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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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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2. 08:04 횃불/1977년

하나님의 사람들(1)

죠지 뮬러

 

죠지 뮬러(George Muller-1806~1898)는 프러시아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부친은 그를 성직자로 만들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는 극히 불경건한 청소년기를 보내었고 그-후 수년간도 죄로 타락된 생활로 연속되었었다. 그의 회심은 이상하게도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깊은 죄책감이나 분명한 복음전파들 통하여라 기보다 기도하고 있던 한 적은 무리 중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가 구원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한 신생의 체험이었다. 그의 생은 단번에 통채로 하나님께 돌이켜졌고 또한 그는 급속도로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말씀의 사역에의 헌신도 이제는 하나의 실제로 되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선교사가 되기 원하였고 이 때문에 그의 히브리어 공부는 그에게 맞는 듯 하였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는 신체검사에서 군복무에 불합격 통지를 받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복음전도 사업에 투신할 수 있게 하였다. 그 후 그는 런던의 유대인 협회 산하에서 직업을 얻어 일할 계획아래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양심상 동의할 수 없는 제조건 때문에 장애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 런던을 떠나서 데본샤이어의 테인마우스로 갔고 거기서 주의 쓰임을 받아 얼마 동안 정착해 있었다. 거기서 헨리 크레익 형제와 교제하게 되고 그 이후 그 형제가 1866년에 주님께로 갈 때까지 함께 주님을 섬겼다. 그 기간 1832년에 그들은 브리스톨에 왔고 거기서 전도의 문이 열려서 벳세다 집회소를 중심으로 함께 사역하여 큰 열매를 거두었다.

데본샤이어에서 이미 그들은 조합교회의 전통을 떠나게 되어 영아세례나 교회의 좌석료, 분리사역 제도, 국가의 봉급 등을 버렸다. 그들은 주님의 상(Table)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요구됨을 알았고 교파적 견해나 구분에 좌우되지 않음을 알았다. 브리스톨에서의 일이 점차 흥왕해 가는 동안 뮬러의 마음은 버려진 고아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인도되었다. 소규모로 시작한 것이 차차 여러 집을 세()내어 고아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애당초 그는 그 시설의 존재를 알리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한 그 일에 함께하는 사람들 이외의 사람에게 재정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구걸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유는 자기는 단지 고아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증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었으니 곧 옛날과 동일하게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려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도움에 힘입어 그는 이러한 사업의 규모를 넓히기 원했다. 빚지지 않고도 모든 방편이 공급되었으므로 (그는 어떤 경우에도 빚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애슐리다운에 삼백명 고아를 수용하는 집을 지었다. 그 후 2차 증축 삼차 그리고 두 번 더 지어서 2,050명의 고아와 직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집을 마련했다.

사업이 크게 확장됨에 따라 년간 약 삼만파운드란 거금의 예산이 필요하게 되었고 주님만 의지하고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굳게 고수하면서 65년간을 유지해 왔다. 1834년에 시작한 이래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만 그들의 필요를 아뢰었다. 그 시설을 광고하지도 않았다. 1년에 한번 연말 결산 후 재정보고를 했고 이는 주께서 어떻게 그들을 처우하셨는가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주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심에 결코 실패하시지 않았고 어떤 때는 자금이 다하는 당일에 혹은 당 시각에 공급하시는 경우가 있었을지라도 그렇게 공급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죠지 뮬러에 대한 주님의 처우란 책과 연차보고 등은 여러 시련기에서의 기도의 응답을 받은 연속사의 기록이다. 일화중의 하나로서 한 형제가 뮬러형제를 방문하고 아침을 함께하는 동안에도 아무런 궁책이 없었고 그 형제는 떠나면서 얼마의 금전을 놓고 나갔다. 2년후 보고서에서 읽어보니 그 날짜에 한 형제가 그들과 함께 하룻밤을 잤고 우리에게는 그 형제와 우리가 먹을 식량 밖엔 없었고 돈은 떨어졌었는데 그 형제가 놓고 간 돈으로 그 후의 필요가 공급되었다고 했다. 재정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 혼자 보고 계시면서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다. 고아원의 보일러가 낡아서 겨울에 수리를 하지 않으면 수많은 고아가 동상을 입을 지경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예외로 그들의 기도 응답으로 따뜻한 날씨를 주셨고 그 공사가 끝날 때까지 날씨도 좋았고 자원해서 수리공들이 차례로 나타나서 밤일까지 해주었다.

이러한 일은 계속 일어났고 여러 해를 두고 오랫동안 일어났기 때문에 불신자의 다른 해석을 막아주었고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임을 입증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닥치는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 즉 항시 정직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또 우리가 그의 시간을 기다리고 그의 방법을 하시도록 할 때, 주님의 역사하심을 뮬러의 체험이 보여주고 있다. 고아사업에 쓴 금액은 백만스터링을 넘으며 이 외에도 성경과 전도지 반포용으로 쓰여진 돈 만도 397,000파운드가 넘는다. 1874년에서 1892년까지는 그의 사 위 제임스 라이트에게 고아원 일을 인계하고 그는 영국, 구라파대륙, 북아메리카, 카나다호주, 인도, 중국 및 기타국을 방문하며 복음을 천하였다. 어떤 때는 수많은 사역자들이나 학생 앞에서 (교파를 초월해서) 간증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믿음을 굳게 하여 큰 은혜를 끼쳤다. 처음에 그가 전도할 때는 그는 강대 설교식의 전도를 하지 않고 쉬운 말로 전파하여 인간의 지혜대로 하지 않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따라 하였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였고 기회 있는대로 성경읽기를 계속했고 믿고 그대로 행동했고 그의 체험에서 사실임을 발견 했다.

1898 3 10 이은 아침 93세의 나이로 이 하나님의 사람은 급박히 이 땅의 사역을 마치고 개선하였다. 바로 전날에도 일상 일로 분주했고 저녁에는 전례대로 기도집회에 참석하였다. 그의 임종은 순간적이었고 고통은 없었다.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듯이.

 

(197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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