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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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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3. 09:35 횃불/1980년

엘리사

 6장 작은 방과 큰 생명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이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왕하 4:9,10).

 

엘리사는 항상 암담한 가운데 천사의 음식만 먹고 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왕기하 4 10절은 대단히 실질적인 필요에 직면하는 평범한 인간인 엘리사를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수넴의 귀한 여인

엘리사는 자주 수넴에 있는 한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어느 날, 이 가정의 부인이 남편에게 은밀히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라 하였더라.”

엘리사는 그 가정을 자주 들렀습니다. 그 가정에서 마련해 준 방의 가구는 별로 없었지만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엘리사는 그 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침상에 누워 잠을 잤을 것입니다. 그 방은 안식의 장소였습니다. 여행에 피곤하고 지친 몸에 새로운 힘을 공급하기 위해 침상에서 안식을 누린 곳입니다.

성경은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4:9)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죄의 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앞에 우리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고자 하는 짐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짐을 벗고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언했습니다.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57:20,21).

제가 소년이었을 때 저는 종종 큰 호수가에 있는 나무로 만든 방파제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거기서 방파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조각이 물결에 의해 끊임없이 요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후에 제가 이사야 57 20,21절을 읽을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평강도 알았으며, 그 이후에 누릴 평강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른 안식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11:29).

죄인이 구원받는 순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도 항상 평강이 있습니다. 엘리사의 생애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그가 영혼의 평강과 마음의 평강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그의 평강을 빼앗을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줍니다.

지금 하늘에 계시는 저의 어머니는 여러해 동안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 제가 어린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종종 걱정하고 두려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생애에 대단히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으며, 그렇게 하심으로 성령으로 충만된 생활을 하셨습니다.

엘리사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엘리야도 적어도 한번 이와 같은 안식을 배워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달려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낙담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여기 작은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엘리사를 보십시오. 그러나 그 방에는 침대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안에는 다른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책상과 의자였습니다. 이것들은 영적인 양식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기적적인 사역을 했던 엘리사는 성령님의 능력을 알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4:4).

예수님은 친히 이러한 원칙하에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자신의 마음 안에 말씀을 간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말씀을 자유롭게 인용하실 수 있으셨으며, 아버지의 말씀 안에서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엘리사는 이러한 능력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여러번 우리는 엘리사가 권위와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단순한 믿음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이었습니다. 엘리사의 놀라운 믿음이 남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여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엘리사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과 모든 질문의 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사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기대하거나 목적없는 일에 열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모든 발걸음을 믿음으로 내디뎠으며,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길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성경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수넴에 살았던 사랑이 풍성한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를 위하여 촛대를 제공했습니다. 촛대의 영적인 의미는 증거의 능력을 말해 줍니다.

이 방에 어두움이 드리워질 때, 촛대는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촛대를 제공했던 이 여인은 새벽의 여명이 밝아올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크게 기뻐했습니다.

 

어린 아이를 안으리라

냉수 한 컵이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보상해 주시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위해 방을 제공한 여인을 그대로 놔두실 리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구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여인은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에게는 더 큰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사환인 게하시를 통해서 이 여인의 소망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 여인은 좋은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과 그녀를 기쁘게 해 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은 늙었으므로 아이를 가질 소망을 포기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불러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돌이 되면 아들을 안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돌이 돌아오매 아들이 태어났고, 이 가정은 주님이 주신 선물로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길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하루는 추수하는 아버지를 보기 위하여 들로 나갔습니다. 아마도 아이의 머리털이 다 나기 전에 성급하게 햇볕을 쪼이게 한 것 같습니다. 열왕기하 4 19절에 보면 아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내 머리야, 내 머리야하고 외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아이를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가서 낮까지 무릎에 앉았다가 결국 죽었습니다.

이 아이의 죽음은 이 가정과 어머니의 마음에 있었던 빛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후, 이 여인은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이 여인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엘리사의 피곤한 몸을 쉬게 해 주었던 이 침대가 이 여인에게 큰 믿음을 덧입혀 주고 있습니다.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왕하 4:25).

엘리사는 그의 사환에게 여인에게 달려가서 저를 맞아 합당한 안부를 묻게 했습니다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수넴 여인은 평안하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작은 방에서 헛되이 살지 않았습니다. 엘리사의 생명의 빛은 계속 비취었으며 이 여인은 그것을 보았고 믿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작은 방은 죽은 아이가 누워있는 어두운 방이었습니다. 죽음과 어두움이 함께 언급된 성경 말씀을 상고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4:16).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의 지팡이를 주면서 가서 그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지팡이처럼 생명이 없었습니다.

엘리사와 여인이 도착했습니다. 엘리사는 곧 습관대로 정든 방으로 가서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만 하고 중단합니다. 그들은 마치 주님! 주님의 부드러운 손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에게 펴소서라고 계속 기도했던 어느 그리스도인과 같은데, 그 후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공중기도 시간에 그같은 기도를 하다가 멈추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주님께서 방금 나에게 내가 주님의 손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엘리사는 일어나서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위험한 가운데 빠진 사람의 입에 입을 대고 인공호흡을 시킴으로써 그가 살아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인공호흡을 경솔히 생각하고 있으나 여기에서 마땅히 교훈을 받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죄인과 자리를 같이 하셨으나 그들로부터 분리되셨습니다. 여기에 영적인 능력의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촛대에 불을 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14절에서 외쳤습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

그 방은 작은 방이었지만 빛나고 있었으며 또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1980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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