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교회가 세워지는 과정
잭 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신 것을 오늘 저녁도 환영을 드립니다. 어제에 이어서 사도행전 19장 8~41절까지입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어제 말씀드린대로 신역성경에서 보면 에베소는 바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에서 두가지 일이 시작된 것을 어제 보았습니다. 어제는 간단하게 에베소에서 바울이 일한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바울은 놓아두었습니다. 또한 아볼로가 와서 거기서 도왔습니다. 19장에 보면 바울은 에베소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12사람을 바울이 발견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열 두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좀 옮기겠습니다. 19장에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한 주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에베소에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한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두란노 서원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이 두가지를 중심으로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회당에 간 것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복음이 먼저 유대인에게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새 도시에 가면 어디서든지 유대인의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9절에 보면 ‘어떤 유대인들의 마음이 굳어’ 그랬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11장에서도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완악한 마음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도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그들의 마음이 수건으로 가리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현상이 실제로 여기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이 부인되는 것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굳어 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이 두가지를 잠시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왜 사람들을 따로 세웠겠습니까? 두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새롭게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은 핍박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핍박으로부터 이 새로 믿은 사람들을 보호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핍박 받는 환경에서 다로 세워서 주님을 계속 증거하도록 했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이 목자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돌보았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렇게 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 보면 그러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멸하고자 했습니다. 주님의 나타내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주님을 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유대인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서 있게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새롭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비방과 핍박으로부터 이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따로 세워서 모이게 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동료들 가운데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겠습니다. 그래서 생활 가운데 많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따로 모이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귀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에게도 귀하고 우리들에게도 귀합니다. 성경은 모든 믿는 자들은 주님이 사랑하신 영혼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도 귀한 것입니다. 여기는 새롭게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젊은 사람처럼 말이죠. 출애굽기에도 그러한 원리가 적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 상태에서 새롭게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땅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곧바로 팔레스타인으로 인도하지 아니했다고 말합니다. 왜 직접 가나안으로 곧바로 인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만약 전쟁이 있으면 그들의 마음이 낙담하리라’ 했습니다. 가나안에는 부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도전적인 사람들을 주님이 피하게 해서 일부러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믿은 사람들이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시다. 그래서 구원받은 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돌보아 줍시다. 어떤 경우에는 믿는 사람들 가운데 분쟁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젊은 사람들이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분쟁 가운데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서는 안됩니다. 이런 원리에 근거해서 바울은 새로 믿은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또 한가지 다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전에는 회당과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은 옛 유대교적인 체제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배경으로부터 끄집어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 보면 가르침적으로 유대교와 연결시키지 않도록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라고 했습니다. 영문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유대교의 가르침이 없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나와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옛 것을 떠나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원칙을 오늘날에도 적용시킵시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교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세상에 있는 기독교계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현재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나온 것과 이방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전에 유대교로부터 나온 상황이나 이방교계로부터 나온 상황에서도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런 구도로부터 나와서 섬기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것을 차단시켜서 권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모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만든 모든 제도를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존귀하신 이름으로만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당에서 사람들을 따로 불러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리에 따라서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따로 세운 후에 이번에는 장소를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습니다. 마귀는 에베소에서 주님의 일을 없애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 유대인들의 박해가 주님의 일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이 방해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일은 더 생산적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두란노 서원으로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는 석 달 동안만 전했습니다. 그러나 두란노 서원에서는 메일 전했습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들에게만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란노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회당에서는 석 달 동안만 말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는 2년이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일을 없애려고 하면 하나님의 일은 더욱 흥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멸하려고 노력을 하고 섞으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초기에 보면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흩어버렸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오히려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의 방해는 하나님의 일을 더 생산적으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한 일을 선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와 같이 격려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탄의 공격아래 있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환경을 좋도록 바꾸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자기 형들로부터 미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요셉은 말하기를 ‘형들은 나에게 나쁘게 했지마는 하나님은 이것을 선하게 바꾸셨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환경을 선하게 바꾸는 분임을 여러분은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빌립보서 1장에서 말했습니다. ‘나에게 당한 이 일이 복음에 진보가 된 줄을 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회당에서만 말씀을 전했으면 좋았겠다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그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을 오히려 그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도 격려를 받습니다. ‘나의 이 모든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계획을 세우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하게 바꾸어 버리십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의 핍박이 바울로 하여금 두란노 서원으로 가게 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했습니다. 에베소는 항구에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좋은 전초기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임들은 항구와 같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너희로부터 좋은 증거가 전파되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간증이 마게도냐 사람뿐 아니라 주변의 아가야까지 들렸다고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데살로니가는 복음을 전하는 항구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한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봉사의 새로운 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의 진보가 있는가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아시아 지역의 복음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행한 기적을 보고자 합니다. 여기 보면 ‘희한한 능’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왜 희한한 능을 행하였는지 여러분이 이상하게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몇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를 섬기는 중심도시였습니다. 아데미 전각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에베소는 사탄의 역사가 극심한 지역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이러한 이방 신들을 섬기는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여기는 아데미 여신만 드러날 뿐만 아니라 마술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탄의 능력이 에베소에서 두드러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희한한 능을 행하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능력을 능가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사탄의 능력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에 용기를 얻읍시다. 요한은 말하기를 ‘너희 속에 있는 자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강력한 자이지만 하나님은 더 강력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힘이 사탄의 힘보다 많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들의 마음이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 희한한 능을 행한 바울의 능력을 보고자 합니다. 바울의 손수건이나 바울의 앞치마를 가지고 병자들에게 얹었더니 그 병이 떠났습니다. 이 손수건을 얹었을 때 사람들이 나았습니다. 특별한 손수건이 아니라 바울이 늘 사용하던 손수건을 얹었더니 나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은 말하기를 희한한 능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손수건과 앞치마를 어디에 썼겠습니까? 바울은 열심히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이와 같은 그냥 손수건이었습니다. 이 손수건은 땀을 닦는 손수건이었습니다. 헬라 원어가 바로 그러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일을 할 때 땀을 닦는 그런 손수건이었습니다. 바울이 육체적인 일을 열심히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9장에서 한 비유로서 주님이 수건을 동일하게 비유로 드셨습니다. 어떤 종이 주인에게 받은 돈을 수건에 싸서 숨겨두었습니다. 그 종이 실제로 본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땀을 닦는 손수건은 필요 없다고 한 것과 똑같습니다. 땀을 흘리는 일이 없으면 주님의 일에 필요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 받은 일로 땀을 닦아야 하는 손수건을 그만 묻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이 게으른 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힘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빛을 침상 밑에 놓아두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여러분이 게으르므로 여러분의 빛이 침상 밑에 놓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왕 중에 철 침대를 가진 왕이 나옵니다. 틀림없이 그 사람은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이 힘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내 밭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내 밭에 가서 힘써 일하라는 비유도 나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바울이 땀 닦는 손수건이 필요했다는 것은 주님의 일에 힘을 쏟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에 마술하는 유대인을 보겠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마술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물질을 모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바울이 하는 희한한 능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하는 것을 보고 흉내를 냈습니다. 그 사탄의 일을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탄이 바울이 행한 희한한 능을 흉내 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흉내 내는 그런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성령을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은 이것조차도 흉내를 냅니다. 계시록에 보면 용, 짐승, 어린양 같은 거짓선지자로 삼위일체를 흉내 내는 것을 봅니다. 요한계시록에 어린양의 신부로 교회가 나오는 것을 봅니다. 사탄은 그것조차도 흉내를 냅니다. 바벨론 음녀를 만들어 흉내를 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깨끗하다면 그 바벨론 음녀는 더럽습니다. 바벨론은 사탄이 흉내 낸 거짓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탄이 흉내 낸 예를 드리겠습니다. 주님은 밭에 뿌린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곡식을 뿌렸습니다.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곡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흉내 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을 합니다. 눈으로 보이기에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며 흉내 내게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애굽에 있는 흉내 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가 행한 일을 흉내 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반드시 기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 내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앞으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보면 거짓 기적과 표적을 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반드시 기적이 필요한 것보다 오히려 이것은 사탄의 일에 이용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주님은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주님께 말합니다.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말하는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하기를 악한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더라도 주님께 속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집단 가운데는 이러한 기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마음이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사탄은 바울이 한 일을 흉내 내게 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도 이 자들은 흉내를 내었습니다. 이 원수인 사탄도 바울이 증거하는 예수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증거하는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넣으시기 바랍니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서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우리들의 전도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전도할 때 상대방의 양심에 죄를 반드시 지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앞으로 올 심판에 대해서도 경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핵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부인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에서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고 했습니다. 사탄조차도 바울이 전한 이 핵심을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전파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전한다는 것은 앞으로 올 것을 단순히 선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전파하는 것의 효과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바울이 사람들과 변론하면서 강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변론하면서 설명하는 한 면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계시 같은 것을 풀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할 때 선한 행위로 천국 못 간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선한 행위로 천국 간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겠는가? 개인적으로 전도할 때 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적으로 전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유대의 제사장 스게의 일곱 아들도 마술하는 사람 가운데 속해 있었습니다. 제사장 가족이 이러한 일에 관여한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성경에서 봅니다. 아마 마태는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레위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사장 가문에 속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 마태가 세리의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탐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부하게 하려고 사람들의 돈을 끌어갔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영적인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답게 행동을 하십시다. 마태처럼 물질에 지배를 받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맙시다. 또한 하나님의 집에 기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행합시다. 제사장이 해야 할 합당한 일을 하십시다. 또한 여리고로 내려가는 제사장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지나갔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제사장은 동정(체휼)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도 만난 자를 지나간 제사장이 체휼하는 자였습니까? 그는 필요가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와 같이 동정을 발휘합시다. 여기저기서 제사장다운 행동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을 했을 때 악귀에게 나가도록 말했습니다. 그리고 악귀가 반응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이고 일곱명이었는데 힘이 강하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탄으로부터 힘을 받은 이 악귀가 일곱사람을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계시던 때에 귀신이 많아서 군대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군대 지폈던 자가 주님을 만나서 온전한 정신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그 장면과 이 장면이 대비가 됩니까? 주님께서 한 그 일을 이 자들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망했습니다. 악귀가 말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이 악귀는 예수님만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확실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가버나움에 있던 사람이 귀신들렸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마귀는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귀신조차도 주님의 정체성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사탄이 나를 알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을 우주를 지으신 창조자이십니다. 이 마귀는 창조자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면 이 악귀가 예수님만 안 것이 아니라 바울도 알았습니다. 이 마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 마귀는 욥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사탄에게 말하기를 욥을 보았느냐? 사탄은 욥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마귀는 베드로를 알았습니다. 주님은 말하기를 베드로야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나에게 요청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사탄이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탄의 시선의 집중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들이 그렇게 조용히 살면 사탄은 여러분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사탄은 여러분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효과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귀는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일곱명이 도망을 갔습니다. 이 소식이 전 에베소에 퍼졌습니다. 17절에 보면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사탄이 여기서 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 다시 생산적이게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흉내 내고자 했습니다. 또한 그것을 방해하고자 했습니다. (소리죽음)
19,20절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쁜 마술과 종교적인 의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의 주제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책들을 불태웠습니다. 이것은 회개한 것을 선전한 하나의 증거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회개를 전했습니다. 그는 20장에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를’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가지로서는 순전한 회개의 참된 증거의 모습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 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참으로 믿음을 가지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두가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증거입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회개한 증거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의지적으로 이 책들을 태웠습니다. 이것을 헌책방에 가서 그냥 팔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판다면 돈을 벌 텐데…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익을 원치 않는다고 단순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옛 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이고자 원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옛 생활을 깔끔하게 정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생활가운데 옛 생활이 분명하게 정리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악한 누룩이라고 했습니다. 이 괴악한 누룩에 해당하는 죄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였습니다. 이제 그 누룩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은 모두 과거가 되도록 합시다. 참된 회개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참된 회개가 없으면 참된 삶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책을 태우므로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증거했습니다. 아주 효과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까? 성경에는 우상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이 있습니다. 우상을 효과적으로 가르는 사람 가운데 모세는 우상을 가루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또한 요아스 왕은 놋뱀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히스기야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우상을 효과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와 같이 효과적으로 다룹시다. 성경은 말하기를 네 오른 손이 범죄하거든 그 손을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한쪽 눈이 범죄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한쪽 다리가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한 쪽이 하는 그런 일들을 중단하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그 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나쁜 일에 그 다리가 했다면 다시는 가지 말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죄악된 것은 깨끗하게 삶 속에서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책을 태웠습니다.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값이 은 5만이었습니다. 왜 금이 아니고 은인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에베소에서는 은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은감실이 나옵니다. 또한 아데미 신상은 만드는데도 그 은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의 가격으로 은 5만이었습니다. 20절에 보면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했습니다. 23절에 보면 반대가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서 에베소에 전도의 공효한 문이 열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적이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우리는 에베소에서 전도의 공효한 문이 열린 것을 봅니다. 우리는 에베소가 복음전파의 항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공효한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효과적인 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이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자들을 우리는 여기서 봅니다. 우리는 이미 유대인들로부터 이 반대가 나오는 것들을 보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이방인 세계에서 반대가 나오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오는 반대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 반대자의 우두머리가 은장색인 데메드리오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은장색이었습니다. 25절에 보면 직공들과 이러한 사업하는 사람들을 동원했습니다. 이들은 은감실을 만들어 팔면서 동시에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여기 보면 우리는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직공들 가운데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그쪽으로 가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늘 사람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반대의 뿌리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아데미 신상을 인정했습니다. 이 복음을 반대하므로 개인적인 이득을 얻는 사람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대로 결국 에베소에 디모데가 남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이 시에서 그 사실이 명백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이 일을 하도록 충동했습니다. 바울 자신과 너무나도 대비가 됩니다. 20장에 보면 바울은 ‘내가 금이나 은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에 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까? 데메드리오는 이 돈에 지배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 물질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추천할 만한 예를 바울을 통해 봅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됩시다. 여기서 보면 종교는 늘 물질적인 것과 관련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2장도 보면 예루살렘 성전도 그랬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돈을 받기 위해서 선지자가 되기를 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또한 돈을 받는 미가라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단 지파로 갔습니다. 단 지파는 그에게 제사장직을 허용했습니다. 미가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단 사람들이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미기는 단 사람들에게로 갔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전도자들은 돈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때때로 종교는 물질적인 풍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를 않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상황들을 아십시다. 이 데메드리오와 함께 한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분이 가득해서 나쁜 동작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폭력과 분이 늘 나란히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은 분을 내어서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헤롯이 분노해서 아이들을 죽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화가 베들레헴의 어린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우리가 화를 내면 안됩니다. 이 화는 해서는 안될 쓸데없는 말까지 하게 합니다. 또한 이 화는 해서는 안될 행동을 유발합니다. 또한 이 화는 우리가 해야 할 그 정도를 넘게 합니다. 아데미 신상이 크다고 이 자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아데미 여신이여’라고 소요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6장에 주님이 하신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방인같이 반복해서 많이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계속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갈멜산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반복된 말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이 이와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것은 헛되고 공허한 되풀이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 주님이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여러분이 아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말해줍니다. 성경에서는 그냥 여러 번 말하는 자체를 반복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열심히 기도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똑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이것은 헛된 반복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비 오기를 기도할 때 일곱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헛된 되풀이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도록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헛된 되풀이가 아니었습니다. 헛된 되풀이는 바로 이와 같은 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들의 아데미여’라고 하는 것을 헛된 되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효과를 주지 못합니다. 오늘날 세상도 이렇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을 충동하지만 그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올바른 분별력을 잃게 만듭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교도주의를 집어넣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지막으로 서기관이 무어라고 말했는지 보고자 합니다. 서기장이 와서는 법정으로 가야 할 사건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안돈 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이와 같이 했습니다. 35절에 보면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 즉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냥 신화가 아니고 쓰스(제우스)라고 하는데 난하주에 보면 하늘로서라고 했습니다. 우상들도 하나님처럼 흉내 내는 한가지는 이와 같이 제우스처럼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나님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사랑하신 여러분 우리는 하늘로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떨어진 분이 아니었습니다. 자원해서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인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사람들은 이 하늘에서 떨어진 이 아데미를 숭상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높이고 예배합니다. 이 서기장이 참으로 모순된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은 바울의 존엄과 인격을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바깥으로도 선한 소식이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그러한 인격이 외부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말하는 것과 행동이 불일치 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스스로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게 올바른 이미지가 심겨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드린 말씀이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죽 보았습니다. 보신 말씀들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시키면 복이 되겠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20장으로 옮겨서 특히 장로들과 관계된 말씀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장로가 아니니까 내일 안 오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20장은 우리들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처음에 바울은 자기의 경험을 말합니다. 이 바울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많은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내일도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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