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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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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4. 17:40 구원을 받았습니까?

 

기독교(교회)

 

예수님 없는 기독교(교회)를 아십니까?

예수님 없는 기독교가 있습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 없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그것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전구와 같고, 엔진이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속이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예수님이고, 교회의 생명도 예수님이며, 기독교인의 생명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알고 겉모습을 다 흉내낸다 할지라도 알맹이가 빠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산상수훈을 다 말씀하시고 결론적으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근본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 15~20절은 생명의 문제인데, 이리의 생명과 양의 생명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이리가 양의 옷을 입었을지라도 양의 생명은 소유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못된 나무의 생명과 좋은 나무의 생명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7 21~20절은 법의 문제인데, 법은 나라의 근간이며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법에 의하지 않고 사람에 의해서나 임의로 그것을 했다면 그는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그분의 말씀이 곧 법입니다. 교회의 모든 구조와 체제와 의식을 완전히 갖춘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살아있는 말씀의 역사가 없다면 예수님 없는 교회인 것입니다.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10:16).

마태복음 7 23~27절은 기초 즉 터에 관한 문제인데, 잘 아시는 것처럼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모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잡다한 세상 것들입니다. 이 둘은 기초로서는 서로 비교가 안 되는 것인데도 평소에는 집을 세우는데 별 차이를 못 느낍니다. 그렇지만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날 때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기독교가 세워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터 위에 개인의 믿음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장차 그 무너짐이 심할 것입니다.

하기야 신학을 했다는 사람들조차 유대인의 성전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건물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다음과 같은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만 나오면 무조건 구원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학습과 세례를 주는 교회,

거듭나지도 않은 교인을 반사, 집사, 권사, 구역장 등 직분으로 묶어놓는 교회.

돈만 있으면 장로가 되고 사회적 신분만 높으면 귀족처럼 대우하는 교회.

말로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끊임없이 헌금과 봉사를 축복 받는 비결로 강조하는 교회.

시한부 종말론, 재림 예수와 같은 미혹케 하는 교리로 정상적인 삶을 소홀히 하도록 하는 교회.

특정한 사람을 높이고 그 사람을 추종하는 것을 믿음인양 호도하는 교회.

신앙을 빙자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 직장생활 및 사회생활을 도외시하거나 소홀히 하도록 하는 교회.

자기들과 같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배척하거나 정죄하는 교회 등.

 

이런 교회 안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함께 하시지 않는데도 스스로는 함께 계신 것으로 착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지만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나실인의 비밀을 누설하므로 깎이면 안 되는 머리털을 다 깎였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그를 떠나셨지만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들릴라가 기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16:20).

그 후 삼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적 블레셋의 포로가 되어 두 눈을 빼앗기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엘리 제사장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패역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셨는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장으로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떠나신 언약궤는 단순한 나무 상자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패했고 언약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무렵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어떻게 떠나고 계신지 에스겔 선지자는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장로들과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동방 태양에 경배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8:1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증하고 패역한 행위로 인하여 그 백성들 가운데 함께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1 하나님의 영광은 본래 성전 안 그룹 위에 계셨습니다.

2. 그 영광이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가셨습니다(9:3).

3. 그 다음에는 뜰로 나가셨습니다(10:4).

4. 그리고 바깥뜰 동편 문으로 옮겨가셨습니다(10:18,19).

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11:23).

이제 그렇게 떠나신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돌아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이스라엘의 비참한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떠나셨던 그 길로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43:1~5).

지금 21세기 들어 첫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표면상으로는 이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핵심에는 이스라엘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테러 조직의 2인자는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벌어진 테러나 전쟁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이라크를 공격한데 기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집트 대통령도 이번 테러는 그 원인이 이스라엘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 오사마 빈 라덴은 이 전쟁을 이슬람과 기독교의 전쟁이라고 선언하여 이슬람사람들을 격동시켰습니다.

시편 말씀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2:1~6).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지만 배척받아 십자가에서 모든 피를 다 흘리시고 돌아가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렇지만 능력으로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사십 일 후에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약속대로 이 땅에 심판주로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오셔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평화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분의 심판을 받기 전에 속히 지금 그분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는 삶이며 소망이 없는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성전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그 성전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4).

너희 중에서 성전 문을 닫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도다(1:10).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 땅에 있는 교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허울 좋은 기독교, 겉만 번지르한 기독교, 생명 없는 다른 종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기독교, 그런 기독교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아둘람 동굴과 같이 되어야 할 교회가 요즘은 사울의 왕궁 같이 된 것은 아닐까요? 다윗의 아둘람 동굴에는 당시의 기득권세력인 사울의 체제로 인하여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삼상 21:2)가 다 모여 다윗과 고난을 함께 했습니다. 반대로 사울의 왕궁에는 현세적인 영화와 쾌락에 만족하는, 즉 영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세력들이 사울을 중심으로 모여 기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들의 최대 목표가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세상 체제에 기생하여 지위와 권세와 재물을 얻은 자들을 두둔하거나 합리화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지 않습니까? 또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지위와 권세와 재물을 정당화해 주면서 도리어 그것들을 이용하기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정작 성경의 진리와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이단시하고,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던 것처럼 소수의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횡포를 부리지는 않습니까? 이런 기독교가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뿐이 아닙니다. 공룡 같은 거대한 건물과 그 안에 있는 각종 주술식 의식으로 가득한 종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교회들조차 그 전철을 밟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딱한 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웅장한 건물을 자랑합니다. 천년을 지나간 어제 같이, 밤의 한 경점 같이 여기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까짓 인간의 전통을 자랑합니다. 경력이 화려한 유명한(?) 목사를 자랑합니다. 인기 있는 성가대나 프로그램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취미나 취향에 맞추어 사람들을 끌어 모읍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은 껍질뿐입니다.

주님께서도 마지막 때의 교회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7)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이 교회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도저히 계실 수가 없어 나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문 밖에 서 계십니다. 문 밖에! 교회 문 밖에! 교회가 다른 것을 주인으로 삼고, 다른 것을 근본으로 삼고, 다른 것으로 안을 가득 채우므로 주님을 문 밖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은혜로우신 주님이시며 오래 참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다시금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들어가셔서 치료하시고 깨끗케 하시고 거룩케 하셔서 동거하기를 원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20).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사람을 앉힌 교회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재물을 앉힌 교회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이 만든 각종 제도와 우상을 앉힌 교회여!

요시야 왕이 예루살렘에 마지막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고 모든 더러운 것과 가증한 것을 제하는 대대적인 정결 운동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 것처럼(왕하 23:1~25), 인간이 만든 각종 모든 더러운 것들을 기독교와 교회 안에서 제거하고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다시금 보좌에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윗처럼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132:8)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라야만 여호와의 집에서 온전한 찬송이 드려질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은 잘 알았습니다.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며(대상 6:31). 우리의 언약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안히 계셔야 할 곳이 어디겠습니까? 그분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의 마음의 보좌이며 그분을 머리로 모시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마음의 보좌에도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좌정해 계십니까? 당신이 나가는 교회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로 좌정해 계십니까?

-기독교인들은 과연 예수를 믿는가?에서 (전도출판사 출간, 저자:정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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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