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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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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2. 06:51 횃불/1979년

성경해석의 원칙(15)

J. E. 하틸

숫자 10

숫자 10은 하나님의 질서에 있어서의 완성 혹은 완전의 수이다. 그것은 완전한 수이며, 하나님의 질서와 인간의 책임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충족의 수이다.

인간의 몸은 두 손에 다섯개씩 모두 열개의 손가락이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의 인간의 책임이 있다. 열개의 발가락은 하나님의 행하심에 있어서의 인간의 책임을 말해 준다.

십계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의 완성을 본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도 그러한 책임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며 구속을 필요로 한다.

구약성경에서( 30:13) 속전(贖錢) 10게라이며, 하나님께 드리는데 있어서 인간의 책임은 십분의 일이다.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완전함은 10가지 재앙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거역의 완전함은 민수기 14:22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노아는 홍수 이전 족장들 가운데 열번째 족장이었다. 성경은 말하기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다.

여러분은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처음 열 족장들의 이름의 의미에서 복음메시지를 발견했는가? 아담-인간, -정해지다, 에노스-죽음에 종노릇하다, 게난-슬픈, 애통하는, 마하랄렐 -하나님의 찬송으로부터, 야렛-한사람이 내려오다, 에녹¬순종을 배움 혹은 연단을 받음, 므두셀라-죽어가면서 그가 보낼 것이다, 라멕-매우 낮아진 가련한 자에게, 노아-안식. 이제 그러한 의미들을 보고 영광스럽게 계시된 복음메시지를 보라. 인간, 정해지다, 죽음에 종노릇하다, 슬퍼하며 탄식하다, 하나님의 찬송으로부터, 한 사람이 내려와, 순종을 배움 혹은 연단을 받음, 죽어감, 그가 보내실 것이다, 매우 낮아진 가련한 자들에게, 안식.

앞 장들에서 우리는 광야의 성막과 관련하여 여러 숫자들을 상고해 보았다. 바깥뜰과 성소를 지나 우리는 지성소, 즉 쉐키나(하나님의 임재를 상정한 구름을 가리킴-역주)불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10규빗씩인 입방체였다. 성막 안의 베실로 깐 휘장은 그 수가 열이었다. 물두멍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열번 언급 되어 있다. 솔로몬의 성전에 대한 설명에서도 이 물두멍이 열번 언급되어 있다. 솔로몬 성전에는 열개의 물두멍이 있었다.

나는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모든 언어에서 동일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이다. 시편 가운데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시편이 열 편이 있는데 이는 그러한 찬양에 있어서의 완전함을 엿보게 한다.

시편 119편에는 도(), 율례, 계명, 증거, 율법, 말씀, 규례, 판단, , 법도 등 하나님의 말씀을 묘사하는 열 단어가 있다. 이 시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구절을 제외하고 모든 구절에 이러한 표현이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구주라는 이름이 우리의 보증으로서 122절에 표현되어 있다.)

바울은 로마서 8:39에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함으로써 성도의 10중적인 안정성을 증거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맺어진 그 위대한 언약에서 우리는 겐, 그니스, 갓몬, , 브리스, 르바임, 아모리, 가나안, 기르가스, 여부스 동 열족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서 숫자 10이 하나님의 질서를 말해준다고 말한바 있는데 질서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 탁시스가 열번만 나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가!( 1:8, 고전 14:40, 2:5, 5:6,10, 6:20, 7:11,11,17,21)

이방 세계 권력의 마지막 형태가 계시록 17:12에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평화의 왕이 오실 때까지는 평화가 있을 수 없을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평화와 완전한 질서의 계획을 세우려고 다시금 애쓰는 인간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경험이 입증하듯이 또 다시 실패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려고 다시 오셔서 예루살랩에 있는 자신의 위()로부터 세계를 다스리실 것이다. 이것이 천년 왕국이 될 것이다. 10X10X10, 다시 말해서 10 3제곱이다. 이것은 언젠가 이 땅에 임할 완전한 질서를 예시해 준다.

 

숫자 11

숫자 11은 무질서와 불완전의 수이다. 창세기 32:22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라. 야곱은 받단아람에서 11명의 아들들과 함께 거룩한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베냐민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의 그의 이름은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시고, 땅 위에서 왕으로 다스리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말해 준다. 베냐민이 야곱의 집을 완전케 하고 아들의 수를 11에서 12로 바꾸기 위해 왔듯이 그리스도의 강림도 현 세계의 무질서와 혼란을, 12가 말해주는 완전한 평화의 지배로 바꿀 것이다. 열두 아들이 태어난 후 한 아들이 팔렸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야곱의 집의 무질서를 보여주는 숫자 11로 돌아가게 된다.

이 구절 및 기타 여러 구절에서 어떻게 숫자 11이 그리스도의 천년통치와 마지막 때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성경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정 시간이 곧 울릴 것이다. 숫자 11은 우리 주님의 만 왕의 왕으로서의 도래를 알리는, 장차 올 무질서를 말해준다. 이 숫자의 숨겨진 예언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또 다른 성경구절로 창세기 37:9이 있다. 요셉의 꿈에 나오는 11개의 별은 유대민족이, 그들이 전에 그들의 왕으로 맞이하기를 거절한 주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아들일 그 때를 가리키는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함과 거역으로 인해 자신의 택한 백성을 이방의 포로가 되게 하셔야만 했다. 그들의 마지막 왕 가운데 둘은 각각 11년씩 통치했는데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한 시드기야와, 하나님의 말씀을 찢은 여호야김이었다. 이 두 악한 왕의 통치가 끝마치자 유대 나라는 거룩한 땅에서 쫓겨났으며 이방인의 때가 시작되었다. 요컨대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가기 시작한 때는 여호야김 11년이었고 그가 그 일을 마친 때는 시드기야 11년이었던 것이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신명기 1:2은 그들이 여행한지 11일만에 불신앙 가운데 등을 돌렸다고 증거하고 있다. 완전한 12일의 여행을 마치지 못한 것이 그들로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도록 했다. 40은 시험의 숫자이며 차후에 살펴보게 될 것이다.

성막의 둘째 휘장은 11(불완전함)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사도행전 서두에 11(불완전함)의 사도가 나오는데 유다를 대신하여 한 사람이 더해짐으로써 그 공백이 채워지게 되었다.

마태복음 20:6-9에서 우리는 제 11 고용되어 그들보다 일찍 고용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갔을 받은 품군들을 볼 수 있는데 그 11 고용된 품군들이 혼란을 초래했다.

성경에서 11번 사용된 단어는 카타볼레프수도프로페테스인데 전자는 기초”, 혹은 문자적으로 던져지다란 뜻이며, 후자는 거짓 선지자로 옮겨진다.

 

숫자 12

이 숫자는 통치적인 완전함 혹은 지배를 말해준다. 섬김, 권 세, 구원 등은 하나의 완전한 통치체제 속에 나타나 있다. 해와 달은 낮을 주관하고 밤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들은 360(30X 12)를 이루는 12()을 통과함으로써 그 일을 행한다.

우리 주님은 12사도를 택하셨다. 그들은 초대교회에 있어 지도자 혹은 다스리는 자였다. 그들은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릴 자들이었다. 즉 그들은 그분의 천년통치 동안 우리 주님의 그러한 완전한 통치와 지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모든 면에서 완전한 다스림을 받을 것이다. 요한의 환상은 열두 문과 문 앞의 열두 천사를 제시해 준다. 그 성벽은 열두 기초가 있고 그 기초 안에는 어린양의 열 두 사도가 있다. 그리고 성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는 1 2천 스다디온이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 열두 영(천사의 권세의 완전함)을 내달라고 구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그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를 예표해 준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역에 열두 방백을 두었으며, 1 2천 마병을 두었다. 우리는 그의 위()와 관련하여 열두 사자가 여섯 계단 이쪽과 저쪽에 있었으니 어느 나라에서도 이와같은 것이 세워진 바 없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30세까지의 활동에 대해서는 12살에 있었던 한가지 일만 기록되어 있는데-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나는 내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정하신 일을 해야 한다고 풀어 쓸 수 있다.

사사기에는(사사는 통치자였다) 열두 사사가 있다. 이 책은 계속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묘사한 배도의 책이다. 사실 열세명의 사사가 나오는데 그 중 아비멜렉은 찬탈자이므로 그 대열에서 제외할 수 있다.

성경에서 12번 사용된 단어는 집 주인, 혹은 집을 다스리는 자를 뜻하는 오이코데스포테스, 법정, 광장, 혹은 궁전을 뜻하는 아울레인데 이 단어는 한결같이 통치 혹은 권위를 나타낸다.

 

숫자 13

숫자 13은 흉조(凶兆), 반역, 배도의 수이다. 그것은 창세기 14:4에 처음 나온다. “이들이 십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앞에서 살펴본 대로 숫자 12는 통치적인 지배를 말해 준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13이 나타나 반역을 입증했으며 통치가 거절당했다. 이 시점에서 시작해서, 그리고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듯이 13은 반역, , 그리고 불순종을 시사한다.

창세기 17:25은 우리에게 이스마엘이 13살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거역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고되었는데 이는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라고 기록된데서 볼 수 있다. 이스마엘은 약속된 후손이 아니라 약속된 아브라함의 번성의 일부였다.

그의 열두 아들을 통한 이스마엘의 후손은 아랍 족속 혹은 민족을 이루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 앞에 거했으며 오늘날까지 그들의 자유를 유지해왔다.

실로 모든 사람의 손이 그들을 쳤다. 애굽이 그들을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아랍 족속은 알렉산더 대제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으며 알렉산더는 그들을 함락시킬 준비를 하던 중 죽고 말았다. 폼페이도 그들을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나폴레옹 조차도 아랍을 정복할 수 없었다.

이스마엘은 여종의 아들이었는데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의 상징으로 그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다시 한번 성령을 난 자에 대한 거역이 있다. 성령과 육신은 영원한 대적으로서 피차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육신은 결코 개선될 수 없으며 성경은 그것을 죽이거나 제거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한다.

한 사람에게 배도가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기 원한다면 창세기 10장을 상고해 보아야 한다. 욕단은 셈의 계보 가운데 열세 번째로 등장하며 그의 열세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는 욕단의 이름의 산술치를 169, 혹은 13x13으로 계산했으며, 그의 열세 아들들의 이름의 산술치는 1756 혹은 212x13이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그분을 거역한 솔로몬은 그 자신의 전의 건축과 관련하여 배도를 범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짓는데는 7(완전), 그리고 그 자신의 전을 짓는데는 13년을 소요했다. 그런 연고로 우리가 열왕기상 11:6에서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 같이 좇지 아니하고라는 기록을 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사기에는 열두 사사가 있다. 그 외에 왕으로 불리운 한 사람이 더 있는데 그는 다름아닌 백성들로 자신을 왕으로 임명하도록 유인한 아비멜렉이란 찬탈자이다. 그 결과 군주국이 생겨 났다. 이같이 사사기에는 의로운 통치와 반역, 혹은 배도가 나타나 있다.

남왕국 유다는 20 왕이 다스렸는데 일곱은 선한 통치자였고 열셋은 백성들로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에스더서에서 제비가 뽑혀진 결과 하만의 사악한 계획으로 말미암은 유대인 멸종일이 12 13일로 결정되었다( 3:7,13)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반역으로 특징지워졌다. 그들 가운데는 열세 지파가 있었다. 우리는 종종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언급하며 가나안 땅은 열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열세번째 지파인 레위지파는 기업을 가지지 못했으며 단지 다른 지파들로부터 적은 기업만을 분배 받았을 뿐이다. 12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통치적인 완전의 수이며 그것은 완전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를 내포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들이 반역하지 않은 대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배도한 민족이었으며, 그들 가운데 열세 지파가 있었던데 비해 항상 열두 지파만 열거된다(비록 항상 동일한 열두 이름은 아니지만).

신명기 14:7-19에 주어진 이스라엘의 음식법은 그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26가지(2X13) 부정한 음식을 열거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26번째 책인 유다서는 배도자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다.

마가복음 7:21, 22은 배도자의 13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계시록에서 사단은 큰 반역자로 13번 불리운다.

애곡을 뜻하는 힌놈의 골짜기 13번 언급되어 있다. 바울은 39(l3X3)의 매질을 당했다.

예수께서 팔리시기(혹은 배반당하시기) 전날 열세명이 식탁에 둘러 앉았다. 후에 유다가 밖에 나가 예수님을 팔았다. 열두 명은 사랑 안에서 연합되었으나 열세번째인 유다는 그들 모두에게서 분리되어 있었다.

성경에 열세번만 언급되어 있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다이아노이아”(마음), “엠파이조”(흉내내다), “클렙토”(훔치다), “차네프”(위선자), “메슈바”(타락 혹은 침체).

사단의 대부분 이름은 산술치가 13의 배수이다. “”-975(75X13), “시험하는 자”-1053(81x13), “벨리알”-78(6x13), “살인자”-1820(140x13), “”-780(60X13), “마귀와 사단으로 불리우다는 문구는 산술치가 2197(13X13x13) 이다.

어떤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조롱조로 그분에게 붙여진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 이름은 산술치가 2197(13x13X13)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절정에 이른 반역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가 죄 없으신 분께 지워졌고 사단은 그분을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단을 기뻐 어쩔줄 모르며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단은 성경을 알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후손들을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저가 다른 사람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는 십자가 곁에 있던 무리들의 외침은 사단이 입에 넣어준 말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송사를 받아들여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속의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숫자 17

이 숫자는 영적인 완전 혹은 영적인 질서의 완전을 말해준다.

이것은 두 완전수 10 7의 합계이다. 이것은 어떤 수의 배수가 아니다. 이것은 나눌 수 없는 수, 즉 소수(素數) 이다. 일곱가지 소수는 1, 3, 5, 7, 11, 13, 17 등이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한 자들의 17가지 축복들을 요약해 준다. 여기에는 7개의 질문 부분과 107R의 대답 부분이 있으며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7중적인 질문과 내가 확신하노니 라는 10중적인 대답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질서와 권능의 완전,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영적이고 영원한 완전을 말해준다.

7 10이 함께 사용될 때는 10 7보다 더 비중이 있는듯이 보인다. 역대하 2장에서 솔로몬은 일곱가지 재료를 사용할 줄 아는 공장(工匠)을 보내달라고 청했으나 히람은 열가지 재료를 사용할 줄 아는 공장을 보내었다. 솔로몬은 일곱 부분에 능숙한 사람을 구하여 열 부분에 능숙한 사람을 얻은 것이다.

히브리서 12장에는 일곱으로 특징지워진 옛 세대와 열로 특징지워진 새로운 세대가 대조되어 있다.

시면 83:6-11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동맹한 열 나라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멸절당한 일곱 대적을 언급하며 하나님께서 그 멸절당한 일곱나라를 기억하사 앞의 열 나라도 멸해달라는 기도를 덧붙이고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천사의 나타남이 17번 기록되어 있다.

오순절날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강림한 증거로 17가지 방언이 행해졌다( 2).

예레미야 1-30장에는 예레미야의 17가지 기도가 나오며, 그 후로는 갑작스레 침묵이 이어진다.

17번 사용된 단어들은 이러하다: 카리스마-”은사”, 항상 하나님의 은사(혹은 선물)를 가리킨다, 케담-”성경”, 구약성경에 17번 나온다, 아가페-”사랑”, 요한일서에 17번 나온다: 아페시스- “용서 혹은 면죄”, 신약성경에 17번 나온다. 이것은 중요한 단어로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거절하면 그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이 은혜의 시대에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 오래 참고 계신다.

 

숫자 40

숫자 40은 시험과 시련의 수이다. “40”의 의미는 그의 동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라는 부름을 받은 모세의 생애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애굽 땅에서 40, 광야에서 40,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40년을 소요했다. 그는 처음 40년 동안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다음 40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리고 마지막 40년 동안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울은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선택될 만한 인물이었는지를 시험하는 40년의 기간을 보냈다. 40년 동안 그는 백성들과 사무엘과 다윗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죄를 범하고 말았다.

아마 그의 열매 없는 삶은 그의 속에 한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었던데 연유한 듯하다. 즉 그는 사무엘의 사역에 대해서 아는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가 모든 종교적인 일을 떠나 세속적인 일을 즐기며 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왕에게 요구되는 한가지 자질은 하늘 왕께 대한 충성심이었다. 이것은 사무엘의 삶의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의 그러한 훌륭한 자질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창세기 7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숫자 8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방주에서 나온 8명의 부활에 대해서 살펴본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때 40주야 동안 땅에 비가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모세는 율법을 받기 위해 40일간 산에 올라가 있었다. 정탐꾼들은 40일간 가나안 땅을 탐지했다.

요나는 불순종하여 여호와의 낯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 그는 니느웨성에 들어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다.

우리 주님은 40일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분이 받은 시험은 이브에게 제시된 것과 동일한 성격의 시험으로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및 이생의 자랑에 대한 것이었다. 사단은 오늘날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간 이 땅에 계셨다. 십자가 사건이 있은지 40년 후 예루살렘의 멸망이 찾아왔다. 아담 이후 40세기가 지나서 비로소 때가 찼다때가 차게 되자 세상은 시험을 받았다. 이미 인간은 실패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양자의 신분을 얻게 하시기 위해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서 나신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그분은 영원에서 온 아들이셨으며 우리는 시간 안의 아들들이다. 그분은 영원의 회의에서 보내진 공식 사절이었다. 전능하신 분께서 무력한 자들에게로 내려오신 것이다.

 

(79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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