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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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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5. 16:53 횃불/1978년

새해의 다짐

O. M. 에반즈

또 새해 그러나 어떤 해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1978년도를 맞아 무언가 마음 속에 깊이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실 지나간 해에도 많은 결심을 했었지만 맘 속으로 좋은 의도를 갖는 것만 모든 일을 성취한 것이 아니다. 그 다짐을 위해 기도하며 또 실제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져야만 할 것이다.

올해의 내 신앙생활의 목표는 사도 바울의 서신 중 빌립보서 3 10절에서 택하기로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 귀절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를 알며』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며』

『그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며』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다』

꼬마였을 때 어머니는 내게 이모님에 대해서 자주 얘기해 주셨다. 그래서 난 이모를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분의 성질이 어떻고 그 가정 형편과 얼굴이 어떠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조금 커서 이모님을 만났을 때 깨달은 것은 내가 이모님에 대하여 몇가지 알고                있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얼마동안 같은 집에서 살며 같이 울고 웃고 이야기하고 또 날 붙잡고 여러 곳에도 다니며 사권 다음에야 비로소 그이모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알며····

난 그리스도에 대하여 여러번 들었고 또 성경을 통해 읽은 것도 알았다. 그러나 난 그를 더욱 확실히 알아 마음과 마음이 주님과 아름답게 교통하도록 기도하며 바란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연약한 피조물인 사람이 이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내 구주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으로 되셨고 우리처럼 모든 시험을 받으시는 자 같이 되셔서 스스로 우리에게 자신을 밝히 드러내 주셨던 것이다.

나의 기도 중에 하나는     단순히 그분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개인적으로 또 마음과 마음이 통하도록 가까이 교제하며 인격적으로 서로 이해하는 주님으로 더욱 알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일을 하셨다든지 또 하실 수 있다든지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오히려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원한다. 모든 거룩한 성품과 공의와 청결함과 사랑과 자애로움이 그 안에 풍성히 거하는 주님을 더 알기 원한다. 그의 제자가 되길 원하며 더욱 그를 닮고 싶다.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며····

현재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나에게 어떠한 중대한 의미라도 있는 것인가? 죽어봐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오늘 날에도 그 권능은 절실히 요구된다.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불의한 생각과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이 불살라지며 시기와 증오와 의심, 교만과 분쟁-이 모든 더러운 것들이 그 능력으로 인하여 완전히 전멸(全滅)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이러한 것들 위에 빛으로 나타나시어 십자가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라지도록 하셔야 한다.

또한 그 부활의 권능을 인하여 주께서 내 안에 거하신 이후 새롭게 심어준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이 더욱 분명하고도 박력있게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는 나를 향해 활을 겨누고 나의 소망을 지우려 하며 용기를 잃게 조작하기도 하고 주님의 일을 하려는 열심도 꺼버리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새로운 힘으로 인하여 죄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실망과 낙담을 딛고 서며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만 섬기기 원한다.

날마다 수 많은 질병과 마음의 갈등을 이기기 위해서도 주님의 부활의 권능이 필요하다. 그 권능이 내 안에 충만하게 거할 때야말로 세상과 죄와 마귀의 거대한 세력을 이기는 때다.

 

그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며····

서로 참여하는 것 즉 교제! 나는 부활한        그리스도와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도 나의 육신은 고난에 참여하기를 너무나도 싫어한다. 두려워하여 몸을 움츠리고 떤다. 얼굴을 돌리고 될 수 있는대로 피하려는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닫고 있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영적인 교제를 체험하지 못한다는 비밀이다. 나는 떨리는 음성으로 그러나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 나도 주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는 그 고난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깨닫게 해 주신다. 주님은 양 손과 발에 박힌 굵은 못 때문에 괴로우신 것보다는 사악한 세상이 회개할 줄 모르기 때문에 너무 괴로우셨고 머리에 쓰신 가시관의 고통보다도 빛 보다는 어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그때 그리스도의 생명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과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그의 생애는 거룩하고도 깨끗하였으나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했다. 그는 사랑과 동정으로 죄인을 도왔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 사실을 비난거리로 삼았다. 그의 생애는 고독하였으며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어 사랑을 말했지만 세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셨지만 사랑하는 제자들까지 고난 당하시는 주님을 끝까지 따르지는 못했다.

그 깊은 고독의 고난을 알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조롱과 비난의 고난도 알 수 있는가? 동정해도 반응이 없고 사랑을 쏟아도 무효한 그러한 영혼을 나도 알 수 있을까?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제 길로 가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울고, 병자를 보며 동정하고 죄로 인해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애통함을 나도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삶에는 결코 개인주의적인 교만이나 야망 혹은 세상적인 재물에 대한 욕심이 함께 있을 수 없다. 치뤄야 할 댓가가 크기도 하지만 그 후에 받을 어마어마한 상급을 볼 때 나는 감히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나로 하여금 주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축복하소서. 그 고난이 무엇일지 알 수 없으나 눈물과 사랑과 긍휼로 사신 그리스도의 삶을 배워 그 안에 살기 원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점에 있어서는 나로서는 전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없다. 이 글을 쓰기조차 떨린다. 나같은 하찮은 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역사(役事)의 깊은 데까지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바울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었지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나도 감히 믿음으로 같은 기도를 하련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증오와 죄인에 대한 사랑을 내포하기도 한다. 또한 죄를 버리고 의의 삶을 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가장 최후의 사건이며 모든 것이 끝나는 때다. 거기엔 이중 인격이나 우유부단한 생각이나 타협도 있을 수 없다.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은 그 죄를 완전히 무찔러버린 자다. 죄의 부름에는 귀가 먹어버렸고 그 대신 하나님의 목소리는 세밀하게 들을 수 있게 된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에게 건방진 것이나 조급한 성질이나 허풍 떠는 생활 태도가 나타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삶은 나를 겸손케 해주며, 올해에도 주님 암에 무릎을 꿇도록 촉구한다. 모든 자를 위해 종되기를 마다하지 않게 하며 그리스도의 상처 난 몸 가까이로 나를 이끌어 그 분의 마음과 생각에 민감해지도록 한다.

그의 죽으심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하나됨의 상태다. 그것은 육신을 향한 사형선고이며 동시에 주님께 대한 완전한 복종과 만족의 선언이다. 나 스스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으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그의 죽으심을 본받게 되는 올해가 되길 기도한다. 이것은 토기장이 손에 잡힌 질그릇의 태도며 대장장이 손에 잡힌 불에 달궈선 쇠조각과도 같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온 몸을 맡겨버린 의지함이다. 부서지고 녹고 휘어지며 눌려서 다시 새 모양을 입는 삶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기도며 다짐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나의 소망인 이 것을 당신의 것으로 하지 않겠는가?

 

(197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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