가장 뛰어난 모본을 보여주셨다. 빌립보서
성직 칭호에 관한 주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주어졌다. 거기 보면 칭호를 주는 일과 받는 일 모두가 잘못되었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유대인 중에서는 “랍비”라는 칭호를 금하셨다. 카톨릭 중에서는 “아비”라는 칭호를 금하셨습니다. 교회 중에서는 “지도자” 또는 “선생”이라는 칭호를 금하셨다. 대신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신약성경 전체가 이러한 흐름으로 줄곧 진행된다. 사도행전이 공적인 인정에 관해 언급한 바 없다. 저 위대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칭했다. 침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여기,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혹시라도 “목사”가 이 어린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마가복음
우리의 거룩하신 주님은 이런 말씀도 들려주셨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요
이 세상을 거쳐갔던 그 누구보다 명예롭다고 할만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사도 바울이다. 이제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의 말을 경청해 보자.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우리가 다시 자천(예컨대, 칭호를 통해)하기를 시작하겠느뇨?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고후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고후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고후
우리 주님에 대해서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세상의 인정을 얻고 싶다면, “목사” 혹은 다른 칭호들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의 인정과 승인이 과연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딤후
다음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그리스도의 종은 소유한 칭호를 통해 알려져선 안 된다. 누구든지 칭호를 소유하면 해롭다. 그리스도의 종은 사역과 삶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결론을 맺어보자. 목사 칭호를 갈망하는가? 주님의 방법대로 일하는 것을 중단하려면 목사가 되라. 주님의 제자들, 또 경건한 많은 이들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싶으면 목사 칭호를 쓰라.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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