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직수임을 금하고 있는가?
디모데전서
얻으리라.” (우리는 여기 sothesetai 를 문맥에서 따로 떼어내어, 해산하는 여인은 새 생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선행에 의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취해서는 안 된다. 여자에게 있어서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은 에베소서
여기서 우리는, 조직된 집단으로서의 교회의 구조 속에서와 한 세대를 한 팀으로 하는 가정 속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분명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위의 두 경우에 있어서 모두 지도하는 책임은 여자가 아닌 남자가 담당하도록 의도하셨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귀중하며(갈
이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얻을 수 있다.
1. 여자에게 허용된 것과 남자에게 허용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여자가 남자를(즉 그 회중에서 남자인 동료 신자) 권위있는 방식으로(didaskein 과 authentein은 복합된 개념으로서, 강단에서 회중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장로나 목사의 가르치는 기능을 의미하는 듯하다) 가르치는 것이 명백하게 금지되어 있으므로, 여자에게는 금지된 것이 남자에게는 허락되었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이 말을 이리저리 조작하고 개작해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특권과 신분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 것처럼 만들 수는 없다. (그런 일을 시도하는 사람은 언어의 바른 해석을 거스르는 것이며, 성경을 해석자의 주관적인 욕구에 따라서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매개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해석은 성경의 객관적인 권위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2. 반면에 이 구절은 여인들이 사적으로 남자들 개인을 가르치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는다(마치 브리스길라가-자기 남편 아굴라와 더불어-아볼로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정확하게 가르쳤듯이(행
실제로, 그런 은사를 가진 여인들에게는 광범위한 기회가 주어졌다. 전도자 빌립의 네 딸도 그와 같이 예언의 카리스마를 받았다(행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정리된 교회의 상황에서 여자 일꾼들은 그들이 아무리 은사와 재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남자보다 우위의 교회적 권위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전히 성경의 명령으로 남는다. 여자들은 교회의 활동에서 보조자가 되어야지, 지역교회의 활동을 이끌어나가는 임직받은 목사의 권위는 가질 수 없다. 디모데전서
4. 이 문단에서는 교회 질서에 있어서의 여성의 종속과 가정에 있어서의 자기 남편에 대한 여성의 종속과 분명히 서로 연관되어 있다. 비록 아내가 성경의 교훈과 경건한 생활에 있어서 남편보다 더욱 앞서 있고 더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녀의 남편의 권위에 종속적인 위치를 부여하셨다. 남편은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았다(비록 그가 자기 부인의 신앙 혹은 하나님과의 그녀의 개인적인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독특한 권위를 찬탈할 수 없지만, 그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에게 결정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가 자기 아내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충절을 버리게 하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지고의 권위를 무시하려고 하지 않는 한, 남편의 권위는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 이 마지막 단서가 에베소서
21절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 말은 22-24절의 교훈을 무효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22절은 어떤 중요한 영역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스스로 복종하며, 아내를 자기가 앞으로 엄격하게 책임 추궁을 당해야 할,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귀한 보화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역들 가운데에는-배우자에게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명백한 언약 이외에도-가사를 꾸려나감에 있어서의 여러 국면들이 있겠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아내의 능력이 자기보다도 뛰어남을 남편은 인정하며, 혹은 아내가 자기보다도 더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남편은 인정해야 한다.
더우기 에베소서
그러면 이제, 가정과 교회의 경영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적인 위치에 처해 있다면-이것은 확실히 그러하다-여자 장로나 여자 집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남성형의 presbyter가 일반적으로 교회적 의미에 있어서의 “장로”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듯이, 디모데전서
젊은 남녀와 늙은 남녀가 담당해야 할 역할에 관하여 논하는 디도서 2장의 구절에도 그와 동일한 해석이 적용된다. 3절에서 언급된 presbytidas (여성 복수 대격)는 교회적 의미의 여성 장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presbytidas를 젊은 여자(neas), 젊은남자(neoterous-남성 복수 대격)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특별히 계발해야 할 덕성과 그들이 특별히 피해야 할 악덕을 개괄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presbyterai 나 presbytidas 를 여자 장로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집사의 경우에 있어서는 적어도 여자 집사를-그들이 남자 집사와 같은 수준에 놓여졌든, 그렇지 않든-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경우가 충분히 있다. 로마서
여집사(diakonissa)에 해당하는 교회적 용어는 성경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단 한번 나타나는 이 여성형의 diakonor은 희랍어 성경에서 독특한 것이다. 이 사실은 사도들이 활동하던 교회에 관한 한, 여집사는 비록 허용은 되었을망정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음을 표시하는 듯하다. 사도행전
이제 우리는 엘리자베스 엘리옷의 훌륭한 논평으로 이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교회와 가정에서의 최고의 권위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로서의 남자에게 맡겨졌다. 교회에서의 여성(기혼이든 미혼이든)과 가정에서의 아내는 마지못해서 항복하는 태도에서가 아니라, 기꺼이 즐거움으로 하는 복종 속에서 자신을 성취시키는 것이다(“Why l Oppose the Ordination of Women”, Christianity Today 880 (1975):14).
이 동일한 에세이의 보다 앞 부분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관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격을 숭배하는 현대의 사이비 종교는 복종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어떤이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복종한다면 우리는 “전인간”(whole persons)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순종이란 얽어매는 것이며, 따라서 나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자유란 억제가 없는 것으로 정의되며,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성경적 원리와는 정반대 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자유는 항상 규제 쪽으로 훨씬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순종을 의미한다‥‥ 분명히 위계적인(hierarchical) 하나님의 나라에 민주주의적 이상을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권세의 상실과 궁극적인 파멸로 귀결될 뿐이다. 종이요 아들이신 그리스도 자신께서는 제한과 얽매임을 스스로 받아들이셨다. 그는 자신을 복종시키며 순종을 배우셨다(ibid, p.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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