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A. 바네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칼빈주의자들(또는 개혁주의) 가르침이 급증해 왔으며 남침례교와 은사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콜린 한센, 영, 끊임없는 개혁주의: 새로운 칼빈주의자들과 언론인의 여행 2008, 크로스웨이 출판사, 휘튼, IL). 동시에 이 가르침에 반대하는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이 반응은 때때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행 20:27)에 근거한 모임들에서 “우리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믿어졌던” 교리와 때로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는 칼빈주의의 가르침을 7개의 조항으로 연재하며 검토하고 거의 두 세기 동안 모임들에서 가르쳐 왔던 것과 비교하고 대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공동 선택과 같이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난 다른 현재의 교리들을 그러한 공동 비판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칼빈주의는 무엇인가?
칼빈주의는 프랑스 종교 개혁자 존 칼빈(1509-1564)이 창안한 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확장된 체계적인 신학의 한 형태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동등한 합리적 신학 체계를 세웠던 자였던 히포의 어거스틴(354-430)의 열렬한 신봉자였는데, 그는 구원의 문제에서 어떤 결과라도 인간의 책임을 제쳐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동등한 이성적 신학체계를 스스로 고안했다(바로 칼빈과 어거스틴이 그들이며 이스라엘의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가르치면서 이 땅의 천년왕국을 영적으로 제거한 것에 대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다).
문제의 예시
만약 어떤 독자들이 그 격렬한 논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궁금해한다면 그들은 칼빈의 주장들 중 하나를 읽어보면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처분에 달려있고, 구원이나 죽음이냐의 결정은 그분께 속해 있으므로, 그분은 그분의 권고와 법령으로 모든 것을 명령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모태에서부터 필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헌신적으로 태어난다, 그들의 파멸에서도 그분의 이름은 영광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존 알렌, 기독교 종교 연구소. 출판물의 장로위원회, 빌라델피아, 1841, P. 169).
그렇게 되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그러한 비성경적인 가르침과 모순되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복음 구절을 찾아보기 위해 신속하게 그들의 성경에 집어 들게 될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와 “TULIP”
칼빈의 가르침은 네덜란드 개혁주의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그곳에서 제임스(야고보) 알미니우스(1560-1609)라는 저명한 신학자에 의해 강하게 반대되었다. 그의 주장은 주로 인간의 책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죽음 직후에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다섯 조항의 요약을 발표했는데(항의서의 다섯 조항, 1610), 이것은 우리의 목적을 위해 다음과 같이 단순화할 수 있다:
(1) 택하심은 믿는 자의 믿음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하나님의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2) 속죄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하지만 신자들에게만 효력이 있다;
(3)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에 응할 수 없다;
(4)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5) 신자들은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고 자신의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
(전문 버전은 www.theopedia.com/Five_articles_of_Remonstrance를 참조).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르트 종교회의(도르드레흐트, 네덜란드)가 1618년 네덜란드 개혁주의 교회에 의해 소집되었다. 그 결과 네들란드에서 논쟁 중인 교리의 5개 주요 요점에 대한 도르트 종교회의 결의문이 나왔는데 일반적으로 도르트 교회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중에 편리하게 “TULIP”이란 약어/연상기호에 의한 영어로 요약되었다(순서의 재배열에 따라). 이 다섯가지 요점으로 된 진술은 그 이후 칼빈주의(또는 소위 개혁주의 입장)의 요약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T - 전적인 타락
U - 무조건 선택
L – 제한적 속죄
I - 거부할 수 없는 은혜
P - 성도들의 인내
이어지는 글들에서 우리는 이러한 칼빈주의에 대한 비판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할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는 칼빈주의와 함께 번성했고 이 둘은 종종 기독교인들 사이에 상당한 논쟁의 원인이 되었다 - 지금도 그러하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두드러진 예는 초기 감리교 내에서 일어났던 균열이다. 이 운동은 존 웨슬리(1703-1791)와 조지 휫필드(1714-1770)의 지도 아래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알미니안주의고 후자는 칼빈주의이다 - 따라서 웨슬리파와 칼빈주의 감리교도들이다. 두 사람 모두 영국과 북미 지역에서 활동적으로 전파했다. (북미의 잘 알려진 설교자 조나단 에드워드(1703-1758)와 웨일즈의 하웰 해리스(1714-1773)는 휫필드의 가까운 동료였다.) 현재 필자는 웨일즈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고 있으며 두 종류의 감리교 예배당에서 영어와 웨일즈어가 변형되어 있었다.
균형 잡힌 견해
모임들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의 제한된 인간의 마음에 비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여전히 책임이 있고 회개할 수 있다;
• 우리의 선택은 개인적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미리 알고 계신 것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대신했지만 믿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다;
• 사람들은 복음 안에서 영의 노력에 의존하지만 거절할 수 있다;
• 한 번 진정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
결론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 사이에 계속되는 논쟁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주장에는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모임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은 복음집회 전 기도 모임에서 하는 기도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구하는 반면, 복음 설교 그 자체는 회개하고 믿어야 할 죄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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