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
Love (1)
아가페 사랑 (1)
구스타프슨, 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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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That Pleases God – 1 Cor 13
The apostle Paul and the apostle John
were both balanced about love and faith. Paul i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Apostle of Faith, and he wrote the most glorious treatise on love to be found
in all of literature in 1 Corinthians 13. John is often referred to as the
Apostle of Love, yet he wrote his gospel for faith (John 20:30-31). This shows they were
balanced in their teaching about faith and love, but there are also verses
which show they were balanced about love an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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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랑 – 고전 13장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은 사랑과 믿음에 대해 모두 균형이 잡혀 있었다. 바울은 때로는 믿음의 사도라고 불리우며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모든 문헌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가장 영광스러운 논문을 썼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종종
불리었지만 믿음에 대한 복음을 썼다(요 20:30-31). 이것은
그들이 믿음과 사랑에 관한 가르침에서 균형이 잡혀 있음을 보여 주지만, 사랑과 믿음에 대해 균형
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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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ostle of Faith wrote,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and have not love (charity);
I am nothing” (1Cor 13:2, KJV).
The Apostle of Love wrote in 1 John 5:4, “this is the victory that overcometh the world,
even our faith” (KJV). So they were balanced believers, unlike
Ephraim. “Ephraim is a cake not turned” (Hos 7:8, KJV). That is,
Ephraim was like a cake done (perhaps overdone) on one side, and
not done at all on the other side, so not fit for e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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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도는 이렇게 썼다.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자비심)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2, KJV).
사랑의 사도는 요한일서 5:4절에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KJV)라고 기록했다. 그래서 그들은 에브라임과는 달리 균형잡힌 신자들이었다.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납작한 빵이로다”(호 7:8, KJV).
즉, 에브라임은 한 편으로 (아마도 지나치게) 완성된 빵 같았으며, 다른 쪽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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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important for us to note those
two apostles were also balanced about love itself. Neither Paul nor John
looked on love as merely sentimental, allowing (or tolerating) evil. The word
used (agape), is the characteristic word of Christianity, a
self-sacrificing love. Paul wrote, “And this I pray, that your love (agape)
may abound yet more and more” (Phil 1:9, KJV). This verse may sound as if Paul
wanted them to be carried away to extremes by love, but he definitely
qualifies it by saying, “in knowledge and in all judgment” (“discernment,” RV).
The word Paul uses for love is to be distinguished from phileo, a
word which means “tender affection.” Agape love
is like a mighty river which is kept under control by the two banks: knowledge
and judgment (disc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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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사도가 사랑 자체에 대해서 균형을 이루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우리를 위해 중요하다. 바울이나 요한은 단순한 감상적인 것으로서 사랑을 바라보지 않았고, 악을 용납하지(또는 관대히 다루지) 않았다. 사용된 (아가페) 단어는 기독교의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특징적인
단어이다. 바울은 “내가 이것을 기도하노니 곧 너희의
사랑(아가페)이 … 더욱더 풍성해지고”(빌 1:9, KJV)라고
기록했다. 이 구절은 바울이 그들을 사랑에 의한 극단적으로 이끌어 내길 원했던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는 “지식과 모든 판단에서”(“분별력”, RV) 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확실하게 권한을 부여한다. 바울이 사랑에 사용하는 단어는 “다정한
애정”을 뜻하는 필레오와 구별되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은 두 제방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거대한 강과 같다: 지식과
판단(분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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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also demonstrated his balance
when it came to love. He wrote, “But whoso keepeth His Word, in him verily is the love of
God perfected”(1John 2:5, KJV)).
Again, he (rightly) wrote, “For this is the love of God, that we keep His
commandments”(1John 5:3, KJV).
John rightly links love with keeping His Word and commandments. Paul himself
qualifies the love of 1 Corinthians 13 by writing,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Some saints (including some excellent
teachers among us), have been hindered from appreciating this chapter by its
use to excuse unscriptural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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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또한 사랑에 관한 균형을 보여준다. 그는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게 되었나니”(요일 2:5, KJV)라고
썼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 때에”(요일 5:3,KJV)라고 썼다. 요한은 그분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것과 사랑을 올바르게 연결한다. 바울
자신도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라고 기록한다. 일부 성도(우리 가운데 훌륭한 교사들 포함)들은 비성경적인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 이 장을 올바르게 읽는 것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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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is the middle of three
intimately connected chapters. In chapter 12, we have the
endowment of gifts. In chapter 14, we have the exercise of gifts.
In chapter 13, we have the energy with which those gifts should be exercised.
John R. Caldwell, in his good commentary on 1 Corinthians, is probably the
first one to use this illustration. In chapter 12, we have the machinery. In
chapter 14, we have the machinery in motion. In chapter 13, we have the oil
which keeps the machinery running smoothly. It is no wonder that the late
Fisher Hunter called the love of chapter 13 “church lubrication.” All
assemblies need church lubr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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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은 밀접하게 연결된 세 장의 중간에 있다.
12장에서는 은사들의 능력이 있다. 14장에서는 은사들을 실행한다. 13장에서 우리는 그 은사들을 실행해야 할 힘이 있다. 존 알
콜드웰은 고린도전서에 대한 그의 좋은 주석에서 이 실례를 사용하는 한 사람이다. 12장에는 기관이
있다. 14장에서는 우리가 활동하는 기관을 가지고 있다. 13장에서는
기관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름을 가지고 있다. 최근의 피셔 헌터가 13장의 사랑을 “교회의 윤활”로 불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모임들은 교회 윤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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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verse of chapter 12, and the
first verse of chapter 14, show the intimate connection between chapters 12,
13, and 14. The RV of 12:31 reads, “but desire earnestly the
greater gifts: yet a still more excellent way show I unto you.” We should
notice that it is not “a more excellent thing,” but “a more excellent way.”
In chapter 14, Paul clearly shows love is greater than the greatest gift,
both in importance and permanence, but his primary aim in chapter 13 is to point out
that love is the more excellent way to discover what is really the greater
gift, the only supreme and excellent way in which
the exercise of a gift will be a blessing. If
I have love, I will judge that the greater gift is the one that will most
help and perfect God’s people. The first verse of chapter 14 also
shows that these three chapters are linked together. “Follow after love”
is to pursue love diligently. If anyone wants to know why we should pursue
love diligently, the whole of chapter 13 is the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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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의 마지막 절과 14장의 첫 번째
절은 12장, 13장,
14장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12:31에서 RV는
“큰 선물을 열렬히 간구하지만 아직 내가 너에게 보여준 더 훌륭한 방법”이라고 읽는다. “더 훌륭한 것”이
아니라 “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4장에서 바울은 사랑은 중요성과 영원성 모두에서 가장 위대한 선물보다 컸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만, 13장에서 그의 주된 목적은 은사의 실행이 축복이 되는 유일한 최상이고 훌륭한 방법이며 사랑이 실제로
더 큰 은사임을 보여주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을 가장 완전하게 도울 큰 은사라고 판단할 것이다.
14장의 첫 번째 절은 또한 이 세 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을 따르고”는 열심히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부지런히 사랑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13장 전체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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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Rodgers points out that, if
the Corinthians had the love of 1 Corinthians 13:4-7, they would have been spared their troubles in a sevenfold way. In chapter 1, they
would not have been puffed up one against another because love “is not
puffed up.” In chapter 5, they would not
have tolerated the fornicator because love “rejoiceth not in iniquity.” In
chapter 6, they would not have gone to law one against another or defrauded
one another because love “suffereth long and is kind.” In chapters
8 and 10, they would not have stumbled their weaker brethren because love “seeketh
not her own.” In chapter 11, none of the brethren would
have been drunken, and none of the sisters would have had their heads
uncovered, because love “behaveth not itself unseemly.” In chapter
12, those with a lesser gift would not envy those with a greater gift
because love “envieth not.” In
chapter 14, those who had a gift would not have been pushing it on others,
because love “vaunteth not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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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로저스는 고린도인들이
고린도전서 13:4-7절에 대한 사랑을 가졌다면
그들은 일곱 겹 방식으로 그들의 분쟁을 면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1장에서 사랑은 “우쭐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우쭐대지 않았을 것이다. 5장에서 사랑은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들은 간통자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6장에서 그들은
사랑이 “오래 참고 친절하기” 때문에 서로 대항하여 법대로
가거나 속여서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 8장과 10장에서
그들은 사랑은 “자기 것을 추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들은 연약한 형제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11장에서 그 형제들 중 누구도 술에 취해 있지 않았을
것이고, 자매 중 누구도 자기 머리를 드러내지 않았을 것인데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12장에서, 작은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큰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았는데 사랑은 “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14장에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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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Henry Drummond wrote “In the heart of Africa, I have come across
black men and women who remembered the only white man they had ever seen
before – David Livingstone; and as you cross his footsteps in that continent,
men’s faces light up as they speak of the kind doctor who passed and helped
so many there so many years ago. They could not understand him, but they felt
the love that beat in his heart. They knew it was
love, though he spoke no word. He
helped so many of them med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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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위대한
것에 대해 헨리 드루먼드는 기록했다. “아프리카의 중심부에서 나는 그들이 전에 보았던 유일한 백인을 이제까지 기억했던 흑인 남성과 여성을 우연히
만났다 - 데이비드 리빙스턴; 그리고 그 대륙에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수년 전에 그곳을 지나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도왔던 친절한 의사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그 마음에 고동치는 사랑을 느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의학적으로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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