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8. 4. 15:59 빛 가운데로 걸으며

나의 십자가는?

우리는 옛날에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흉한 십자가를 노래하기는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의 십자가는 어떤 것인가?
전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거의 아무도 모르는 틈에 요즘 유행하는 기독교 신앙에는 하나의 새 십자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옛 십자가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것이다. 같은 점은 그 표면이요, 중심은 전혀 딴 판이다.

그 새 십자가에서 하나의 새로운 기독교인의 생활 철학이 태어났고, 그 새 철학에서 하나의 새로운 전도방식이 생겨났다. 그 전도방식과 설교의 정신은 옛것과 다르다. 그 설교는 옛 것들과 같은 말을 쓰고 있지만, 그 내용은 같지 않고, 그 강조점도 변했다.

옛 십자가는 하늘 백성과 세상 사이를 끊는 칼이었다. 그것은 "아담"의 교만한 육체에 대한 완전한 종지부였다. 시내산의 율법이 선고한 것에 대한 집행이 그 옛 십자가에서 실행되었다. 그런데 새 십자가는 세상과의 관계를 끊는 칼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의 관계를 더욱 교묘하게 연결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똑바로 알고 보면, 새 십자가는 겉으로만 선량하고 악이 없어 보이는 향락의 근원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살게 만들어 준다. 새 십자가는 삶의 동기를 변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여전히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며, 다만 전에 부르던 음탕한 노래 대신에 이제는 찬송을 부르며 즐기고, 술을 마시는 대신에 종교 영화를 보고 즐기면 흠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그 향락이 고등한 수준에 올라왔을 뿐이요, 그 생활의 중점이 여전히 쾌락에 있음에는 아무 변동도 없다. 이 새 십자가는 필연적으로 옛것과는 전혀 다른 전도 방식을 요구한다. 새 십자가의 전파자는 새 생명을 받기 위해서 옛 생명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상극된 점들을 말하지 않고, 유사한 점들만 말한다. 기독교는 세상에 대하여 불쾌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다 고등한 것으로서 세상이 찾는 것과 같은 것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육체뿐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준다. 죄에 미친 세상이 대단히 흉악한 욕망을 추구하는 마당에서도, 그 전도자는 말하기를 복음이 제시하는 것도 그와 같다는 것을 교묘하게 설명하면서, 다만 종교적인 산물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새 십자가는 죄인의 죄를 끊어버리지 않고, 다만 그 죄인의 처소를 이동시켜 줄 뿐이다. 그것은 죄인의 생활을 보다 약간 깨끗하고 명랑한 길로 돌릴 뿐이오, 그 죄인의 체면은 손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를 고집하는 자에게 새 십자가는 말한다. "와서 그리스도를 위해 너희를 고집하라." 이기주의자에게 그는 말한다. "와서 주 안에서 네 자랑을 해보라." 그리고 말초신경의 향락자에게 그는 말한다. "와서 그리스도의 교제의 맛을 즐기라."

오늘날, 교회의 설교는 세상과 영합하기 위해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경향으로 기울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뒤에는 건전한 이론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전한 이론이 그 그릇됨을 고치지는 못한다. 그것이 그릇 되었음은 그것이 맹목적인데 있다. 십자가의 모든 뜻을 완전히 망각한데에 그 치명적인 과오가 있는 것이다.

옛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그것을 짊어지는 자에게 갑자기 결정적이고도 폭력적인 종말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십자가를 지고 영문을 나선 사람은 벌써 돌아오지는 못할 사람이었다. 그는 생활의 방향이나 변경시키는 정도로써 그 처지를 면할 수 없었다. 그는 어차피 그의 생명을 버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타협을 모르는 것, 취사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것을 짊어지는 모든 생명을 완전히 죽였다. 그것은 그것의 희생자와 더불어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고는 아니하는 것이었다. 그 박격은 신속하고 준엄하여 그 박격이 한번 지나간 다음 순간 그것을 졌던 사람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었다. "아담"의 후예들은 사형의 선고를 받았다. 감형이나 모면의 길이란 그들에게 없다. 사람의 눈에는 아무리 악이 없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죄의 열매도 용납하시지 않는다. 개인마다 그 죄의 열매를 다 청산케 한 후에야 그를 그 파산의 자리에서 구출하시고, 새 생명 중에 들어올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원칙이다. 그런고로 이러한 하나님의 원칙과 사람의 타협과를 혼돈하여 만들어낸 전도는 성경 말씀에 대한 위반이요, 듣는 자의 영혼들을 죽이는 무자비한 행위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세상과 병행할 수 없다. 우리가 고의로 세상과 충돌해서는 안되겠지만, 옛 십자가는 늘 세상과의 충돌을 면치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 앞으로 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옛 생활을 보다 높은 수준에 올린다는 것이 아니고,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의미한다. 밀알은 땅 속에 묻혀서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을 그리스도와 세상과의 사이를 화해시키는 어떤 조정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알아서는 안된다. 세상의 큰 기업체들이나, 보도기관들, 체육계, 교육계 등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만하게 그리스도를 분장시켜 중매하려는 따위의 모든 행위는 실로 두려운 죄악이다. 우리는 외교가가 아니라, 선지자다. 고로 우리의 말은 타협이 아니고, 언제나 최후통첩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그 생명은 옛 생명을 개량한 것이 아닌, 사망을 통과한 생명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맨꼭대기에 높이 달렸다가 내려온 생명이다. 이 생명을 얻으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채찍 밑을 지나야만 한다. 그는 먼저 자기를 버려야 하며, 옛 사람의 체면을 여지없이 깎아버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선언을 수락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교리는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새 생명을 얻으려는 사람마다 회개하고, 믿어야 한다. 그는 자기의 죄를 버려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 아무 것도 가리우지 말아야 하며, 회피하지 말고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아예 하나님 앞에서 핑계의 말을 찾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실하신 책망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거친 다음에는 그로 하여금 단순한 믿음으로 부활하신 구주를 바라보게 하라. 그러면 생명과 성결과 능력이 위로부터 주어질 것이다. 예수의 지상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했던 십자가는 이제 그 죄인의 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게 하며, 예수를 부활시킨 그 능력은 이 죄인도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케한다. 말을 반대하거나, 이것을 진리에 대한 하나의 사사로운, 편협한 소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은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바울 사도의 시대부터 오늘까지 일관하여 이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과거 2천년의 세월을 통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주어온 복음의 골자는 위와 같은 것이었다. 초대 교부들로부터 시작하여 중세기의 신령한 신자들과 개혁자들과 현대의 신실한 전도자들은 다 일치하게 이 점을 강조해 왔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적과 기사와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써 이 진리의 참됨을 증거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다같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빛 가운데로 걸으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악을 구별하는 것(2)  (0) 2014.04.16
선악을 구별하는 것(1)  (0) 2014.04.16
주의 날  (0) 2014.04.15
사람들이 만든 안식일  (0) 2014.03.30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  (0) 2012.08.01
베드로의 실패와 주님의 가르침  (0) 2012.07.31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  (0) 2012.02.19
영혼의 회복  (0) 2012.02.1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