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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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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26. 21:38 횃불/1978년

바울과의 항해

주의 만찬(晩餐)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교훈하셨던 역사적 사실을 빼놓고는 사도 바울이 주의 만찬에 관하여 말한 유일한 기록자입니다. 주의 만찬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기에 이에 관하여 하늘로부터 특별히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이 목회서신인 고린도전서에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헌장이라고도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생활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망라하여 교훈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다음에 있는 고린도전서는 특별히 초신자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해 가는데 더없이 중요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고린도전서를 읽고 또 읽고 소상하게 상고해 보십시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과 11장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예식에 관한 진리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10장에는 주의 상을 말씀하고 있으며, 11장에는 주의 만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에 대한 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이로써 우리가 참다운 만찬의 축복을 만끽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각각 다른, 교제와 연합을 보여 주는 세가지 상이 놓여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말라기가 여호와의 상”( 1:12)이라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이방인들은 귀신의 상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상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10:21).

주의 만찬 예식에 대해 말할 때 귀신의 상에 참여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이 극히 무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는 고린도전서 10장의 명백한 진리에 관해 무식한 소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축제는 결코 귀신에게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있을 때에라도 방법과 원리에 있어서 잘못되어 있을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란 옳지 않으며, 있을 수 없습니다. 주의 상에는 항상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려지신 것을 기억하는 떡과 잔을 진설해 놓게 됩니다.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참여해야 할 사람이 제외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상이시기에 주님 홀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주의 상에 비성서적인 행동이나 교훈이 관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잠잠하심처럼 기다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 집을 다스리는 아들이신 주님은 주님의 권력과 권세의 남용을 지켜보고 계시며, 자신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주의 상과 관련하여 모든 거룩하지 못한 것을 살피십니다.

이것은 기독교계에서 수 많은 신자들이 하나로 명부에 올라 있어야 만찬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며, 주의 상에 참여하려는 결심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기록대로 성서적인 방법으로 모이는 자들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주의 상이 상징하고 있는 바를 16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이것은 하나님의 단순한 설명이며, 주 예수님께서 사랑의 절기를 교훈하신 바와 동일합니다. 주님의 상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죽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따로따로 놓여 있는 떡과 잔은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죽음이 성취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상 위에 있는 한 떡은 17절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이 떡은 실제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주님의 몸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신비스러운, 영적인 몸을 상징해 줍니다. 이 몸은 신자로서 이루어지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떡에 참여하므로 상호간의 교제를 나타낼 뿐 아니라 주님과의 개인적인 연합도 잘 나타내 줍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21절 말씀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대로 악에서 떠나 있어야 됩니다.

11장에서 성령님의 생각은 10장에서 본 상징 보다는 만찬 그 자체에 관심을 보여 주십니다. 23절로 26절에서 바울이 만찬에 관하여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을 알게 됩니다. 세 복음서에서 일치하게 기록해 주고 있음에도 이를 주님께서는 특별한 계시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함에 덧붙여 다만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전하다보여준다는 뜻도 있음).

고난의 십자가와 영광스러운 재림은 믿음으로 볼 때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만찬을 계속해야 한 것입니다. 모든 절기는 그 자체가 교훈을 내포하고(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 자체가 주의 죽으심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찬에서 더없이 거룩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주님을 과시하는(보여주는, 전하는) 것이며, 또 때로는 우리가 서로 모일 때에 고린도전서 14 26절의 말씀대로 찬송시나 가르치는 말씀으로 전파하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수년전 거듭나지 못한 일본 사람이 참여한, 캘니포니아의 새크리멘토에서 있었던 일은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찬예배를 시작하려고 떡과 잔을 차려 놓았을 때 이 사람은 격정에 못 이겨 벌떡 일어나더니 열열하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버리나이다. 저는 참으로 불쌍한 죄인이오며, 오랜 동안, 적어도 1년 동안이나 주님을 대적했나이다. 그러나 저는 주의 백성들이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시고 있음을 볼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음을 보게 되옵니다. !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주님을 거역할 수 없사오며 제 모든 것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영접하나이다. 지금 저의 구주가 되어 주시옵소서

이처럼 열열하게 기도하던 바로 그날 그는 그리스도를 믿은 증거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수년 동안 그는 단순히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사 일이 아닙니다! 만찬이 주님의 죽으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주의 만찬에 있어서 성령님을 소멸하는 어떤 규제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습관적이고 규칙적인 의식을 만들지 마십시오. 다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기억하라고 그 심령에 말씀하실 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978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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