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볼로
잭 해이
여러분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이 며칠 동안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며칠 동안 이곳에서 에베소에 대해서 상고를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사도행전 18장으로 출발을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8~28절
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19장 1~7절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신약성경에서의 에베소 모임에 대한 배경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베소 교회 상태는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이 에베소의 출발은 바울이 사도행전 18장에서 간단하게 출발을 했습니다. 19장에 보면 이 에베소를 이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성도들은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방 성도들이 성숙할 수는 없습니다. 20장에 가면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모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에베소에 편지를 보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르침은 깊고 많이 가르칩니다. 그래서 비밀이 뭔가를 가르칩니다. 에베소서의 비밀이라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원받아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바울에게 이것을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에베소 교회에 교제했습니다. 그래서 모임의 성숙은 이러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고린도에는 없었습니다. 고린도는 영적으로 아이였으며 육신적이라 했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데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는 성숙했습니다. 그래서 상승했습니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이 에베소교회가 다시 하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교훈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었습니다. 분명히 에베소에는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디모데후서에 가면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을 떠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에 있는 모임입니다. 그 에베소는 다시 하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에베소에 관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계시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에 주님이 다가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씀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첫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보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힘이 없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대로 성경에서는 이처럼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것이 영적인 상태입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그 떨어진 자리를 강조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정도 말씀드리면 충분하겠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18장으로 갑시다. 바울은 에베소에 간 다음에 잠시 방문했습니다. 여기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나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에서 함께 동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에서부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고린도로 준비해 보냈습니다. 성경에 보면 늘 두 사람씩 복수로 다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복수가 여섯번 나오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늘 언급될 때마다 둘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완전하게 하나인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영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결혼할 때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젊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혼할 때에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가 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가랴와 엘리자벳은 둘 다 의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둘 다 주님을 섬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결혼할 때 주님을 향해서 가는 사람과만 결혼하시기 바랍니다. 그 경우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경우입니다. 그들은 둘이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기들의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에베소로 데려왔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전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대로 이미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 때마다 먼저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에베소로 급히 갔습니다.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거기에 남겨두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실제적인 교훈은 이 부부는 바울을 안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어떻게 주님을 섬길까를 격려하고자 했습니다. 여기 있는 젊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 있는 동안 여러분들이 섬겨야 할 것을 안내할 것입니다. 장로들은 어떻게 섬기는 것이 최선의 섬김인지 안내할 것입니다. 결국 종국적으로는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않았더라도 때때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격려해서 에베소에서 섬기도록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에 머물도록 장려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오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면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계획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어디 가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심을 가질지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는 주님이 하신 말을 했습니다. 내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하리라고 주님께 맡기면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계획을 세울 때 모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로마에 가기를 여러 해 동안 원했습니다. 스페인을 지난 후에 너희들에게로 가서 또 스페인으로 가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말할 때 하나님의 뜻이면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계획을 세울 때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서 그의 명령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명령하실 때까지 거기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시 하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19장에 보면 바울은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시기 바랍니다. 왕 사울은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다윗은 그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한 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른 날에 제가 갈렙에 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갈렙은 자기 딸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대로 했습니다. 그러면 말한 사람을 모두가 신뢰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약속하기를 주님의 뜻이면 돌아오리라 했는데 19장에 보면 그는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볼로가 왔습니다. 24절에 보면 잠깐 동안 아볼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짧은 절 가운데 재미있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학문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학문은 있었지만 주님을 섬기는데 자질은 아직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문적으로 많이 습득을 합니다. 그리고 지식을 많이 모읍니다. 학문적으로 많은 지식이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섬길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길 은사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학문을 많이 쌓는 것이나 쌓지 않는 것이나 그것이 자질을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사람들을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학문이 섬기는데 자질을 주는 것은 또한 아닙니다. 학문 있는 사람들을 멸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 배경 있는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바울을 아볼로처럼 동일하게 학문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학문을 배우러 다시 세상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부로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어부든 학문 하는 사람이든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후보자들인 여러분들은 ‘다른 날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 많은 배경을 말씀드렸습니다. 에스겔은 아내를 잃은 홀아비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총각이었는데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리고 호세아는 참으로 불행한 결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여선지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배경이 달라도 주님은 쓰십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방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나중에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후보 되는 사람들은 배경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회적인 배경이나 지식의 유무에 상관없이 여러분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학문이 많은 사람이지만 아직은 하나님을 섬기기에 자질이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번역에 따르면 이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남에게 성경을 쉽게 전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을 드립니다. 이와 같은 지식이나 기술이 있거나 없거나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질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을 잘 한다면 앞으로 성경을 가르치는데 유익이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말 잘하는 것으로 주님을 섬긴다면 장사꾼이 말을 더 잘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잘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잘하게 될 때에 유익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고린도전서 2장에서 말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식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로 사람들을 주님께 오게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주님께 오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말 잘하는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게 못합니다. 균형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전하는 자로 부르시면 여러분은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은사를 받지 않으면 말을 못 전할 것입니다. 말 잘하는 것이 조금 전에 말씀 드렸듯이 바로 그 자질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남에게 의사를 전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학문에 능하고 성경에 능한 자(말을 잘하는 자)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성경을 힘있게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구약에 관한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을 알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구약 신약 전부 알기를 바랍니다. 성경 전체에 익숙해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먼저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말하기를 일정한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겼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지 않으면 영적으로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 말씀으로 출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여시기 바랍니다. 욥처럼 일정한 음식보다 말씀을 더 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에 착념하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을 적용시키도록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가운데 젊은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여러분의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 오랫동안 공부할 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그렇게 애쓰시기를 저는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마치 일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힘을 들여 공부하시는 그런 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17장 11절 베뢰아 사람들을 아실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성경을 증거한 것처럼 여러분이 그렇게 들은 것을 증거하기를 바랍니다. 전하는 사람이 전한 것을 그대로 다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들은 말씀을 말씀에 부합되는지 아니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말했습니다. ‘예언은 멸시치 말며’ 그리고 모든 것을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여러분이 들은 말씀을 상고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말한 것들은 어떤 것은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아닌 것을 전하면 거절합니다. 듣고 듣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베뢰아 사람처럼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말한 것을 날마다 상고했습니다.
또한 아볼로 같은 분들을 격려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형제와 자매가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 많은 성경구절들을 참고했습니다.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많아 가졌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자매님들께 격려하고 싶습니다. 성경말씀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 말씀 전하는 분들의 말이 그것이 옳은지 모르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으면 여러분의 영혼이 양육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바로 덕세움을 입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어린아이처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어쨌던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습니다. 25절에 보면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열심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중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고 전심으로 섬기는 자였습니다.
여기는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것을 중요합니다. 예배의 열심을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시편 45편에서는 ‘내 마음에 좋은 말이 넘쳐’ 라고 했습니다. 왕에 관해 마음에 넘친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 왕에 관해 마음에 넘치는 말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넘치는 말을 가지고 주님을 예배하고 왕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계속 주님으로 넘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편 45편에서는 ‘내 마음에 좋은 말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증거하는데 열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례요한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켜서 비치는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렇게 열심으로 주님을 증거했다 그런 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비치는 등불이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계속 복음서 내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확증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형제자매들이 책임이 있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이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죽으면 그들은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영원히 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충족시키는 말씀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데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에서 지역교회들은 촛대와 같다고 계시록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비추는 등불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지역교회는 있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복음을 읽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책임으로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례요한처럼 켜서 비치는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45편에서는 예배에 대한 열심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서서 주님을 섬기는 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킨다고 할 정도로 열심이셨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행동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2장에 보면 제자들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말씀을 기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집은 건물이 아니고 모임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인 그 자리에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가족들로서 모여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집에 열심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신약성경 진리를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령이 계신 것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이 경외심으로 차 있으면 대단히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주의하게 모이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신 것을 때때로 잊으십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그 자리에 계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집을 향한 열심이 있을 것입니다. 이 아볼로는 열심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열심을 가지고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끓어 넘친다는 그런 뜻입니다. 주님을 향해서 어중간한 마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니’ 라고 했습니다. 그가 열심이 있었지만 어떤 것은 부주의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은 있었지만 부주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학문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주의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여할 때 부지런하게 관여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열심을 가지고 자세히 주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26절에 보면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여할 때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모임으로 데려오는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에 열심을 낸다면, 안드레를 통해서 사람들을 주님께로 데려오는 데에 대한 예를 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이름의 의미가 있은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모이는 가운데 성경의 있는 이름들이 때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이름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안드레라는 이름은 ‘용감한, 남자다운’ 그런 뜻입니다. 안드레는 용감한 사람이었고 개인적으로 개인전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그는 그 형 시몬 베드로를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어떤 소년을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2장에서는 빌립과 함께 헬라 사람을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안드레의 일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생애 가운데서도 이렇게 되기를 제가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다 공적인 말씀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안드레와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형제든 자매든 그리스도를 전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기 원한다면 용감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를 때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주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전하러 가라고 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 중에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옥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쁜 것은 다른 사람이 비웃는 것이 여러분에게 큰 어려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볼로는 담대하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가 전하는 것을 보고 말씀에 부족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습니다. 간단한 복음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전했습니다. 회당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회당 문에서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풀어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친절하게 데려다가 말씀을 아주 자세히 일러 주었습니다. 이 교훈을 저의 마음 속에 갖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올바르게 말해야 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가르칠 때 친절하시기 바랍니다. 아볼로를 가르치려 할 때 이 태도를 가진 것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집으로 데려가서 한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볼로는 아주 학문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계속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막을 깁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때는 전혀 가르치는 일을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경건하게 되는 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볼로는 가르치는 사람이었지만 여기서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아볼로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서로 합해졌습니다.
27절에 보면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서 아가야로 건너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는 고린도가 있는 곳입니다. 이제 아가야로 갈 때 편지를 하여서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성도다 다른 지역으로 갈 때 천거서를 가지고 갑니다. 골로새서에 보면 마가를 바울이 천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뵈뵈를 천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장에서는 많은 말씀이 없습니다만 말씀은 짧지만 천거서를 쓸 때 그 말씀이 자주 인용이 됩니다. 뵈뵈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믿는 자라고 바울은 소개했습니다. 우리 자매 뵈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일군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나의 보호자요 그랬습니다. 바울이 나도 보호를 받았다는 뜻으로 보호자요 라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받아들이도록 권했습니다. 그녀가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라고 말했습니다. 거기는 천거서의 지침서가 나와 있습니다. 천거서를 받을 때 주님 안에 있는 순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편지 속에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적어 보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것을 권할 수 있습니다. (중간 끊김)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나는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서로 돕는 은사가 정말 없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돕는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서로 돕는 것에 대한 예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베드로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베드로에게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14절에 보면 ‘베드로가 11사도와 함께 서서’ 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베드로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11사도가 그것을 도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유익하시기를 바랍니다. 공적으로 말씀을 전하는데 유익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들을 기도하는데 유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을 데려오는데 유익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격려하는데 유익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서로 돕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처럼 서로 돕는 은사가 여러분에게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면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또 하나 예를 드리겠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 다윗을 위해 수고한 용사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거기는 다윗에게 충성된 많은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 명단 속에 요압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전에 다윗은 요압을 군대 장관에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명단 속에는 요압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성경에 나하래라는 사람이 그 명단에 들어 있습니다. 그가 누구냐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하래는 요압의 병기 잡은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하래는 요압을 돕는 병기 잡은 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높아졌고 요압이 높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이와 같이 돕는 사람들이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아마 많은 뛰어나 보이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서로 돕는 것에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볼로는 많은 유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어떻게 유익을 주었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에게 말씀에 대한 새로움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아볼로의 사역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모임을 세웠고 아볼로는 거기다가 물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일들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사람들의 힘을 빠지게 하는 일은 쉽습니다. 이 힘 빠진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누가 그것을 가르치겠느냐? 진리(원리)를 가르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말씀에 신선함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양함이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또 하나 예를 드리겠습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은 십현금을 가지고 주님을 찬송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십현금 줄을 다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줄 하나만 쓰십니까? 그래서 말씀 하나만 가지고 늘 이렇게 가르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 앞에 음식을 내 놓을 때 그 영양의 균형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다른 모임에서도 말씀에 새로움을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아볼로는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유익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기초를 놓았습니다. ‘각각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나’ 그랬습니다. 그러나 예를 보면 아볼로를 볼 수 있습니다.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은 쉬운 일인데 그것을 세우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그것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19장으로 가겠습니다. 바울은 밤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도 밤중까지 전하기를 원합니다만 어떤 청년이 창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창틀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몇분 동안 19장에 나오는 말씀을 좀 보겠습니다. 바울은 다시 에베소로 왔습니다. 그가 오겠다고 약속한대로 에베소로 왔습니다. 여기에 보니까 12사람이 발견되었습니다. 19장 7절에 나오는 12사람은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가르침은 이미 낡은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복음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들은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잘못된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말하기를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믿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이 기준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몇가지 제가 강조를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을 합니다. 따로 성령 받는 경험을 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기도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날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성령을 받은 증거로 방언을 말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말하기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뇨?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몇가지 성경말씀을 모으겠습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에 보면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믿는 자와 성령을 서로 연결시켰습니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말했습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믿을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보증의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 순간에 성령이 오셔서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서에서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3장 2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듣고 믿음으로’를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그 순간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그렇게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성령을 받습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으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을 때 그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여러분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또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성령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로마서 8장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그리스도를 믿을 때 여러분과 제가 성령을 받습니다. 이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것이 우리에게 모본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모본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두번 다시 없는 일회성의 사건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세대에는 세례요한의 세례를 가르치고 받으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두번 다시 없는 일회성의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도들의 안수가 필요 없습니다. 오늘날 사도가 없기 때문에 사도라는 사람들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 사도의 은사도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실제적인 교훈 하나를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구원받기 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구원을 받고 다시 재침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구원받기 전에 세례를 받는 수가 있습니다. 교파에서는 유아세례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에 익스플로쉽에 속하는 형제들이 유아세례를 준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면 다시 침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모든 사람들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 구원받기 전에 세례를 받았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고 나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이 분명해졌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받기 전에 침례를 받았지만 구원받은 후에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복잡한 것들이 이렇게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말씀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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