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성경적일까요?
A. J. 히긴스
동양도 서양도 아닌 성경적인 문화는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 영향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문화도 완전치 못합니다. 그것은 일정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경험과 꿈과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그들의 죄악 된 삶의 방식과 자기중심적인 습관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개념 등을 드러내줍니다. 그것은 거듭나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까닭에 서구적인 것이든 동양적인 것이든 완전할 리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 서구인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독립성과 개별성은 연합과 하나님의 권위에의 복종을 매우 중시하는 지역교회에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동양문화에서는 권위에의 복종이 정상적인 관행입니다. 그러나 그 권위가 주님 앞에서 올바로 행사되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적인 권위가 아니라 그저 유교적인 사상의 연장(延長)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동등성”을 높이 평가하고 강조해서 가르치는 서구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장로와 같이 지도적인 위치에서 일할 은사를 소유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일 수 있습니다. 또 결과와 성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정신”은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섬기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잡아야 한다
서구인이든 동양인이든 모든 신자는 우리의 모든 “문화적인” 성향들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검토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디도서의 가르침입니다. 거기서는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인 사람들이(
문화는 우리 모두가 극복해야 할, 영적인 성장과 축복의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로 모일 때도 “문화적인”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떤 특정 문화는 신약교회의 모형을 좇을 의무를 면제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잘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의문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의 진리가 그 특정 시대와 장소에 “적용되지” 못할 줄을 말지 못하셨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원리는 시간과 문화를 초월합니다. 그것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인 무리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고전
왜 복수의 인도자들이 필요한가?
지역교회를 인도하고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모형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은 그것이 감독의 역할이라는데 동의할 것입니다. 이들은 목자, 장로, 감독(행
복수의 인도자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은사가 뛰어나더라도 어느 한 사람이 모든 신자들의 필요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살전
그리나 복수의 인도자들이 존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이세상에 한 명의 가시적인 지도자가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함일 것입니다. “너희 지도자는 한 분”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지역교회의 교제와 규례의 모든 측면은 하나님의 진리와만 관계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의 나타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교회에 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희생하면 반드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타협하게 됩니다(고린도전서
어떻게 연합을 이룰 수 있을까?
서구문화에서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동등하다”는 문화적인 본능을 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런 형태의 지도력은 “민주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입니다. 이 점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양문화에서는 일단의 사람들에게보다는 어느 한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종종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감독들 사이에 의견차가 있으면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어떤 경우에는 인도자들 간에 의견차가 교회의 분열을 가져옵니다. 성도들이 가장 충성한 대상을 좇아 사분오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독들이 연합을 이루고 그로 인해 온 교회가 연합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르고 개성이 다르고 여러 가지 다른 요소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연합이 이뤄지거나 유지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를 인도할 성경적인 도움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지역교회들 간에 의견차가 일어난 예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율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요? 여기서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데 지침이 될 만합니다. 첫 발언자는 베드로, 즉 권위의 목소리였습니다. 베드로가 인도자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제자들의 목록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신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날 으뜸 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타고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회의에서 일어나 발언을 했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의 목소리가 그날을 좌우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그치자 바울과 바나바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여기에, 전도자의 실제 삶과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무리를 연합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끝으로 야고보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말은 적었지만 무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게 있게 들린 것은 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인용했습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보내기를 가결”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연합에 도달한 것입니다. 모인 무리에 어떤 요소가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지혜롭지 못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공격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각각 주님께서 자기에게 보여주신 바를 밝힐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이것이 연합에 이르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그것이 효과가 있을까요? 그런 유형의 지도력이 이 21세기에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동양과 서양에 다 적합할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능히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일을 성경적으로, 또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이룰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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