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A. 바네스
제한된 속죄의 교리 즉 그리스도는 오직 택한 자들만을 위해 죽으셨다는 칼빈주의 교리는 칼빈주의가 아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교리입니다. 이번 달에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강조할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두 번 벌하시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불신자는 지옥에서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은 요한의 진술로 입증됩니다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속죄)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요일 2:1-2). 물론 신약에서 말하는 화해 헌물은 구약의 속죄와 동일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속죄일(레 16장 참조)에 속죄소에 피를 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들을 용서하시고 또 다른 일 년 동안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뿌려진 피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뉴베리의 신약 성경은 (사무엘 백스터, 런던, 1870, www.archive.org 에서 읽으시라) 변함없이 “화해 헌물”의 난외 번역으로서 “속죄소”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도 주 예수님은 그분의 귀한 피를 흘려서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의의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바울은 특히 복음을 위해 디모데에게 기도의 시급성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딤전 2:4)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딤전 2:5-6). 다시 한번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 그래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위하여”와 “대신하여”의 차이
우리는 지금 이 문제의 세가지 중요한 표현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W.E. 바인은 잘 알려진 신약 단어 해설 사전의 부록에서 헬라어 전치사 ajntiv(안티)와 uJpevr(휘페르)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별히 교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 20:28과 막 10:45, 즉 ‘많은 사람을 위한(ajntiv,안티) 몸값을 그분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라는 말씀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대신에”라는 대속의 의미는 딤전 2:6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uJpevr)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라는 복합어와 ajntivlutron,안틸뤼트론, 대속물)과 마찬가지로 분명합니다, 여기서 uJpevr를 사용한 “대신하여”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몸값으로 주셨는데 모든 사람들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대속의 성격) 주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의 구절들에서처럼 실제적인 대속은 많은 사람 ajnti(대신하여)로 표현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가 그를 대신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는 그 교체가 그에게 유익을 줄 것이며 비록 거듭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떤 상태 죽음의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 그 상태에서 구출된 사람들입니다.
영국의 데이비드 웨스트는 또한 대속의 교리와 관련하여 헬라어 단어 uJpevr(휘페르)와 ajntiv(안티 )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W.E. 바인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복된 진리인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이 …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는데’(딤전 2:5-6); '누구든지 원하는 자’를 위해 하늘의 길을 열어주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의로운 기초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들을 짊어지셨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죄들을 담당하셨다면 잃어버린 자들은 무엇 때문에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까? 계 20:12은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고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사도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너희 죄들은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동료 신자들에게 쓰면서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벧전 2:24)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벨파스트에 있는 모임의 증거에 의해 발행한 “그분의 은혜의 영광”에서 대속에 대한 장을 참조. 그리고 모임의 증거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잡지 진리와 소식에 실린 스코틀랜드의 짐 베이커의 해설에 주목합니다(위대한 복음 주제들 – 속죄”를 참조, http://onyang.tistory.com/2586). 이 두 가지 중요한 성경의 진리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교리적 오해가 생깁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속죄’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역이었습니다. 여기에 아무 제한이 없었습니다.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또한 타락의 모든 결과를 충족시키에 충분한 속죄적 가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요일 2:2)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제한된 속죄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입니다. 대속은 그리스도께서 내적으로 행하시는 희생적 사역입니다. 아주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직 신자들만이 “그분께서 내 자리를 차지하셨다”(고전 15:3-4)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속은 성도들이 누려야 할 진리이며, 화목제물은 성도가 죄인에게 선포해야 할 진리입니다.
결론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지 않으셨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이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분의 사역만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믿을 때에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진실로 기쁘게 말할 수 있습니다(고후 5:14). 동시에 우리는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진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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