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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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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1. 11:31 횃불/1993년

알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1. 그리스도의 천사로서의 출현에 대해서

주 예수님은 때때로 천사로 언급된 것이 사실인지요? 어떻게 천사보다 높으시고 그들의 경배 대상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렇게 언급될 수 있는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서는 아무리 흠모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장은 천사들에 대한 그분의 뛰어나심을 여러 면에서 확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가장 높은 천사들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지위와 관계와 특권과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위임하다”(depute)는 뜻의 어근에서 나온 히브리어 말락, “알리다”(announce)는 뜻의 어근에서 나온 헬라어 앙겔로스는 둘다 일반적으로 천사로 옮겨지며, 종종 사자”(messenger)로도 옮겨집니다( 32:3, 20:14, 왕상 19:2, 왕하 5:10, 1:13, 42:19(아마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듯함), 11:10(세례요한을 가리킴), 7:24(세례요한의 사자들), 9:52, 고후 12:7 2:25).

따라서 우리가 말락앙겔로스란 단어가 주님 자신을 가리키는 대목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분을, 그분 자신의 피조물인 천사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여호와의 사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실로 언급된 천사를 신적인 존재로 이해해야 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48 16절에서 야곱이 그의 손자들에게 축복을 구하며 언급한 그의 천사”(우리말 성경에는 사자로 되어 있음-역주)가 단순한 천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그것은 천사를 하나님의 수준에 위치시킨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출애굽기 3장에서 2절의 여호와의 사자 4절의 여호와가 됩니다. 이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앞에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덧붙이셨습니다( 23:21).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천사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마노아의 경우에, 신적인 존재 외에 어느 누가 감히 번제로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있을까요? 확실히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믿었습니다( 13:20~22).

하나님께서 단순한 천사와 같은 존재로 자신을 알리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는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를 참람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1:18). 그분은 거기(아버지 품속)에 거하시기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계시하실 때, 인자께서는 비록 땅에 계시면서도 하늘에 계셨습니다( 3:13). 얼마나 복스런 역설인지요! 인간의 이성은 그 역설 앞에 당황해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복하고 경배를 표합니다. 끝으로 말락이 두번 사자로 언급된- (1) 세례요한과, (2) 구약성경 나머지부분에서 언약의 천사”(혹은 사자”)로 사용된 동일한 히브리어 표현인 언약의 사자로 육신의 몸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킴-말라기 3장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신적인 존재로서 우리가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아는 분을 가리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2. 그리스도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모양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가 오늘날 알려진 그런 형태의 십자가였을까?

사실, 신약성경에서 십자가”(Cross)로 옮겨진 스타우로스라는 단어의 첫번째 의미는 말뚝”(stake, 원어상 지지하다는 뜻의 히스테미에서 나왔음)이며 이 단어는 죄수를 그 위에 못박는 형()을 표현할 때 이따금씩 사용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십자가로 불리우는 이 말뚝은 가로막대 위에 죄목이 부착된 T자형의 라틴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T자형이 로마인들이 사용한 십자가의 형태이며 의문의 여지없이 그 위에서 우리 주님께서 못박히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바벨론 종교의식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로마인들이 주님을 보통의 라틴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의복이나 종교적인 건물에 장식물로 부착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죽으셨다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요? 만일 그것이 잘못이라면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시네”, “전능하신 창조주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등등 표현된 찬송가 가사들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위에 언급된 예 외에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찬송가 가사들 중에는 고쳐져야 할 내용들이 더러 있음이 분명합니다. 확실히,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인 표현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만 죽지 않음이 있기때문입니다. 물론 그분은 그러한 분으로서 죽으실 수 없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이셨으며, 도마가 후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한 것은 매우 옳은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실례를 하나 들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되는데, 시편 121편에는 여호와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는 표현이 두번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가복음 4 38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다는 기록을 읽고는 하나님께서 주무셨다거나 혹은 주무시던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셨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2 14절은, 1장에서 아들, 만유의 후사, 만물의 창조주와 유지자등으로 언급되었고, 그러한 분으로서 죽지 않음을 소유하셨고,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분께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 친히 혈육에 함께 속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분은 이전의 모습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육신이 되셨으며, 비록 우리처럼 죽음에 복종하지는 않으시지만 죽음을 맛보실 수는 있으셨습니다.

 

4.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시작된 때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던 때인가요, 아니면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되신 때인가요?

만일 우리가 레위기 8,9장에 주어진 기록 가운데 어느 시점에서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시작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 여러가지 답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마 어떤 이들은 아론이 이 장들에 언급된 8일 중 첫째 날에, 그러니까 그가 하나님께서 불러세우신 자로서( 5:4) 회중 앞에 나아가던 바로 그 때부터 대제사장이었노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의 대제사장직은 그 첫째날에 몸을 씻고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고 제물을 드리는(위임식 양을 바치는 일을 포함해서) 일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7일간의 성별기간이 끝난 후에 비로소 그는 대제사장으로 불리울 수 있었다고 말할 것이며(8:33), 어떤 이들은 제 8일에 백성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기까지는 그의 제사장직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입니다(9:15). 만일 우리가 이러한 대답들을 듣게 된다면 과연 그 중 어떤 것이 완전히 그릇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히브리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시작에 관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9 11,12절에는, 구약의 대제사장들의 사역에 대한 묘사에 이어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대제사장으로 오사····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대제사장으로 오사라는 표현은 속죄를 이루는 것과 관련 있는 그분의 활동의 시작을 기점으로 그분께서 제사장직을 행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분명 그것은 그분께서 들어가시기이전이었습니다. 그리고 2 17절에는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혹은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그분의 대제사장 되심은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심으로 인한 결과였으며, 그분이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였습니다.

그리고 6 20절에는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대세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분의 들어가심이 그분의 대제사장 되심 직후에 이루어졌음을 암시해주는 듯 합니다.

다음으로 5 10절에 의하면,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신”(빌립보서 2 8절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확실히 그분의 죽음을 포함한다) 후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온전케 되신후에, 그 때 그분은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분의 승천시에 그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선언이 있었다는 의미를 내포할 것입니다.

끝으로, 8 4절은 그분의 대제사장직이 땅 위에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7 26절은 그 대제사장직이,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그분이 계신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을 그릇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까요?:

(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을 때 희생제물이셨을 뿐 아니라 제사장이셨다고 말하는 사람.

(2) 그분의 제사장직은 그분의 죽으심의 결과의 일부라고 말하는 사람.

(3) 자신의 제사장직의 행사를 위해서 그분은 현재 계신 곳, 즉 하늘 성소에 계실 필요가 있으셨다고 말하는 사람,

이 모든 경우에 대해 우리는 그릇되었다고 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93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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