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의 새로운 중심
이전 세대인 율법시대에도 모든 이스라엘에는 예배의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인데 그곳 외에 다른 예배의 중심은 없었습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신
장소와 지명
예루살렘은 더 이상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니고(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10)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죄인들이 회심하는 모든 도시와 마을과 지역과 공동체에서, 회심한 이들이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함께 모이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교제와 증거를 위해 처음에는 두 세 사람이라는 매우 적은 수가 모이다가 후에는 20명, 30명, 혹은 200명, 300명, 그 이상이 모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도 그렇게 시작했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 동안은 계속해서 그 모습이 유지되었습니다.
9) 개역 한글판에는 ‘성소’로만 번역되어 있지만, ‘지성소’를 의미한다.
10) “내 이름으로”에서 “으로”는 원문에서 주님의 이름 “안으로”(unto) 혹은 이름 “안에서”(in)라고 되어 있다. “으로”는 구약 시대에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unto) 혹은 성막을 향하여(unto) 모인 것을 연상시킨다. 주님 이름 “안에서”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너희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고전
오늘날의 슬픈 현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디에 가든지 슬픈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국가교회, 종교의 거대한 조직들, 유대주의와 기독교의 혼합, 교회가 세상 안에 잇고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온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모든 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과 얼마나 다른 모습입니까! 우리가 이 현실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뿌리가 사람의 의지에 너무나 굳게 박혀 있기 매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다음과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고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새로운 예배와 새로운 제사장직
피 흘림이 없이는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정말 진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죄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즉 자기의 죄를 제거할 수 있는 제물이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때부터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 보배로운 피를 쏟기까지 짐승의 피가 흘려져야 했고 짐승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생명을 속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필요합니다. 제사가 바로 이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바로 이 진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참된 예배는 불가능합니다.
이전의 예배 체계
하나님이 이전에 세우신 예배 체계에서는 구별된 성직자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고 예배 의식에 참여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예복을 입었고, 그 예복의 각 부분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더 좋은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들이다.
이제는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이고, 모두가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너희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우리의 대제사장)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새로운 질서(arrangement)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예복을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17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직 그리스도인으로서 은혜롭고 영적인 옷을 입는 것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혹은 그와 비슷한 모든 것들은 이전 시대의 것이며 과거에 속한 것입니다.11) 첫 예배질서를 정하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이제 전혀 새로운 예배질서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 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입니까!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폐기해버린 옛 질서를 고집하고 새롭고도 더욱 풍성한 그들의 특권들을 누리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11) 구약시대의 유물이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신약시대이다.
축제일과 절기들
게다가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더 이상의 어떤 절기도, 종교적인 축제일도 없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삶의 원리로서의 율법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갈
크리스마스나, 성금요일이나, 성인들의 축일은 사람들의 뜻에 의해 생겨난 날들일 뿐, 성경은 이런 날들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태어나신 날과 죽으신 날을 자기 백성들에게 기념하라고 결코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주님이 태어나시고 죽으신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념하면서 어떤 일을 행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4절부터 26절을 보십시오. 위의 특별한 축일들은 로마 카톨릭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할례와 유월절과, 기타 다른 예식들을 포함한 의식들은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두 가지의 새로운 예식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물에 잠기는 ‘침례’와 주님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 (the Lord’s Supper)입니다.
교회에서의 음악12)
악기는 옛날부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개발된 것입니다. 시편이 이 점을 매우잘 보여주고 있고, 또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일은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따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일은 그 세대(dispensation)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교회가 모일 때에 악기가 있어야 한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새로운 예배의 질서는 전적으로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노래에 대한 언급은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13)(고전
두 번째에 인용한 성경구절에는 “찬미한다”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 말은 희랍어 “프쌀로”(psallo)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으로”(with), “····을 가지고(with)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with), 또는 무엇을 가지고(with) 노래해야 합니까?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우리는 바로 이것으로(with)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악기를 가지고(with)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2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 앞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기 “찬송하리라”에 사용된 희랍어는 “프쌀로”(psallo)가 아니라 “흄네오”(humneo)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노래하다”라는 뜻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단어는 “어떤 도구도 없이 노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2) 서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예배시간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관한 많은 이견이 있다.
13) 영어로는 “I will sing with spirit, and I will sing with understanding also”라고 되어있다 쉽게 번역하면 “내가 영으로 노래하고 또 이해함으로 노래하리라”이다. 즉 노래하는 내용을 이해하면서 노래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할 때 악기를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노래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제사장이 있다
하나님의 집(“우리가 그의 집이라”, 히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로서 무식한 자와 죄를 범한 자를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 역시 연약함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히
주님은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은 죄는 없으시지만, 모든 일에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성소에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대제사장이십니다(히
전도출판사발행 "하나님의 교회" -프랭크린 퍼거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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