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세바(상)
Jean Dougan
처음 밧세바에 대하여 읽을 때 그녀는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였음을 알게 됩니다. 수천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신약에서도 그녀를 가리켜 “우리야의 아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그 이야기는 다윗 왕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싸움가운데 있을 때에 다윗은 마음 편하게 궁에 홀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리 대수롭지 않는 것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다윗을 범죄케 한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용감한 군인이었고 지도자였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사용치 아니하고 “저녁때에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동산에 나무 사이로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다윗이 가까이 보기에 충분하였으며 매우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윗은 즉시 종을 불러서 그녀의 신분을 물었을 때,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용사 중, 한 사람인 우리야와 결혼한 여자로 다윗에게는 때가 이미 늦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 그녀와 동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삼하
그리고 또한 창 39:7-13에 요셉과 같은 모습도 그녀에게선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그녀가 그러한 죄에 동참했다고 조심스럽게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대해 그들은 어떤 묘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찾아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다윗은 한가지를 궁리하게 되었는데, 싸움 중에 있는 우리야를 불러 여러가지로 안부를 물은 다음, 선물을 주어 집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생각하기를, 우리야가 온 밤을 그의 처와 함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니 그리하면 밧세바의 임신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때 그들의 아이라 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쯤이야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옳지 않았고 일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야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궁 문에서 밤을 지낸 우리야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를 다윗이 물었을 때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하는 우리야의 말이 다윗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다윗은 다른 어떤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큰 곤란에 부딪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사실을 백성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왕을 기뻐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야를 만찬에 초대하여 잔뜩 취하게 하여 보내면 집으로 내려가리라 생각 하였으나 계속해서 우리야는 왕궁 문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윗의 입장은 점점 더 불리해지기만 했습니다. 이제 우리야가 싸움터로 나간다면 그의 귀정은 여러 달 후가 될 것임으로 어떠한 조치가 있지 않으면 안되리라 생각하여 그는 드디어 무서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요압에게 우리야를 맹렬한 싸움가운데 두어 죽게 하라는 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그런 끔찍한 명령을 내렸을까요? 내,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롬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오로지 우리야를 어찌해야 제거할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야는 자신의 죽음의 명이 담긴 다윗의 편지를 가지고 요압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요압은 다윗의 명대로 우리야를 치열한 싸움을 맞아 죽게 하고 말았습니다(삼하
우리야의 죽음 이후, 밧세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들 사이에 아들도 갖게 되었고 만사는 다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그 차이를 알며 그들의 범죄를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야를 맞아 죽게 하라고 명한 것이 그리 중요한 것입니까? 이제 그들은 결합하여 아기까지 얻었는데 이 일을 상관할 자, 누가 있겠습니까? 예, 바로 주님이 상관하십니다. 성경은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 그 모든 행함을 “악”이라고 단정짓고 계십니다. 그렇게 심한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숨기려 했다”라고 하는 말은 어떨까요? 아닙니다. 주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것이며 죄라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를 치사 죽이셨나요? 그분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선지가 나단은 다윗에게 이르러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크게 노하면서 “그 일을 행한 사랑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야 하리라”고 외쳤습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이르기를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그러한데 어찌하여 내 앞에서 악을 행하였느냐 이제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경고를 들은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범죄했노라”고 정직하게 고백하였으며(
주께서는 다윗에 고백에 대해 얼마나 신속하게 응답하셨는지요! 다윗이 그 부자의 죄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기에는 얼마나 신속합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의 죄를 깨달았을 때 즉시 자백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가요?
나단이 다시 말하기를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거리를 얻게 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당신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당신은 아십니까? 다른 이들이 당신을 주시하는 것도 알고 있는지요? 만일 당신이 범죄하게 된다면 그들은 말하기를 “그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나는 그들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치 않는 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윗에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나단은 말했습니다.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다윗과 밧세바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범죄에 대해 마땅히 갚아야 할 삯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8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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