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고난과 죽음
병든 몸을 건강케 하고 병든 자아를 고치고
병든 영혼을 회복시키는 길은 쓴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암에 걸린 한 성도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눈물로써 주님 앞에 계속 엎드렸습니다. 그 때 가만히 임하는 세미한 소리가 그의 심령에 들려왔습니다. 남 다 자는 밤에 이슬이 온 들에 살며시 내리듯이.
흙으로 지음 받아 땅에 살고 있는 그대가 참으로 살고자 하거든 참으로 죽어야만 합니다. 정말 그대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믿는다면 그대는 정말 그와 함께 살아날 것입니다.
죽음과 삶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땅 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최후적인 고통과 비애는 곧 이어질 영원한 삶의 환희와 평안을 얻기 위한 새벽 종소리입니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하여 빛이 비치듯이 죽음은 생명을 초청하는 슬픈 노래입니다.
육신의 호흡을 멈추는 것은 영혼의 호흡을 시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죽음에는 침묵이 따르고 주검에는 흙이 덮입니다. 산모의 고통이 생사의 선상에서 계속 되듯이 당신의 육신의 고통은 영육의 골짜기를 통과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썩어져 가는 암뿌리와 함께 죽음의 밑까지 내려가 거기서 부서져야 합니다. 당신은 공포와 고난이 엄습하는 죽음의 심연 속에서 고난의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죽음의 병과 그 고통은 땅에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이요 깊은 관심의 강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피하지 말고 죽음이 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모든 환난은 교훈적인 징계이며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썩어 들어가는 암을 받아들이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오(히
마귀에게 속한 이 세상의 사생자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모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종국적인 형벌이 갑자기 임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때 그때마다 징계와 교훈이 따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대에 게 주시는 유익이요 축복입니다. 고난은 은사(恩賜)입니다.
비록 당신의 몸은 피골이 상접하고 그 영혼이 파리하지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듯이 이제 곧 당신은 생명의 진리의 법칙을 따라 영광의 나래를 펄럭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당신은 죽은 개 같은 므비보셋처럼 임금님과 함께 영화로운 궁궐에서 즐거운 연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거지 병자 나사로가 저 복된 낙원에서 주님과 더불어 환희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당신은, 예루살렘 왕 전도자가 하늘 아래서 한탄하는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까? 모든 재산과 가족들을 졸지에 다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 구더기와 더불어 절규하는 욥의 모습을 보았습니까? 큰 물고기 뱃 속에서 창자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요나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인신매매 당하여 애굽의 종이 된 요셉과, 창녀와 결혼하게 된 호세아의 처참한 생활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의 절망적인 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가는 병입니다. 당신의 병은 죽음을 이기는 병이요 죽음 저 편에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병입니다. 정말 당신은 소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사랑의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채찍으로 아프게 맞고 그 사랑의 손으로 고침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 119:67,71,75).
성경적인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볼 때 모든 질병과 사고와 죽음과 그 고난은 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의 범한 죄의 댓가일 뿐만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그 안에서 나온 하와 때문입니다. 원죄적인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가 당하는 질병과 고난이 그 자신의 죄보다는 그의 가족들과 그가 속해 있는 교회와 사회에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고통의 의미와 그것을 극복하는 비결을 깨달아 주십시오. 그 고통 속에서 값진 진주가 나옵니다. 당신이 당하는 고통은 산모가 자식을 낳기 위한 것처럼,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입니다. 긴 겨울이 견디기에 고통스럽지만 그 뒤에 소리없이 이어지는 조용하고 찬란한 봄을 소망해 주십시오. 그 매섭게 추운 겨울 동안 벌레들이 죽고, 인내를 배우고, 기다림의 묘미를 맛보십시오. 고난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친 상사 후 고향 친척을 떠나 정처없는 나그네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기업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아갔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모세가 쓰임을 받기 전에 무려 80년 간을 애굽과 광야에서 당했던 고난과 고독과 그 훈련을 기억하십시오.
겨울을 통과한 꽃들이 더 싱싱하고 고산지대의 꽃들이 더 향기롭습니다. 골짜기에 피어 가시에 찔려 향기를 토하는 백합화를 보십시오. 더러운 진흙 속에서 나온 연꽃과 조개 속에서 오랜 세월 후에 빛을 발하는 진주를 보십시오.
당신이 당하는 대부분의 당신의 육신적인 잘못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마땅히 당신 스스로 당해야 되고 당신 스스로 무릎을 꿇고 자업자득한 쓴 잔을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이고 그분을 위한 고난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마땅한 성경적인 고난입니다. 이런 가치 있는 고난을 당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사는 아픈 환자에게 필요하고 고난은 죄인에게 따르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일수록 고난이 그 믿음을 바로잡는 선생이 됩니다.
당신은 달달한 설탕을 멀리 하고 할 수 있는 한 쓴 약을 기쁨으로 받으십시오. 우리 주님은 만민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쓴 잔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마셨습니다.
병든 몸을 건강케 하고 병든 자아를 고치고 병든 영혼을 회복시키는 길은 쓴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보약은 쓴 잔 속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쓰디쓴 고난의 잔을 주실 때에 당신은 그저 묵묵히 받아 마시십시오. 그로 인하여 당신의 입 안이 다 타고, 두 눈이 멀고 귀가 먹는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그 쓴 잔을 다 비우십시오. 하나님은 빈 그릇,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오 사랑하는 이여! 그러므로 당신은 이 고통에서 초연한 믿음과 끈기 있는 인내를 경주해 주십시오. 당신의 두 다리가 다 못쓰고 등뼈가 다 부러지고 신경이 다 마비되고 오장육부가 다 못쓰게 된다 할지라도, 당신을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영이시니 끝까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 피하십시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선으로 악을 대하고, 기도로 하늘 문을 열고, 인내로 소망을 이루고,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사랑으로써 비판자들의 머리에 숯불을 지피십시오.
사랑하는 이여, 항상 주님의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착하고 곱고 부드럽고 겸손하고 청아한 자세를 가지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993년 2월호)
'횃불 > 199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 부흥(2) (0) | 2013.06.21 |
---|---|
알고 싶습니다 - 그리스도에 대해서 (0) | 2013.06.21 |
자백 (0) | 2013.06.21 |
경건의 시간이란? (0) | 2013.06.21 |
요한 계시록 강해(2) (0) | 2013.06.19 |
솔로몬과 욕심장이 할멈 (0) | 2013.06.19 |
교회학교 교육 계획의 지침 (0) | 2013.06.19 |
우리의 아뢰는 소망 (0) | 2013.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