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봉천동교회 –
저는 주님을 영접한지 일년도 채 안 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자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 주님께 받은 그 큰 사랑은 누구보다도 크고 강하게 제 마음속에 가득 차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이 죄가운데서 저를 영원히 살리시는 유일한 분이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었는지….그런 고통 중에서도 주님을 찾지 않고 멸망으로만 달려가던 저를, 영원히 썩지도 아니하며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옮겨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주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주님께서 저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려 그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고 돌아가심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함 밖에는 더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감사, 감사만 드릴뿐입니다. 저는 육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나 사랑이 많으신 부모님 밑에서 순탄하게 자라났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너무나 건강했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보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어 76년도에 결혼을 했습니다.
너무나 자상하며 이해심이 많고 친절한 남편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사는 날들은 그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77년에 귀여운 아들을 낳고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은 다 저에게 주어진 듯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 뒤에 고통스러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들의 돌이 지나고부터 저의 몸에 조금씩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몹시 피곤하며 밤엔 악몽에 시달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갈증 때문에 물을 자꾸 마시며 날이 갈수록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걱정 끝에 동네 약국에 가서 증상을 얘기하니 당뇨병 초기 같다며 약을 잘 복용하면 곧 좋아질 것이라 하기에 열심히 약을 사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니 약의 양을 늘려도 아픈 곳은 더욱 많아지고 몸은 점점 더 약해져 갔습니다.
남편과 저는 사람들이 알려주는 대로 좋다고 하는 약은 한약, 양약을 가리지 않고 다 사먹으며 병원도 이곳 저곳 잘 고친다고 하는 곳은 다 찾아 다니며 주사도 맞아보았지만 그러나 병은 진전이 없었고 더욱 더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약을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위장이 나빠져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조금만 먹어도 자꾸 토하며 하루하루가 지겹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해졌습니다.
모든 일에 싫증을 느끼고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병에 대해 집착하며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갔습니다. 그런 나를 남편은 꼭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위로했지만 저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약도 제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몸은 점점 더 약해져서 62킬로였던 몸무게도 37킬로로 줄어 제대로 걸어다닐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또 열개의 손톱이 모두 빠지고 귀까지 아파 서 견딜 수가 없었고 온 몸은 송곳으로 찌르듯이 쑤시고 아파서 밤마다 울면서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어린 아들조차 제대로 돌봐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게 다 귀찮아졌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날들이 계속되던 중에 동네 아주머니께서 교회에 나가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해왔습니다. 솔깃했지만 한편으로 망설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집에서나 친정에는 모두 불교를 믿었었고 제 자신도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도 다녔었기 때문에 부모님들께 죄를 짓는 것 같아 선뜻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간곡히 말씀하시기에 뿌리칠 수가 없어 한번은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가서는 실망을 느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아무런 감동도 위로도 주지 못했습니다. 십일조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제 귀에는 헌금을 많이 해야만 교회에 나갈 수 있는 것같이 들렸었기 때문에 그만두었습니다. 또 남편도 교회에 나가서 병을 고친다면 이 세상에 아픈 사람은 한 명도 없을것이라며 반가와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그때엔 교회에 다녔다는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과 태도에 못마땅해 하던 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서서히 하나님의 복음의 빛은 믿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우리에게 조금씩 비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직장에 있는 직원이 자기가 나가고 있는 모임에 나가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처음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그 사람의 말에 반박을 하며 핀잔을 줬지만 그 분은 조금도 화내지 않고 사랑과 인내로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그럴수록 우인 더욱 더 복음을 불신하며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분은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로케트가 달나라에 가는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면 증거해보라고 했더니 그분은 성경에서 오바댜
그 후 남편은 그분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보며 모임에도 나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 못마땅해 하며 그 분이 집에 오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후 인도하는 남편을 따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모임에선 이미 우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같이 친절하게 맞아주며 모든 분들이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임의 모든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을 알고는 다른 곳과 무엇이 다른 것을 느끼며 가끔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성경을 보며 복음을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내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몰아가셨다는 말씀은 믿어지지가 않았고 이 세상에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대신 죽을 수가 없는데 나를 위해 정말 그러셨을까?하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이 믿지 못하는 가운데 저의 몸은 더욱 견딜 수 없는 상태로까지 나빠졌습니다.
81년 9월엔 당뇨병 전문병윈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신체에 인공췌장기를 달고 15일만에 퇴원을 해서 집에 왔지만 몸엔 항상 주사기를 꽂고 다녀야만 했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혈액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병만 나을 수 있다면 그런 고통쯤은 참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검사하며 여러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 후로 몸은 조금씩 생기를 찾았지만 다른 병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손과 발이 쑤시고 아픈 것은 더욱 심해졌고 상처가 생기면 낫지 않고 두세달씩 걸리며 두드러기와 감기로 고생해야 했고 또 당뇨로 인한 체질변화로 항상 가슴속이 답답하고 온 몸에선 땀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이젠 너무도 오랫동안의 병으로 제 마음은 더욱 비참한 생각으로 괴로웠고 아무 말없이 제 시중을 들어주는 남편에게도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전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님 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시며 주는 시련이라곤 생각지 못했고 이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원망만 했습니다. 그렇게 괴롭게 지내던 중 이젠 눈이 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고 간판의 큰 글씨도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더욱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후 병원으로 다니며 진찰을 받은 결과, 당뇨로 인한 백내장과 망막출혈로 레이저 광선치료를 받지 않으면 실명하게 된다고 해서 한달 동안 예약을 해놓고 마음에 준비를 했지만 저의 마음은 더욱 초조했고 앞을 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눈물로 지냈습니다. 그럴수록 모임에선 저를 위해서 더욱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렸고 노매님들께선 저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써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때에야 저도 주님께 저의 육신과 영혼을 모두 맡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쇠약한 빙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펴시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시 41:3-4)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날도 저는 저의 육신의 고통을 주님께 호소하며 기도드리고 성경을 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이 말씀이 제게 큰 기쁨과 감동으로 받아들여졌고 온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못했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이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감사함과 기쁜 마음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이후 저는 육신의 괴로움 때문에 염려하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내게 주신 귀한 선물로 여겨졌고 성경 속의 모든 말씀이 꿀과 같이 달게 느껴졌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이 평안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던 저의 마음이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주님의 품 안에 안겨 영원히 살 수 있게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후 저의 몸도 주님의 사랑으로 많이 회복되었고 눈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주님은 제 마음속에 들어와 제 삶을 변 화시키셨고 전에 알지 못했던 큰 기쁨을 향상 넘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주실 때엔 피할 길도 예비하여 주시며 더욱 강한 믿음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는 동안에도 육체는 고통을 받으며 괴로울지라도 항상 주님을 의지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 100편).
(198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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