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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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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0. 22:39 횃불/1979년

엘리사

1장 헌신의 부르심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에게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왕상 19:19).

 

역사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성격을 띠고 위대한 인물이 행해오던 일을 대신한 예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예외였습니다.

엘리사는 보잘것없는 광야의 선지자였던 엘리야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엘리사는 오직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고, 피곤한 엘리야의 발을 씻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신의 사역을 시작한 이후 엘리야보다 두배의 기적을 행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처럼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막한 무덤 속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회생시켰습니다(그는 죽었지만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구약 시대의 인물 중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훌륭한 예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물려받은 후 놀라운 능력을 행했던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도 성령을 받은 후 더 큰 일을 행하도록 요구되고 있습니다.

종은 상전보다 크지 못하며, 그 인격과 품성에 있어서도 낫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 종은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나를 믿는 자는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겉옷을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겉옷은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남겨준 유일한 것이었으며, 엘리사에게 필요했던 것도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주께서도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오순절날 성취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지금 믿는 자 안에 거하고 계시며, 그분은 믿는 자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부르심

먼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부르신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밭을 갈고 있을 때 만났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은 열왕기상 19 192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절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엘리야는 그의 제자들을 부를 때 아주 갑자기 부른 것처럼 보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부른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엘리사에게는 분명한 부름이었습니다.

밭을 가는 것은 재미 있는 경험입니다. 저는 밭갈이에 관해 조금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밭갈이를 배우는 저의 마음은 다소 흥분했었습니다. 저의 부친은 노년에 농사를 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의 부친께서 밭갈이를 하고 계실 때 저는 그곳을 방문했었습니다. 부친께서는 그 일을 하시면서 스릴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 그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단지 쟁기를 잡고 소를 따라가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직접 해 보았습니다.  제가 쟁기질을 하여 생긴 밭고랑 옆에 섰을 때 저는 왜 밭을 갈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밭을 가는 것은 농사에 필수적인 일입니다. 묵혀 두었던 땅을 갈고 경작해야 하는데, 이것은 영적인 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 씨를 뿌려 열매가 맺히게 되고 추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엘리사라는 이름은 나에게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 뜻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구원이 주님께 속한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2 8,9절의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는 말씀을 간증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구속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 여건도 행복한 가운데 살고 있었고 또한 그가 하고 있는 일에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엘리사의 부친은 부유한 농부였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열두 겨리의 소를 책임 맡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열두 겨리의 소가 나오는데 이 열둘이라는 수는 지배(통치)를 의미합니다.

엘리사는 책임을 부여받았으며 그 부여받은 일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이제 더 큰 일을 하라는 부름이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우리가 적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각인을 위하여 각각 봉사의 직분을 마련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동시에 거룩한 봉사를 하도록 부르십니다.

엘리사가 살았던 곳은 아벨므홀라로 해가 뜨는 초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초원은 젊은 농부의 결심과 새로운 날의 새벽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르심에 대한 응답

이제 결심을 하는 엘리사의 내적인 갈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부름받은 엘리사가 취한 반응을 열왕기상 19 20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

엘리사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를 따랐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여러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농부로서 신실한 일꾼이었지만,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엘리야를 따라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는 아가서 14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모든 성도들의 특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사는 지금 떠나기 전에 부모님께 가서 입맞추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집에 가는 이유는 떠나는 것을 허락받기 위함이 아니라 떠나는 준비를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말씀이 당신에게 다소 무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우리는 마태복음 1037절에서 아비나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커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는 주님의 선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역하는 동안에 만났던 두 청년을 알고 있습니다.  한 청년은 농사일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병든 부친을 남겨둔 채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또 한 청년은 미국 선교부의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을 때 병든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이같은 결심에 비난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엘리사가 결심을 하는데 마음에 갈등이 있었을까요? 어쨌든 엘리사는 집에 가서 그의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엘리야의 대답은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였습니다. 이 말은 네가 원하면 현재와 같이 남아도 좋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억지로 순종하도록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헌신하고자 하는 성도에게 네가 원하면 남아도 좋다는 시험의 어려운 말씀을 주십니다. 슬픈 사실은 많은 성도가 그 시험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19 21절에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그의 뒤에 있는 다리를 불태워버려 돌아서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게 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누군가가 엘리사의 결정에 대해 엘리사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버린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헌신에는 확고부동한 것이 보입니다. 그 후 엘리사의 생애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엘리사가 가졌던 확고부동한 신념을 볼 수 있습니다.

 

잔치는 끝났습니다. 엘리사는 다정하게 그의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엘리야를 따라 갔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인 엘리사의 결심을 다음과 같이 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이 말씀은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행한 사역의 풍성을 공부한다면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는 엘리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에게 물을 부어주는 소년이 되었습니다.

알란 레드패스(Alan Redpath) 박사는 부엌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거룩한 봉사가 여기서 하루에 세번씩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는 이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79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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