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A. 바네스
만약 제목에 있는 표현이 단지 그것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한 번 구원받는 자는 항상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논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사람이 한 번 참으로 구원받으면 그 후 그들은 결코 다시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칼빈주의자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 말이 정반대를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이 인내해야만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먼저, 영원한 안전에 대해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자의 영원한 안전
영원한 안전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두드러진 표현은 주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그분은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7-29). 예를 들어 요한복음의 기록에서 성경의 약속들, 주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들의 믿음과 영원한 생명의 확실성 및 소유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약속은 명백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 5:24);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 영원한 생명이라”(요일 2:25); 그리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또한 요 3:16,36을 참조하라.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 실제로 영원한 생명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멸망할 수 있겠는가?
바울,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미 행하신 일에 대해 말한 다음 표현들을 살펴보라: “우리를 봉인하시고”(고후 1:21-22); “우리를 … 살리시고”(엡 2:5); “왕국으로 옮기셨으니”(골 1:13); “구원을 얻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 5:9);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벧전 5:10);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요일 5:11). 만약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면 이 모든 약속들과 더 많은 약속들은 제거되거나 무효화되거나 취소되어야 될 것이다. – 이것은 결코 예상되지 않으며 분명히 불가능하다!
영원한 안전에 대한 하나님의 역할은 “이제 너희를 보호하사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 자신의 영광이 있는 곳 앞에 흠 없이 너희를 제시하실 수 있는 분”(유 24), 그리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받고”(벧전 1:5)라는 말씀에서 강조된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 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나니”(히 7:25)라고 말씀하시며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히 5:9)가 되신다. 주목할 것은 또한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다”(히 9:12)는 점에 유의하라. 그래서 “한 번 구원받은 것은 영원히 구원받는다!” 확실히 우리는 바울처럼 말할 수 있는 기쁘다, “내가 믿어 온 분을 내가 알며 또 내가 그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는 줄 확신하기 때문이라”(딤후 1:12).
율법폐기론
칼빈주의자들은 만약 신자들이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부주의한 삶을 살도록 허용한다고 말한다. (예: 그러한 믿음의 공식 명칭은 율법페기론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생각할 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고후 5:17-18). 위치적으로 이것은 회심하는 즉시 사실이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것은 실제적으로 사실이 된다. 이러한 진전은 생각만큼 지속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서신서에서 믿는 자들은 도둑질, 거짓말, 맹세, 속임수, 부도덕한 행동 등에 대해 경고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갈 3:26). 탕자의 비유는 그가 무엇을 하든 항상 아들이었던 사람에 관한 것이다(눅 15:11-24). 심지어 모임 교제에서 출교된 자라도 제자 중에 있는 사람조차도 결코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여전히 아들들이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은 율법폐기론의 가능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한 번 구원받는 자는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실제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은사주의 칼빈주의자 R.T. 켄달(한 번 구원받는 자는 영원히 구원받는다의 저자 무디 출판, 시카고, 1983, 그리고 마르틴 로이드 존스와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G. 캠벨 모건 목사와 같은)은 “거의 모든 … [17세기 칼빈주의 교사들]은 그들의 임종의 순간에 자신들의 삶이 택함받은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큰 의심과 절망을 겪었다”고 말했다. 슬프게도 오늘날 많은 칼빈주의자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결국 자신들의 구원이 그들의 신실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심지어 우리가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다는 것을 말한다(딤후 2:13).
결정적인 생각
고려해야 할 유일한 요점은 이 기사의 시작 부분에서 우리가 말했던 “한 번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으면, 그 후 그들은 결코 다시는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동료와 부모의 압력, 그리고 다른 이유 때문에 믿음을 거짓 고백하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진정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나중에 그 고백을 취소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는 구원을 받았지만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의 확신을 강탈하려고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비교. 창 3:1).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거짓 믿음의 고백을 불법화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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