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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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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24. 20:20 구원을 받았습니까?

누가 거듭나야 하나?

 

너희가 거듭난 것이 ....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베드로전서 1:23)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사람인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 중생(혹은 신생(新生))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줄 알고 있다. 즉 중생이 대부분 큰 변화를 수반하여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경험이기 때문에 무서운 죄에 빠져 보았거나 부도덕하고 혹은 형편없이 타락한 생활에 빠졌던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중생의 체험을 하게 되면 확실히 생활이 크게 달라지며 새로워지게 마련이라고 인정은 한다. 그러나 여기 대단히 위험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고 주일마다 예배당 빠지지 않으며 교인으로 여러 봉사도 하며 선하고 착한 종교적인 생활을 하며 깨끗하고 양심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거듭난다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 줄로만 알고 있단 말이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간주하여 예배당에 한 두번 결석하면 타락했다고 나무라고 꾸준히 계명을 지키며 각종 의식에 참여할 뿐 아니라 교리에 잘 순종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것은 악독하고 종교도 모르며 더럽게 사는 사람에게 주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 사시던 때에 가장 종교적으로 깨끗하고 완벽한 생활을 하는 모든 종교인의 본보기 같은 유대인의 한 관원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너는 거듭나야 한다" 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던 니고데모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니고데모라는 이름

니고데모는 그 이름부터 아주 의미가 깊다. 여기서 니고라는 단어는 승리 혹은 우수하다는 뜻이 있고 데모라는 단어는 원래 데모크라시 즉 민주주의라는 말에서 비롯한 것으로 백성 또는 평민이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 두 단어를 합치면 백성보다 우월한 자 혹은 승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종교적으로 철두철미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으로 보아 니고데모는 가히 옛날 사울(바울)과 같았고 넉넉히 백성의 지도자의 위치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성경 중에는 이렇게 훌륭한 이름을 가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요한 복음 3:1을 보면 그는 바리새인이었다. 보통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흔히 위선자라고 생각하며 따돌려 버리지만 원래 예수께서 살아계신 때에 참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소위 바리새파라는 한 종파의 사람들로서 구약과 신약 사이의 기간 중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본다. 이 당파는 당시 무질서와 불신으로 어지러워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에서 먼저 성경을 보존하며 선조들의 전통을 고수하고 계승시키려는 일종의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비롯한 것으로서 나무랄 데가 거의 없는 무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리에 회원이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좁은 문으로 신앙과 교육과 인쯤 등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만 가능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을 통해 성경을 배우고 또 해석하는 것을 들었으며 전통 문화를 계승 받았는데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니고데모였다. 모든 신도들의 모범 인물로서 가히 칭찬을 받을 만한데 예수께서는 너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나

산헤드린

니고데모는 유력한 종파에 속한 바리새인 일뿐 아니라 당시 집권당인 산헤드린의 관원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오늘 날 국회와도 같고 행정최고기관으로서 백성에 관한 모든 문제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기관이었다. 민주정치제도에 있어서 대법원이나 혹은 카톨릭교에 있어 바티칸과도 같은 최고 기관이다. 권력을 가진 자로서 요한 복음에서는 유대인의 관원이라는 함축성 있는 표현을 했는데 바로 이런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너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선생

더욱이 예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3:10)이라고 하셨다. 이 말은 그가 종교 의식과 성경에 밝아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율법에 관해서는 능통했고 가르치는 일에도 훌륭했지만 중생이나 거듭나는 것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박사였지만 결코 구원받지 못한 상태였다. 종교적 의식이나 율법의 제사일에도 밝았고 경험도 풍부했으나 문제는 참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며 외면적으로 지극히 경건하고 위엄있게 보이며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나 그는 결국 영적으로 죽어있었기 때문에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 거듭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니고데모가 오늘날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현대의 가장 유명찬 신학자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며 일류신학대학이나 선교 학교의 총장쯤 되어 종교계를 대표하였을 것이다. 권위 있는 신학서적도 여러 권 집필하고 상당히 무게 있는 새로운 진리도 여러 가지 내세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너는「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3:10). 이 선생은 아직 거듭나지 않았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너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정직했다

니고데모는 그래도 위선자는 아니었다. 그는 종교적으로 훌륭했고 도덕적이었으나 특히 스스로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지한 태도였지만 그만큼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다. 도덕적인 것이나 진지한 것 자체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중생없는 도덕은 죽은 것이며 아무 쓸 데도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실제적인 생명의 체험도 없이 즉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지도 않고 이런 도덕과 율법을 준행하여 만족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오늘 날에는 얼마나 많은지! 예배당에 다니고 기도하며 헌금하고 봉사하며 심지어 목회자가 되면 충분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으니 참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뤄놓으신 구속 사업을 믿고 거듭나는 개인적인 믿음을 제쳐놓은 교인 생활은 가장 처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니고데모의 태도에 관하여 좀 더 보자.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3:2).

부끄럽지만 계속 진리를 찾고 있던 그였기 때문에 예수께 와서 위엄 있는(?) 신분으로 젊은 예수 앞에 온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인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방향이 달랐다, 정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선생이며 위대한 선지자로 믿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또 그렇게 하려고 맘 먹고 찾아온 것이었다. 아무런 변론이나 어떤 형식적인 인사치례를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하신 말씀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는 깜짝 놀랄만한 대답이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백성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택하신 유대백성으로서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율법과 계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도록 약속하였다. 그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가장 명문 있는 가정의 전통을 지키며 종교의 대지도자였는데도 그는 거듭나야만 했던 사람이다.

사랑하는 친구여, 종교가 당신을 구해주지는 못한다. 수십년 동안의 교인 생활, 세례나 혹은 침례, 아침마다 드리는 가정 예배, 이 모든 것은 귀한 것들이다. 그러나 「니고데모」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도 거듭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는 살 길이 없다.

아직도 엄연한 진리

거듭나지 못한 자연적인 모든 사람은 영적인 소경이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했다(고전 2:14).

수학이나 화학이나 정치학 혹은 기계학이나 전기에 밝은 천재도 있으며 신학적 지식도 풍부하고 천체의 일들을 분별할 수 있는 자라도 영적으로 소경인 사람들이 많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록 그가 영적으로 어린 아이라 해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그의 죽으심과 육체적인 사실적 부활, 믿음으로 받는 구원, 다시 오실 약속 등 성경 페이지마다 기록된 수 많은 말씀에 스릴을 느낄 것이지만 아무리 박식한 자라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했다면 절대로 성령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그 문체가 훌륭하다느니 혹은 베스트 셀러니 하며 말할지 모르나 그 안에 담긴 수 많은 비밀은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신학은 그 신앙을 더 두텁고 든든하게 세우나 신학 만으로는 절대로 영적인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네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솔직한 대답을 해보라. 정말 거듭났는가? 니고데모같은 사람도 이 문제에 걸리는데 이런 일에 한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누구나를 막론하고 다 거듭나야 한다. 스스로 거듭났는지 잘 모르거나 아직 중생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이 사실에 귀를 기울이라. 이것은 언제부터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다. 언제 무슨 병을 고침 받았느냐는 질문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거듭 나는가? 요한복음 3장을 21절까지만 자세히 읽어 보라.

한 마디로 말해 나 자신의 노력과 율법의 행위와 교만을 벗어놓고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 의()를 얻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제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볼지어다 내가(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겠다(3:20).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1:1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당신은 주님이 오시면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신비스런 환상이나 체험이나 머리로 아는 지식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깨달아 주님이 오실 때 기쁨으로 주님 맞이 하실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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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