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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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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30. 06:26 횃불/1978년

교회교제

이치일

교제란 보배로운 말이기에 우리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교제란 일반적으로 함께 참여하거나 함께 일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을 받게 되면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성도들로 더불어 주님을 예배하며 전도하고자 모이기를 소원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아름다운 본보기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자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멀리 떠나 있었으며 죄사함을 받아야겠다는 사실을 깨달아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2:37). 베드로는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증거로 침례를 받으라고 가르쳤습니다(2:38).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들의 동족인 유대교를 믿은 유대인들과 갈라서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더구더나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 치뤄야 하는 대가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2:40).

이제 그들이 진정으로 거듭 났을 때에 일어난 아름다운 본보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역 교회에서 교제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시고 있는 가장 명백한 교훈일 것입니다. 사도행전 2 41절에서는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만 여쭤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선하고 도덕적인 생활로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실는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이만 저만 오산이 아닙니다. 인생이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침례를 받았음 보게 됩니다. 신자가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에 관하여는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신분을 같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아세례에 관한 가르침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침례가 죄를 없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 우리 심령에 역사하신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동시에 주님의 분명하신 분부를 순종하는 예식인 것입니다.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받은 성도라면 침례를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세째로 새로운 성도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더해졌습니다. 교회란 낱말이 사도행전 2 41절에 나오지 않지만 교회에 관한 가르침이 분명합니다. 이들 새로이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은 120명의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교회로 모이기를 시작하였고 자신도 그 지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 성도들로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특전입니까? 교회가 얼마나 크고 작으냐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새로 거듭난 사람들이 어떻게 교제할 올바른 교회를 알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2 42절에 신약교회의 네가지 특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예나 오늘이나 모든 성서적인 교회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전혀 힘썼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광범위합니다. 우리들도 매월 횃불 통해서 사도들이 가르쳤던 바를 힘써 증거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떠나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의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뜻을 알기 위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분리주의(교파)는 성경에서 결코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든가 성도, 제자, 신자, 또는 형제와 자매등의 명칭 외에 다른 이름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붙여진 것이 아닙니다. 지역교회에서의 일인목회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성경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도 성경의 교훈이 아닙니다. 일부의 어떤 이들은 보수를 기대하며 그들이 하는 일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사도들은 그렇게 가르친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은사 있는 사람을 일으키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양무리를 돌보는 것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목회는 장로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장로들은 그들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세상에서 경건한 생활에 본을 보여주며 주의 백성을 먹이며 인도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인도하는 자들을 젖혀놓고 한 사람이 높아져 있고 주장하게 될 때 지역교회는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약화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 5절은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만약 한 사람이 모든 영적인 일들을 독단한다면 어떻게 온 성도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의 교훈 중에서 우리 세대에 이르러 등한시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복음을 진하는 일입니다. 만약 당신께서 교제를 나누고 있는 교회가 사도들에 의하여 전파되고 또 교훈해 주신대로 명백하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구속을 믿고 증거하는 신자들을 찾아 교제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교제하는 일에 전혀 힘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외로워 낙심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방법으로서 신약교회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셋째로 떡을 떼기에 전혀 힘썼습니다. 이는 주의 만찬을 전혀 힘썼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예식은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에 당해주신 고난을 다시금 회고하는 기념의 만찬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값으로 사신 주님을 너무나 쉽게 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구속하신 주님을 속히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던 사실(史實)은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또한 주님의 만찬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념해 달라고 분부하셨기에 미래를 바라보는 예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떡을 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이렇게 주님을 기억할 수 있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인가 만찬은 끝나게 될 것이며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인데 그날까지 만찬을 통해서 주님을 기억하는 일에 성실해야 할 것입니다.

네째로 그들은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계속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을 위한 본보기입니다. 허다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문제에 관해 기도하는 데에는 별로 시간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2 42절에는 교회교제의 윤곽과 특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당신은 정상적인 교회교제에 참여하고 계십니까아니면 그저 어떤 집회에 참석하고 계십니까? 유대교에 속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던 초대 성도들처럼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를 살펴 보십시오. 그들은 핍박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사랑했고 성도 상호간에 뜨겁게 사랑했던 것입니다.

 

(197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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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