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rone of Grace 매튜 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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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lted above his subjects, the one who fills a throne sits in a position of power. His throne is a symbol of his might – and down through the ages, many have shamelessly abused the sovereign authority invested in their thrones in heartless, self-serving domination. The people have gone hungry while the throne sitter has gorged himself. The people have struggled as serfs, labouring to scrounge together an existence, while the throne sitter has lived in the lap of luxury. The people have approached his throne cowering, fearful of an outburst of anger, while the throne sitter gleefully prides himself in his ability to invoke trepidation in his subjects. But praise God it is not so at the throne of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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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국민들보다 뛰어나 왕좌를 차지하는 사람은 권세 있는 자리에 앉는다. 그의 왕좌는 자신의 힘의 상징이다,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은 뻔뻔스럽게도 그들의 혈통에 수여된 주권을 무자비하게 자기 중심적인 지배로 남용해 왔다. 백성은 탐욕을 가진 사람이 왕좌에 앉아있는 동안 배가 고팠다. 왕위 계승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살았던 반면 백성은 노동으로 고군분투하며 함께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백성들은 왕좌에 앉은 자의 분노의 폭발을 두려워하며 왕좌에 위축되었고, 왕위 계승자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능력에 대해 기뻐하며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은혜의 왕좌는 그렇지 않은 것에 하나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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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trants to the Throne Room “We” are the ones who draw near to
this throne of grace. Not seraphim or cherubim, not the independently
wealthy or the arrogant living at ease, but six times in three verses (H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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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에 들어가는 사람들
"우리"는 이 은혜의 왕좌 가까이로 이끌린 사람들이다. 스랍이나 그룹도 아니며 독립적으로 부유하거나 오만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또는 “우리에게”라는 말이 세 구절에서 여섯 번(히 4:14-16)이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을 느끼고 우리의 필요에 압도당한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과 다른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도들이다. 우리는 길 잃은 아이를 어떻게 인도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부모다. 우리는 쓸데없이 결혼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배우자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고통의 일상적인 부담에 지친 환자들이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기에 왕좌로 들어가지만, 많은 시련으로 인해 우리는 약하고 궁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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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we find our great high priest,
Jesus the Son of God. He has passed through the heavens and sits in
a realm beyond trials – but He was once here and knows exactly what it’s
like. Ostracization,
physical weakness, unrequited affection – He
felt these and much more. His human experience
was real, and that is why weary pilgrims in this wilderness of the world can
find genuine sympathy in the throne room of heaven. There
is a risen man in the glory who has been “tempted as we are” (v15).
“Because he himself has suffered when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H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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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 안에
우리는 위대한 대제사장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찾았다. 그분은 시련을 넘어서는 하늘의 영역에 앉아 계셨지만, 그분은 한때 여기 있었으며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배도, 육체적 약함, 보잘것없는 애정 – 그분은 이러한 점을 훨씬 더 많이 느끼셨다. 그분의 인간 경험은 실제였고, 그래서 이 세상의 광야에서 지친 순례자들은 하늘의 왕좌에서 진정한 동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15절) 부활한 사람이 영광 안에 있다.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히 2:18).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신다, 왜냐하면 왕좌에 계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와 같은 길을 걷으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걸어가셨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실제 인간의 삶을 경험하셨다(15절). 그분은 우리가 갈망하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그분은 우리와 같으면서도 우리와 다르다. 그분은 이해하시지만 그분은 굴복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동정하신다 게다가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히 7:25)시기에 충분하다. 그분은 죄 없으신 능력으로 언제나 우리를 위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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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arkably, we who have been
exposed in our failure and weakness are invited to draw near to God’s throne.
We come to the Majesty of heaven (H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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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접근 태도
놀랍게도 우리의 실패와 약점에 노출되어 온 우리는 하나님의 왕좌 가까이로 초청받는다. 우리는 하늘의 위엄(히 8:1)에 이르지만, 우리는 두려움이나 공포에 위축되지 않으며, 우리가 거기에 있을 유익에 대해 놀라워한다.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은 그분의 피가 “단번에”(히브리서에서 4번) 흘려졌기 때문에 그곳에서 우리의 자리를 돌이킬 수 없게 확보하셨다.[1] 이제 우리는 “담대히”(KJV) 또는 “확신을 가지고”(ESV) 오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가 뻔뻔스런 자만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로 사서 얻은 특권의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실 것을 확신한다. 우리의 약점이나 우리의 필요를 감출 이유가 없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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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is a giving God, beloved. He already gave us the greatest
gift – salvation in His Son, a gift of grace (Rom “He giveth more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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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시는 자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이미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 즉 그분의 아들 안에서의 구원,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롬 3:24, 엡 2:8). 그리고 그분은 계속해서 주신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 5:10)으로써 그분은 우리에게 삶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게 걷도록 강건해져야 할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2] 그리고 필요가 반복해서 생기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주신다. 애니 존슨 플린트(1866-1932)는 연약함과 필요성을 충분히 알았다: 그녀가 3살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녀를 원하지 않는 가정에서의 시간들, 가난, 아직 젊은 여성일 때 그녀의 신실한 양친의 이른 죽음, 그 이후에도 육체적 고통이 많았다.[3] 20대 중반부터 그녀는 평생 무기력한 병약자로 갇혀 있었다. 그러나 여덟 살이 되던 해 애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되었고(고후 8:9), 그 후 곧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글은 이 하나님 왕좌에서의 경험에 대한 증거였다.
“그분은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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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ight feel like our circumstances are beyond hope – but from this throne, mercy flows to save us in our pitiable condition. We might feel like we don’t deserve the help – but the throne is a throne of grace, intended to be a dispensary of strength for those who are unworthy, yet in need. We might feel like we have come too often, as if we have abused our privileges, but that is impossible. As often and great as our times of need, so is our welcome at the throne of grace. And at the threshold of a trial, we might wonder how we will ever cope – the answer is found in this heavenly throne room. The help will be just what we need and just when we need it at God’s throne of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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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background in Hebrews is the Tabernacle and the Day of
Atonement. Interestingly and beautifully, William Tyndale’s translation
renders both this throne in Hebrews [2] See 2 Timothy [3] Search Annie’s Story by Rowland Bing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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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브리서의 배경은 성막과 속죄의 날이다. 흥미롭게도 아름답게도 윌리암 틴데일의 번역은 히브리서 4:15절의 이 왕좌와 히브리서 9:5절의 자비의 자리를 "은혜의 자리"로 표현한다. [2] 디모데후서 [3] 롤랜드 빙함의 애니의 이야기를 검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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