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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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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5. 10:54 횃불/1978년

주 교사 샘터

41. 사무엘을 부르심

(사무엘상 3)

이 말씀은 사무엘이 구원받게 되는 때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에 앞서 7절에서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말씀은 엘리의 두 아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악인에게도 사용되었다(2:12). 신약시대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라 부르고 있으며 (살후1:8),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과 아신 바되었다고 말씀했다( 4:8,9).

사무엘의 어머니는 참 성도였음을 1장에서 알 수 있으며 사무엘은 그 모친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지만 사무엘은 다른 불신 부모의 자녀나 다름없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알아야만 했다.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회귀하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에게 말씀하신 적이 그때까지 없었다. 그런데 21절에서 주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통하여 자신을 다시금 나타내셨다.

2절에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1 12-14절에 보면 기도하는 여인 한나를 술주정뱅이가 아닌가 생각했던 것도, 213절에서 그의 아들들의 행실을 알지 못했던 것도 시력 때문이었다.

3절에서 여호와의 전이라 했지만 아직도 성막을 사용하고 있다. 성막이 실로에 오래 있었기에 쉽게 그렇게 불려졌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라는 말씀으로 보아 황금 촛대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켜두었으며 제사장들이 정리 했음을 알 수 있다( 27:21).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그런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므로 사무엘이 성막에서 자면서 돌보았던 것같다. 어쨌든 이 구절의 말씀은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증거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10절에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세 번이나 사무엘을 부르셨고 그때마다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을지라도 죄인들을 부르고 계신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들아 보는 자가 없었은즉····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비웃으리라”( 1:24-26)고 말씀하신 대로이다. 거듭거듭 사무엘을 부르고 계심을 주목하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연거푸 부르시는 대목을 종종 보게 되는데 엄숙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신다. 사도 바울이 회심할 때에 사울아, 사울아” ( 9:4)하고 부르셨다. 가시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3:4)하고 부르셨으며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22:ll)하고 부르셨다.

11절에서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말씀하신바 이는 두려움으로 인한 심적 타격과 전율(戰慄)을 의미한다. 엘리의 집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는 열왕기하 21 12절이나 예레미야 19 3절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급하고 있다.

12절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 227절과 36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13절에서도 그가 아는 죄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엘리가 자녀들의 품행에 무관심했던 것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229절에서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라는 말씀과 3 14절에서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대조해보라. 이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서 최초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일부러 하나님의 경고를 불순종하고 용서를 주실 수 있는 희생제물을 인정치 않는다면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2:29) 히브리서 10 29절에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비교해 보라.

19절에 사무엘이 자라며라는 말씀과 2 21, 26절에서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며라는 말씀을 비교해 보라.

그가 전도인이 되기까지 쉬지 않고 성장했던 것이다.

21절에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라 말씀하신 바 이것이 실로에서 역사하신 최후의 기회였다( 7:12참조)

 

(78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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