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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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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6. 14:15 횃불/1978년

하나님의 사람들(3)

찰스 헨리 매킨토쉬

(1820~1896)

그의 이름 머릿자를 딴 씨 에이취 엠(C.H.M)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찰스 헨리 매킨토쉬 형제는 1820 10월에 아일랜드의 카운터 위클로 그렌마루어 배랙스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군인으로 하이랜더스 연대의 중대장으로서 반란기간에 아일랜드에서 근무하였다. 그의 모친은 레이디 웰돈의 딸로서 아일랜드에서 오랫동안 정주했던 가족이었다. 18세 때에 젊은 매킨토쉬는 그의 누나가 구원 받은 후 그에게 보낸 간증 편지를 통하여 영적 깨우침을 체험하였고 이어 제이 엔 다비형제의 저서인 성령님의 역사를 통독하였는데 특별히 효과적인 도움을 입은 말씀은 평강을 주시는 것은 우리 안에서의 그의 사역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이다라는 말씀이었는데 이 말씀에서 평안함을 얻었다고 한다. 리머리크에 있는 사업장에 들어가서도 이 젊은 그리스도인은 독서에 착념하였고 또한 부지런히 공부하여 각 방법으로 자기의 마음을 수련하였다. 1844년에 그는 웨스트 포트에서 한 학교를 세웠다. 그는 교육사업에 그의 정력을 투입하였다. 이때의 그의 영적 태도는 그리스도를 그의 생애의 최후 거점으로 모시려는 기도와 아울러 그리스도의 사역을 자기의 최대 관심사로 만둔 것 등의 사실로 나타났다. 그는 결국 1853년에 그의 학교사업이 자기의 기초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여 이를 포기하였다.

잠시 동안 그의 펜은 모세오경에 대한 주석으로 분주하게 되었다. 40년에 걸쳐 씨 에이취 엠 강해(주석)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관해 출판되고 신명기에 관해서는 두권 출판되었다. 그의 저서는 깊이 울리는 복음 전파적 정신으로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연속적으로 대국 판으로 출판되었다. 서언(序言)은 출판 비용을 댄 그의 친구 앤드류 밀러에 의해 기술 되었는데 그는 서문에서 마음과 같이 말했다.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완전한 실패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이 충분히 분명히 그리고 자주 인상적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주석가로서의 CHM은 명쾌한 스타일을 갖고 강한 필치로 그의 관점을 논술하고 있다. 그의 추론 중의 어떤 것은 신자들의 통측으로는 희한한 것으로 여겨질 형태의 것도 있다. 하여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된 마음 때문에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의지 때문에 지나치게 자극을 주는 것은 없었다.

학술적인 사업을 끝마친 다음에 CHM 형제는 더불린으로 가서 공중 앞에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수년간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수호하였으며 진리를 설파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울 정도로 그의 사역을 축복하시었다. 1859~60년 기간에 애란에서 큰 부흥의 물결이 휩쓸 때에 그는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어떤 분은 그의 사역을 평()하여 그의 수고는 초기에 출판한 저서 새로운 것과 낡은 것안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직업을 가지지 않고 복음 사업에만 전무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가끔 그를 단련하셨지만 생활의 필요 때문에 궁핍을 당하지 않게 하셨음을 간증할 수 있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4년 동안 그는 첼텐햄에서 거주하였는데 나이가 들어서 몸이 쇠약해졌고 강단에 설 수 있는 기력이 없었지만 계속 집필은 할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전도용 책자는 목장의 풍성이란 것이었다. 그의 저술의 영향은 막강하여 측량키 어려울 정도이다. 그는 그의 모세오경 주석을 읽고 만족해 하는 사람들의 감사 서신을 세계 각국으로부터 계속해서 받았다. 1843년에 쓴 그의 첫째번 전도책자는 하나님의 평화란 것이었고 그의 마지막 저서는 1896년에 쓴 평화의 하나님이다. 그가 평화의 하나님원고를 출판인에게 송부했을 때 그의 손은 그제야 쉬게 되였고 그 후 몇달 만에 영원한 휴식으로 들어 가셨다. 그의 잡기(雜記)”라는 책은 6권으로 되었는데 이는 주석과 맞먹는 책이다. 그는 1896년 11월 2 평화롭게 영민하여 주 앞에 개선하였고 사일 후에 경건한 사람들이 첼텐햄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그의 유해는 그 의 사랑하는 아내의 유해와 나란히 놓였으며 세계 여러 곳에서 수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어 장례를 지켜 보았다. 에딘버러에서 오신 형제 월스톤 박사가 장례식 식사(式辭)를 했는데 그는 아브라함의 장례를 상기시키면서 창세기 25 8~10, 히브리서 8 10절을 들췄다. 하관식에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다비 형제가 지은 아름다운 찬송가를 합창하였다.

오 빛나고 복된 광경들이여

죄가 결코 넘보지 못하는 그 곳을

비록 우리가 배회하는 이 땅에서라도

간절한 심령으로 그 광경을 사모하네

 

(197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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