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비보셋(2)
챨스 스탠리
당신은 이같은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당신은 “이것은 나의 분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두 발이 다 절뚝이는 이 젊은이에게, 그 치유 방법이나 아니면 가장 좋아 보이는 처방을 내려 그렇게 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치유 방법이나 처방에 대한 한마디도 없다. 그는 있는 그대로 왔으며 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가 다윗에 대하여 그 마음 속에 의심을 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단은 불쌍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이 은총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을 알아보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지상의 어떤 사람이나 하늘의 어떤 성도가 필요한게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벌써 우리를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충만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은 죄의 속박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을 구원하게 하는 방법에 관하여 쓴 장문(長文)의 책들을 읽고 스스로 혼돈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아마 어떤 사람은 당신에게 규례와 기독교 의식을 지켜야 구원의 소망을 갖는다고 가르치며,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을 용납하려면 당신은 이런 저런 체험을 가져야 한다고, 아무 효과없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리라. 다시 말해서 그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당신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한쪽 발만 조금 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부축이 약간만 필요하며 그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완쾌될 것이며 조만간 당신은 하늘나라에 갈 공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이런 것으로 번민하며 당황하고 있다면 인간의 모든 사상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자유롭게 되도록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신 그분을 바라보라. 당신이 할 것이란 다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죄인에게 있어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만큼 회개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없다.
값없이 주시는 이 은혜가 공포에 떨고 있는 므비보셋의 심정에 부어지자 그는 곧 이렇게 반응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죄인이 무한한 은혜와 거룩함이 있는 곳에 끌려나왔다. 하나님의 참 성품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에게 계시되었다. 그는 거룩하신 사랑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은 것이다.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넘치는 은혜에 감동된 결과로 그는 땅에 엎드렸다. 이것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회개”이다.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은 회개란 자신을 고상하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마음이 영향을 받도록 자신이 개선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심정이 우리에게로 향하려면 우리의 선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은총을 베풀기 위해 마음의 변화가 필요했던가? 결코 아니다. 그의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 마음의 변화를 필요로 하실 수 있겠는가? 십자가는 멸망할 죄인들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신이 지금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의 죽음에 나타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았다면 당신에게서 온전한 마음의 변화를 즉각 일으켰을 것이다. 더욱 당신이 이 귀하신 사랑의 너그러움을 알면 알수록 당신은 더욱 그분 앞에 엎드리며 겸손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는 순간 당연히 받을 구원을 벌써 얻은 것이다.
그러면 종인 시바와 아들인 므비보셋을 잘 대조해 보자. 다윗이 시바를 불러 그에게 명하자 그는 모든 것을 수행하겠다고 동의했다.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대로 종이 수행하겠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리석게도 시내산에서 바로 이같은 서약을 했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말로 서약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포기하고 율법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이 그분의 자녀가 되는 대신에 그분의 종이 되려는 종교에 속해 있을 것이다.
그 아들(므비보셋)에게 순전한 은혜를 나타내신 다윗의 말은 그 종(시바)에게 한 말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룬다. “므비보셋이여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종에게는 은혜로 한 말이 한 마디도 없다. 반면에 아들에게는 명령으로 한 말이 한 마디도 없다. 한 사람은 법적 구속(救續)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하는 종살이요, 다른 한 사람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의 표시인 예배이다.
(198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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