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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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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A. 바네스

겉으로 보기에 칼빈주의의 전적인 타락에 대한 교리는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것은 사람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다윗이 말했듯이 성경적 지지를 받고 있다.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시 51:5), 그리고 나중에 바울도 덧붙이기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 5:12). 사람은 영적으로 죽었고, 어둠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모든 남녀가 차별 없이 복음의 메시지에 반응할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전적인 타락의 교리에 기초하여 칼빈주의 정통주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 아담의 자손은 죄 있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들은 악보다 영적인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토마스 스틸, 칼빈의 다섯 가지 요점, 장로교와 개혁, 필립스버그, 1963, P. 25]. 여기에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가르침은 오직 택함 받은 자들만이 회개하라는 복음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들이 복음이 전파할 때 듣고, 믿으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순종하는 등등.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책임이 복음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인간의 책임과 복음

이 주제는 복음의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산반된 선택, 즉 순종과 불순종을 살펴볼 때 잘 이해된다. 영접(또는 받아들임)과 거부. 이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의지의 명백한 표현이다.

먼저 순종과 관련된 단어들을 살펴보자. 우리는 먼저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의 은사는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행 5:32) 약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발견한다. 그러한 순종은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믿음에 순종”(행 6:7)했을 때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개념의 사용은 바울의 복음적 설명 중에 대표작인 로마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그의 사도직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롬 1:5; 15:18 비교)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롬 2:8)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는 본래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롬 5:19)라고 말하며, 그러나 로마의 신자들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롬 6:17)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복음을 들었던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다 복음에 순종하지는 아니하였나니”(롬 10:16). 실제로 로마 신자들(대부분 이방인)의 순종은 모두가 들었던 것의 순종이었다(롬 16:19). 바울은 복음 안에서 현재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을 언급하면서 이 단어의 사용을 끝맺는다: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게 된 신비의 계시에 따라”(롬 16:26).

마찬가지로 불순종은 의지의 행위이며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바울은 아담에 대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롬 5:19)라고 썼고, 또한 이스라엘은 “불순종한 … 사람들이었다”(롬 10:21)라고 썼다. 물론 바울이 아그립바에게 “내가 하늘에 나타난 그 환상에 불순종하지 아니하여”(행 26:19)라고 말한 것은 그렇지 않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과 함께 뒤돌아보며 그들이 지금의 믿지 않는 자들처럼 “불순종의 아들들”(엡 2:2)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함”을 가져올 것이다(엡 5:6, 또한 골 3:6을 보라).

다시 말하지만 받아들임은 요한복음의 첫 장에서 읽을 수 있듯이 선택의 행위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12절; 비교 골 2:6). 반면에 죄인들은 동일한 책임을 지고 복음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분의 생애 동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자들이 있었고 특히 유대인 민족 지도자들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건축자들이 버린 돌 바로 그 돌”(마 21:42; 막 12:10)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막 8:31; 눅 9:22), 사실 그분은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으셨다”(눅 17:25).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심판하는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말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 12:48).

바울은 디도에게 구원받기 전에 “우리도 한 때는 … 불순종”(딛 3:3)했다고 상기시킨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자들을 “불순종하는 자들”(벧전 2:7-8)이라고 말했으며, 이는 홍수 전에 하나님의 증거를 거부한 자들과 같다 “불순종하던 자들…”(벧전 3:20). 구약성경에서 인간의 책임은 종종 개인의 선택의 실행으로 귀결되었다(신 30:19; 수 24:15).

(우리는 또한 요한복음 3장에서 믿고 믿지 않는 인간의 책임의 더 많은 예를 살펴볼 수 있었다.)

성경의 명백한 표현으로부터(칼빈주의적 전제들을 덧씌우지 않고 읽는다) 우리는 사람이 복음의 맥락에서 확실히 책임이 있음을 본다. 그래서 하나님은 도처에 모든 사람을 회개하도록 명령하실 때(행 17:30), 그분은 그것을 실제로 의미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계 22:17)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복음에 반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우리가 구원을 위한 성령님의 역사를 살펴볼 때 더 많이 언급할 것이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