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구원(24)
H. P. 바커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성경말씀들(10)
“그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
여기에서 ‘제자’라는 말의 원어는 ‘추종자’, 또는 ‘학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가식으로 추종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거짓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저들은 예수님이 저들에게 거슬리는 말씀을 하시자 예수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역시 저희들이 구원을 놓쳤다고 말하지 않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말한 것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진실한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주님과의 교제를 떠나서 퇴보하는 일이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이 교제의 단절이 구원을 놓친 것을 의미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살전
여기에서 “너희가 이제는 살리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말한 점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만약 데살로니가의 신자들이 굳게 서지 아니하였더라면 바울의 구원도 상실되었을 것이라는 의미를 이 말씀이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른 모든 성경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영생에 관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굳게 서 있다는 사실을 앎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나타난 축복과 기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암즈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서 있으므로 이제는 내가 진실로 살리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로 증거하었도다”(딤전
바울은 여기에서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격려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싸움”이란 본래 희랍의 운동경기에서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어떤 이는 “시합에 참가하다”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디모데후서
“바울이 여기에서 디모데에게 영생을 취하라고 권면한 것은 디모데가 영생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한 것이 아니다. 디모데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영생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여기에서 디모데가 이 땅 위의 그의 생활에서 이 영생의 체험을 더욱더 깊이 할 것을 희망하였던 것이다.”
영생은 우리가 진실한 믿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영적으로 우리의 소유가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요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생은 모든 신자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영생을 취하라’고 말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영생을 취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이 영생이 땅 위의 우리의 생활에서 실제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라는 권면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의 영혼 속에 영생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생의 실제와는 관계없이 살아가므로 영적으로 비천한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 바울은 우리 모두에게 질적으로 세상에 속한 생활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생활에 들어갈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 위에 계실 때 몸소 이 영생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위하여 살아가면서 영생을 소유했다고 말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영생을 취하라!’ 나는 나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결코 마음이 쓸리지 않는다. 세상의 즐거움이 나를 유혹하지 못하며 세상의 재물이 나의 영혼을 점령하지 못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늘의 것들을 오용하지 않고 유익하게 사용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나를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이 말씀에 나타난 사상이 디모데전서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참된 생명을 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부자는 자기가 가진 재물이 주는 향락을 누리면서 그것이 곧 생명이며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부자는 향락 속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이것이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것은 사망에 불과할 뿐 절대로 생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생명을 알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또 그 생명이 주는 가장 놀라운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맡겨서 보관시키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 당신이 만약 진정한 행복을 바라고 있다면, 또 주님을 확실히 더욱더 알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길을 잃은 죄인의 한 사람이었는데 주님 앞에 나아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사망에서 떠나 생명에 이른 자라면 나는 당신에게 해야 할 바를 말해 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그 비결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의 축복을 위하여 사용하기 바란다. 또 당신은 궁핍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당신이 축적해 둔 것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바란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당신의 재물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기 바란다. 만약 사람이 증권이나 부동산만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면 죽음이 닥쳐올 때 그 모든 물질을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선한 사업에 물질을 투자한다면, 그 사람은 죽음이 닥쳐올 때 그 모든 보화를 가지고 가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보화를 하늘에 쌓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당신의 재물을 니누어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당신이 재물을 주님의 사업을 확장하는데 시용하기를 바란다. 가난한 자와 문둥병자와 눈먼 자와 고아들을 도와주기 바란다. 망설이기만 하거나 ‘남을 돕기는 도와야지요’ 하고 말만 하는 자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시고 당신과 더불어 교제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뻐하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남을 돕는데 재물을 사용한다면 당신은 곧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것이니라’는 말씀을 따라 살았다고 볼 수 있다. “ ♠<다음 호에 계속>
(200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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