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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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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2. 06:49 횃불/1979년

千 형제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28:19,20).

형제를 영원토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럼 없이 형제라 부르겠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모두 한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거리낌 없이 우리들을 가리켜 형제라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2:11,12).

그러기에 주님께서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3:8~10). 이제 형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권속이며 하늘시민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과 제사장이 되었으매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주님을 받는 자들에게는 수없이 많은 축복과 특권을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주신 특권은 우리의 본분과 사명을 깨닫게 해줍니다. 자녀에게 있어야 할 순종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이 있으며 왕으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하며 제사장으로서 다른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며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보존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이제 형제에게 있어야 할 최초의 순종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1. 세례는 친히 우리 주님께서 본으로 끼쳐 주셨고 부탁하신 예식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하셨을 때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발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하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요한에게 요청하셨습니다.

2. 세례는 사도들이 주님의 분부대로 행했던 예식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2:41)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8:12)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8:3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 9:18)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16:15)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기뻐하니라” ( 16:33).

그러므로 구원을 받고 주님을 순종하여 섬기고자 하는 성도에게는 주님의 분부를 좇아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물론 세례가 구원받은 성도의 간증이지 세례가 구원의 조건 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거듭거듭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가복음 16 16절의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는 말씀을 들어 세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주장하지만 문맥상 이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당연히 따르게 될 최초의 순종으로 세례를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파하셨고 형제도 회개하고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확신했을 것에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세례의 방법에 있어서도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예외 없이 침수 세례만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1. 예수님께서도 침수 세례를 받으시고 침수 세례를 분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3:16,17).

2.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도 침수세례였습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물들이 많다는 말씀이 접시의 물이나 대접의 물을 가리키지 않고 있음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3. 제자들이 베푼 세례도 침수 세례였습니다. 앞서 인용한대로 사도행전에는 수많은 침수 세례의 실례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은 빌립보 간수의 경우나 고넬료의 경우에는 침수 세례가 어려웠으리라고 막연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형제는 명백한 사실을 젖혀 놓고 불명확한 추측으로 말씀을 거역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했던 빌립은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의 믿음을 검토한 후에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습니다.

다음으로 언제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지는 형제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전에 언젠가 형제는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거나 구원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고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던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확실히 구원을 받은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이지 교회생활의 연한(年限)이나 연령이나 학력이나 학식이나 사회적 명성 지위 등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빌립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줄 믿노라는 상담을 통하여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의 믿음을 확인한 즉시 세례를 주었던 사실을 형제에게 적용되는 전례입니다. 형제가 세례 받고자 형제들에게 요청하면 그들은 형제의 믿음에 관해 듣기를 원할 것이며 또 물어 보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확실히 분명하고 주님의 예식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1 17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세례를 무시하거나 경시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바울은 누가 세례를 주는가 하는데 대해서 벌로 관심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세례의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데 권위가 있는 것이며, 순종의 첫 발자국이라는 점에 뜻이 있을 뿐입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요한은 세례 요한이라 불려졌으며 주님께서 세례를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시에 있었지만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4:2).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세례를 주라고 다른 형제들에게 말했고 자신의 열매라 해서 자신이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례의 인간적인 권위를 강조한 나머지 교회 분열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전 1:13~16)고 증거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사실을 통하여 언제 어디에서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 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이처럼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세례는 장례식을 상징하는 것임으로 침수 세례이어야 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3,4).

형제여 세례는 구원 얻은 자에게 당연한 순종인 동시에 이를 계기로 자신의 부귀영화와 향락을 위하여 살려던 욕망은 옛사람과 함께 장사 지내고 오직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서 살아가겠다는 결정이며 서원입니다. 그런데 누가 죽은 자를 장사한다면서 묻지 않고 흙을 한줌 주검 위에 뿌려준 채 내버려둔다면 이를 장례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수장(水葬)해야 할 옛사람에게 물 몇 방울을 떨구고 끝난다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입니까?

2. 세례(洗禮)라는 낱말이 마치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예식을 의미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 원어에서 물을 뿌리는 경우에는 Rantizo Proschusis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물에 잠기는 경우에만 Baptism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낱말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세례는 침수 세례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침례 또는 침수례라 번역해야 옳을 것입니다. 물론 한 낱말로 세례가 의미하거나 교훈하는 바를 다 표현할 수는 없으나 어원으로 살펴 보건대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이 확실합니다.

3. 역사적으로 세례가 오늘날처럼 성경의 가르침에서 빗나가게 된 데에는 주님께로부터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세 암흑 시대는 젖혀 두고 소위 종교 개혁을 주도했던 위대한 인물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이 완전히 물속에 들어 갔는지 그리고 한번 또는 세번씩이나 그렇게 했는지 그리고 단지 물로 뿌림을 받기만 했는지의 문제들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Baptism이라는 말이 물속에 잠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세례는 초대 원시교회들이 사용하던 형태인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교회는 기후의 다양성에 따라 이중 어느 형태의 세례를 행하느냐 하는 데에는 자유다”(죤 칼빈).

이것은 세칭 위대하다는 사람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 후에 침수 세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의논하러 모였던 대표들이 표결한 결과 공교롭게도 찬반 동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의장은 물뿌리는 세례로 결정해 버렸고 이것이 말씀을 불순종하게 된 내력 중 일부입니다. 이 어찌 표결로 결정할 문제이며 어떤 사람의 견해로 정할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모든 인간적 유전과 계명은 무효일뿐더러 죄악으로써 공의의 하나님께로서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천만인이 이 말씀을 업신여기고 거스려 순종치 아니할지라도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결의로 순종의 첫 발자국을 힘차게 내디디고 주님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4)하신 주님께서 형제 한 사람의 순종을 순종치 않는 1.000사람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79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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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