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
잠언
저는 이 논설에서 목사라는 용어와 목회자라는 용어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중요한 점 하나를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이 교회를 감독하는 예를 신약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감독으로서 일생을 보내기 위해 특별 학교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직업적인 지도자 계급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고 먹이는 일에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 일에 적합하게 만드십니다. 그분은 그 일을 그분의 경험의 학교에서 성취하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양들의 선한 목자가 되는 데에 필요한 성품과 은사와 인격의 자격들을 주십니다. 이 직무에 서로 임명하는 일단(一團)의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겨서는 결코 안됩니다(즉 어떤 특정의 사람들끼리 서로 목사에 임명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는 뜻임-역자주). 양들 자신이 그들의 목자를 임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자가 될 사람들을 적합하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이것을 사도행전
“일인 사역의 개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요? 사도들의 시대에도 요한삼서 9절에 나오는 디오드레베와 같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에베소의 장로들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행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도입된 인간의 고안물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해롭듯이 일인 사역의 이 개념도 여러 가지 면에서 해롭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의 신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중요한 개념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중요한 진리들 중의 하나는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찬양을 드릴 수 있으며, 복음 전하는 것과 같은 제사장의 직무들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한 사람에게 맡겨지면 그것은 그 특별한 교제를 약화시킵니다. 종교계를 둘러보면 여러분은, 참으로 거듭나긴 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하고 있어야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는 수많은 신자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려면 특별한 종류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일요일에 그저 교회에 참석해 설교를 듣고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한 개인이 모든 믿는 자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여러 가지의 다른 필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필요들을 채워 주기 위해서는 복수(複數) 즉 두 명 이상의 인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저는 어떤 목사님한테서 그분은 성령님의 역사에 관한 설교를 회중(會衆)들에게 5년 동안 한 번도 안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입니까! 그분이 성령님의 역사에 관해 말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관계로 온 교회는 삼위일체 중의 한 위(位)되신 그 중요하신 분에 관한 말씀을 무려 5년 동안이나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김치 찌개만을 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매일 먹이는 요리사처럼 되고 싶어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셋째로, 일인 사역의 위험은 그것이 개인 숭배로 변질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종교계는 이와 같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이 게시판과 신문에 올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짜로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추종자들 곧 그들에게 특별한 이름과 많은 돈을 기꺼이 바치는 많은 추종자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주 딴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주 다릅니다. 그분은 모임의 성도들을 인도하고 먹이는 장로들이 복수(複數) 즉 두 명 이상 있어야 한다고 제정해 놓으셨습니다. 이 복수(複數)에는 보호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이좋게 협조해 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 존경해야 하며 또한 그들이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존경해야 합니다(이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영적인 자격은 아주 높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 위로 솟아오를 수 없기 때문에 개인 숭배에 대한 견제와 경계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글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특정인들을 다른 믿는 자들로부터 분리하는 명칭으로 목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개탄합니다. 이 단어에 대한 원어는 신약 성경에 18번 나오는데 그 중에 17번은 우리 성경에 “목자”로 번역되어 있고, 에베소서
우리가 목사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는 개념을 거부해 왔다면 목회자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약간 다른 이름 아래 똑같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유치한 시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다룰 때에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명칭만 약간 바꾼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에는 다른 계급들이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이며,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 외의 어떤 다른 이름도 가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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