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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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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12. 08:02 말씀 안으로

이덕호

히브리서 1: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히브리서 8:1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히브리서 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사실을 통해서 그 사실을 가지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히브리서 1장으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증거하는 말씀 가운데 특히 히브리서를 전체를 생각을 해보면 아무래도 양이 많기 때문에 히브리서 전체 내용을 이렇게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힘듭니다.

다만 히브리서 내용을 살펴보게 되면 분명히 히브리서는 어떤 사람들을 경계하고 경고하고 하지 말기를 권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하지 말도록 하는 그 내용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약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가지 않도록 또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 크게 이유가 두 가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극심한 환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히브리서 뒤에 나오는 대로 이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유대인들의 아주 극심한 환란과 핍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육신의 유혹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하면서 율법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제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 시작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히브리서 전체를 생각해 보면 자주 등장하는 방법은 두 가지를 비교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말씀하시는 하나는 만약에 A라고 한다면 두 번째 A와 대비되는 B라고 하지 않고 제가 A+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A를 말씀하시면서 그 A가 증거하고 있는 A+를 말하고 또 두 번째는 그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뒤에 나오는 A+가 앞에 말한 A보다 훨씬 뛰어나고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이 히브리서 전체의 하나의 말씀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집니다.

대표적으로 히브리서 1:1절에 보면 A에 해당되는 첫 번째 내용은 1:1절에 옛적의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래서 첫 번째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옛적에 아마도 구약 성경을 가리킬 것으로 보입니다만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것을 A라고 한다면 이것과 비교되는 것이 2절에 나와 있는 대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A+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4절부터 이어서 나오는 내용을 보면 비교하는 첫 번째는 천사입니다. 마치 A에 해당되는 천사에 대한 말씀과 그 다음에 천사를 하나님의 아들과 에이 플러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비교를 시키면서 그런데 특이한 것은 A가 A+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A가 이 A+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빛의 어떤 물체를 딱 쏘면 그림자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그림자가 마치 처음에 말씀하신 A에 해당되고 그 본체가 여기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A가 A+를 증거할 뿐만 아니라 또 두 번째 사용하는 방법은 그 A보다 A+에 해당되는 이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더 뛰어난가 얼마나 더 높으신 분인가 이 두 가지 방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단 13절로 가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여기에 인용하신 말씀은 구약 성경 시편 110:1절입니다. 일단 구약 성경 시편 110:1절로 가서 말씀을 확인하고 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약성경 시편 110: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히브리서 1장으로 돌아와서 뭔가 차이점을 발견하셨습니까? 히브리서 1:13절에는 시편 110:1절에 맨 처음에 말씀하신 부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부분을 생략하고, 히브리서 1:13절에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인 “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라는 말씀만 인용하시고 이 말씀이 13절 처음에 나온 대로 천사 중 누구에게도 말씀하신 적이 없고, 이 말씀이 가리키는 바는 앞에 1장 앞부분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이 말씀을 증거했다고 가리킨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리라”고 하는 시편 110편 앞부분의 내용은 사실은 복음서에서 여러 번 등장하게 됩니다. 한번 말씀을 찾아보면 마태복음 22:41절입니다. 똑같이 시편 110편의 말씀이 인용이 되는데, 마태복음 22:41-46절까지의 내용이 기록이 돼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또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질문을 던졌고 그들에게 오히려 예수님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이 42절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다. 43절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의 자손이 그리스도가 메시아가 누구의 자손으로 오느냐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잘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편 101편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이 말은 바로 시편 110편에 있는 요 말이 다윗이 성령의 감동에서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한 말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시편 110편에 나오는 주께서 구약의 시편 11편에서는 뭐라고 기록돼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여호와께서였습니다. 주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이 말은 다윗이 하는 말임을 알 수가 있고, 다윗이 말하기를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이 주라고 부르는 내 주라고 부르는 그분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신다는 것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45절에 바리새인들한테 한 질문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음,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무슨 말이냐면 분명히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바리새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자기 뒤에 자기의 자손으로 올 한 누군가를 향해서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는 그 주라고 하는 명칭을 자기의 자손으로 올 그 누군가에게 내 주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윗이 자기의 자손으로 올 언젠가 모를 그 후손으로 올 누군가를 향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는 그 주라고 하는 호칭을 다윗이 내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겠느냐 하니까 46절에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라고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마가복음 12:35-37절까지 이 상황이 똑같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세 대답하여 가로사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니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내 원수를 내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똑같은 상황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똑같이 어떻게 다윗이 자기 자손으로 올 그리스도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할 수 있는 그 주라고 불렀느냐라고 했을 때 반응은 37절 마지막에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라고 하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말한 고백에 대해서 아마 즐거움을 가지시고 듣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34절로 가겠습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신이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쓰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 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의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똑같이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에 베드로 사도가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은 똑같이 시편 10:1절 말씀을 인용해서 바로 시편 110편에 나와 있는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른 그분이 36절에 나와 있는 대로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그분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 시편 110편의 말씀을 인용한 이 증거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오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시편 110편에 가리키고 있는 여호와께서 내주께라고 하는 그 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분이 그 말씀하신 성경 그대로 지금 이 시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마가복음에서처럼 이 사실을 들으시고, 그리고 혹시 아직 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믿지 못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사도행전처럼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받으시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를 그러면 마가복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받을 때마다 즐겁게 들으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로 돌아와서 히브리서 1장에 생략되어 있는 여호와께서 내 주께라고 하는 부분을 일단 해결된 것으로 보고 그다음에 나와 있는 히브리서 1:13절로 가면 “내가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라고 하는 이 증거가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특히 히브리서 1:2-3절까지 나와 있는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씀을 드렸고, 이 사실을 통해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 가운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관련돼서 히브리서의 내용을 통해서 인도받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8:1절에 보면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해서 이 8:1절 앞에까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사실과 연관지어서 생각을 해보면 8:1절 앞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은 바로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조금 가서 7:26절도 보겠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을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이 8:1절 앞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과 관련해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니 바로 그분이 대제사장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뜻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8:1절 앞에까지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증거가 됩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하나는 아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까 처음에 히브리서를 말씀드릴 때 A하고 A+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비교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한다면 A+에 해당되고 A에 해당되는 것은 아론입니다. 그리고 그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나타내는 의미는 앞으로 가서 히브리서 2:14절 말씀부터 읽겠습니다. 아론을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아론의 대제사장 되심을 A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2:14-18절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 종살이할 때 그 가운데 함께 종살이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노예 살이를 하던 그 아론을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특히 아론이 증거하는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는 바로 1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와 같은 혈육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도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려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들과 같은 인자로 오신 것은 이 대제사장 직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론을, 그것도 애굽 땅에서 함께 노예였던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오셔서 우리와 같은 이 모든 사람들은 똑같이 혈육을 함께 지니셨고, 그 의미는 17절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 그리고 18절에 나오는 대로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던, 즉 주님께서도 저희들과 똑같은 이 몸을 가지시고 사탄으로부터도 시험을 받으셨고 세상으로부터도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이 8:1절에 나와 있는 대로 이러한 대제사장,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대제사장이 그리고 대제사장과 관련돼서 두 번째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5:6절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내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 하나는 아론이 대제사장이 증거하는 부분이 있다면 두 번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저도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결론만 찾는다면 히브리서 6:20절입니다.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이 의미가 가리키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히브리서 6:20절입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대제사장이시다. 그것도 멜기세덱이 증거하고 있는 멜기세에게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다라고 할 때 그 의미는 히브리서 6:20절에 나오는 대로 영원히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7장 전체에 나와 있는 것처럼 히브리서 7:24절입니다.”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이 증거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2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왜냐하면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대제사장이 8:1절의 말씀처럼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래서 히브리서 8:1절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신데, 아론이 증거하는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 이 효력을 가지시고, 그리고 사망에 매어 종 노릇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대제사장 그리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증거하는 의미대로 그분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8장 이후부터는 8:1절 중반 부분에 보면 여기에 강조점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8:1절 앞에까지는 이러한 대제사장이 어떤 대제사장이냐를 말씀하셨다면 8:1절부터는 이 대제사장이 지금 어디에 계시냐 하늘의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어떠한 대제사장이셨냐 한다면 이제부터는 8:1절부터는 이 대제사장이 지금 어디에 계시고 어디에서 일하고 계시는가 하는 내용을 가리키는 걸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1-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지금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 하늘은 지금 저희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대기권인 하늘도 아니고 그 위에 우주의 하늘도 아니고 여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주께서 베푸신 나중에 가게 되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하늘이라고도 표현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그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1절부터 나오는 내용들은 이분이 지금 하늘에서 섬기십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성소가 어떤 성소인지, 그리고 하늘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가 8장, 9장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4절 말씀도 한 번 더 읽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조금 전 8:1절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늘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그림자적인 손으로 만든 성소, 즉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그리고 구약에 속한 그 성소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에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냥 하늘도 아니라 참 하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참 하늘에는 누가 계시냐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1절부터는 이 대제사장이 지금 일하고 계시는 그것도 참 하늘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히브리서 10:12절로 가서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여기에 또 한 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내용이 뭐냐 하면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8:1절 이후부터는 그분이 하늘에서 일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말씀을 드렸다면, 10:12절에는 그분이 드린 제사가 무엇인지 그분이 드린 제물이 무엇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으로 증거하고 있는 13-14절입니다.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신데, 처음에는 아론을 증거하는 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증거하시는 대로 그분은 우리와 같은 효력을 가지셨고 우리를 위해서 그 일을 하셨고 그다음에 영원히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지금 대제사장으로서 일을 하고 계시는 곳은 8:1절 이후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늘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참 하늘에서, 그리고 히브리서 10:12절에 나오는 대로 그분이 드리신 제사는 그분이 섬기며 드리신 제물로 12절에 나와 있는 대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결과 히브리서 10:17-19절에 나와 있는 대로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 사실을 믿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은 사람에게는 이 주님의 약속이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한 약속이 그 사람들에게 이미 이루어졌고, 18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9절에 나와 있는 대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여기서 말씀하시는 성소가 어떤 성소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성소도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소가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 지금 계신 하늘에 있는 참 하늘에 있는 그 성소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눈으로 그 성소가 보이지 않지만 이 말씀처럼 이미 우리의 대제사장은 그곳에 가 계시고 그곳에서 저희를 위하여 섬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말씀을 힘입어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주님께서 육체로 이 땅에 계실 때 어떻게 됐는지 아마 다 아실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을 온전히 들으셨습니다. 21절입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하늘에 그리고 영원한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 그리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 그리고 또 영원한 대제사장이 지금 그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22절에 나와 있는 대로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래서 구약의 그 수많은 증거들, 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수많은 구약에 나와 있는 제사와 제물,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다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또 저희들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2:2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과 관련해서 또 증거하고 있는 부분이 12: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어디 계신가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는 세 번째로 마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가만히 보면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으로 증거하고 그 일에 대한 결과 또는 그 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참으시고 그 십자가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일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의 보상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처럼 그 보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이렇게 표현을 했는가 생각하면 바로 히브리서 12: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믿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겪는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이 땅에서 겪는 핍박과 환란, 그것도 히브리서 12: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로 가득 물려 있는 사람들이 인내로서 그 경주를 경주함에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그 경주를 해야 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셨더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그것처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참는 사람들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절처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그 생각함으로 인해서 이 땅에서 겪는 경주를 경주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에 따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그러면 이 땅에서 저희들이 겪는 환란과 핍박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저희들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올리셔서 하나님 보좌에 앉히신 것처럼, 이 땅에 핍박과 환란 받는 성도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또 높이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서 전체로 본다면 첫 번째 그분이 대제사장이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신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 대제사장이심은 첫 번째는 아론이 증거하는 대로 우리와 같은 그리고 혈육에 함께 속하셔서 우리를 능히 도우시는 대제사장을 떠올리게 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증거하는 우리 주님의 대제사장이심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분이 하늘에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증거하는 대로 이 우리의 대제사장은 지금 하늘에 섬기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 저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찬송, 저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모든 증거가 저희들이 지금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저희들이 주의 이름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대제사장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저희들의 그 증거와 저희들의 그 예배와 저희들의 그 기도는 하늘에 도달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위엄의 보좌에 도달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우리의 대제사장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대제사장은 이미 영원한 제사를 이미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무언가 또 제사를 드려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이 그것도 하늘에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히 만족케 하는 제사를 그것도 영원한 제사를 이미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에게 남은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2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 저희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십자가를 참으셨고 그 부끄러움을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처럼, 이 땅에서 환란과 핍박과 유혹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참으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처럼 그 성도들에게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상을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증거하는 바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시 히브리서 1장으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이 여러 가지를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또 처음에 말씀드린 복음서에서처럼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이 내 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할 수 있는 호칭을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주라고 했고, 또 여기 계신 분들과 저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저희도 주라고 믿고 시인했습니다.

이 주님에 관해서 생각하게 될 때 몇 가지를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생각하게 될 때도 굉장한 복이 되고 여기에 나와 있는 대로 많은 감사가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장에서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굉장히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선 하신 일들도 말하지만 이분이 누구인가 특히 히브리서 1장에 다시 오게 되면 이 히브리서 기자는 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1:2절부터 나와 있는 이 아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읽을 때마다 이 히브리서 편지를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는 분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찼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들이 어떠한 분인지를 더 풍성하게 말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천사와 비교할 때도 1장 전체에 나와 있는 천사와 비교할 때도 천사가 물론 사람들의 구약의 성경을 보면 굉장히 뛰어나고 놀랍지만 히브리서 1장을 보면 그 천사와 비교할 때 이 히브리서 1장의 내용을 보면 마치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즉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사 중에 누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느냐 다른 말로 말하면 아무리 천사가 구약 성경에 뛰어나도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들이 훨씬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될 때 그분이 어떤 분인가 한 가지 요한복음으로 가셔서 또 이 말씀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으로 가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생각할 때 많이 또 풍성하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특히 요한복음 4:10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내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이 두 가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내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누구인 줄 알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또 요한복음 8:24-25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또 밑으로 내려가셔서 28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4절에 보면 개역성경(? 영어성경)에 조금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중간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그런데 이제 그라고 하는 글자가 아마 작게(기울임체) 써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8절에도 너희는 인자를 둔 후에 내가 그 할 때 꼭 그도 아마 작은(기울임체) 글씨로 쓰여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우리 개역성경에는 표시가 없음,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 he[기울임체는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첨가한 것]로 표기하고 있음-역자 주).

이 말씀을 생각을 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이게 아마 원어 성격이든지 또는 영어 성격의 표현이 우리 말로 이렇게 번역하기가 쉽지 않아서 이렇게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조금 설명을 한다면 24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 그러니까 오전 시간에도 그런 비슷한 말씀이 나왔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어떤 분인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아마 우리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작은 글씨로 그라고 쓰였던 것 같습니다. 즉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인 줄을 믿지 아니하면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5절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그러니까 주님께서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이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냐라고 물어본 것으로 볼 때 내가 그인 줄이라는 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 줄을 알면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주님의 답은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처음부터 말하신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만약에 창세기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내가 그인 줄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줄 또는 출애굽기 3장을 생각한다면 내가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 그리고 다윗이 증거한 대로 그분이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하면 너희가 죄 가운데 죽으리라라는 말씀으로 읽혀집니다.

히브리서 9:35-37절입니다. 여기에서도 그 유명한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등장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주님의 은혜를 입고 나서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서 가라사대 내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로사되 내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여기 보면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가셔서 주님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의 어떠하심이 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복이 됐을 것이며, 그리고 이 사람의 반응이 38절입니다.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 지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가 나타났을 때 그것도 주님께서 나타내 주셨을 때 여기에 예배가 있습니다. 여기에 경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부분만 더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요한복음 18:4-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지는지라” 주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주님을 향해서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답은 나다 이게 영어 표현하고 조금 차이가 좀 있습니다만 내로라 즉 그게 나다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게 나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때 6절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사람들이 주님의 자신이 어떠함을 나타내셨을 때 이 사람들은 뒤로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힘으로 밀리면 뒤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뒤로 밀려나긴 했는데 앞으로 엎드려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로라 주님 자신을 나타내신 곳에는 이와 같이 능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을 거역하는 자들조차도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앞에는 사실은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18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주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강력한 힘에 엎드려진 것보다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처럼 주님과 만나서 주님께로부터 그가 나다 주여 내가 주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할 때 그게 나라고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를 증거를 받고 그분을 향해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경배하는 그 요한복음의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집니다.

예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형제님들이 주님 자신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때 설명을 제가 듣기로는 주님 자신이라는 표현을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저는 듣고 그것을 그렇게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또는 주님 자신 그리고 그 주님이 하신 일 이 두 가지가 성경 전체에 풍성하게 있고 그리고 이 주님의 어떠하심을 저희들이 생각할 때 아까 요한복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항상 이 주님을 묵상할 때마다 이 주님을 만날 때마다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처럼 주님에 대해서 그 주님의 어떠 하심으로 인하여 항상 경배와 예배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또 주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26년 5월 5일 말씀집회-2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