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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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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4. 21:21 횃불/1980년

엘리사

8장 하나님의 사람의 표적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 5:2,3).

 

엘리사의 생애는 변화의 역사로 가득했습니다. 엘리사는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했으며 불쌍한 과부와 그녀의 가족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살려야 했으며 흉년이 든 땅에 가야만 했었습니다. 지금 엘리사는 소망없는 문둥병자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표적을 보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

이 이야기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집에 사로잡혀온 계집아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로잡혀온 계집아이의 주인은 크고 존귀한 자였지만 슬프게도 문둥병자였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왕하 5:1).

포로로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는 크고 존귀한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드는 비천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계집아이는 자기 여주인(나아만의 아내)의 얼굴에 있는 근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으며, 나그네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이 아이는 어느날 주모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 5:3).

이 아이는 이 질병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그것이 그 당시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죽음의 병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믿었습니다. 엘리사에 대한 이 아이의 확신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본래 우리를 신학자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사업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사회사업가로 알려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죄의 상징인 문둥병자의 치료자로서 알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처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처방법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구원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은사와 직분은 별로 가지지 못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표적은 소유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보았을 때 이것을 실증했습니다. 베드로는 외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그 앉은뱅이는 곧 나음을 입었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미 했습니다( 3:110).

당신은 아마 베드로였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남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높고 거룩한 부름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충만할 수 있고 영혼의 승리자로 알려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누군가가 계집아이가 말한 것을 듣고 그의 주인인 나아만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아람 왕에게 전달되었고 그 왕은 나아만을 이스라엘 왕에게 보냈습니다. 아람 왕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왕의 글과 예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궁에 도착했을 때 나아만은 자신이 잘못 찾아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 글을 읽자 절망 가운데 옷을 찢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 자신이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어찌하여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

이 질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죽일 수는 있지만 살리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엘리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이 자신의 삶의 본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한 선교사가 57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하인즈(Heinz)씨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것도 안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하인즈 씨는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그는 자신이 참석했던 은행 이사회에서 그 옆에 앉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 옆에 앉았던 사람은 당신이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전에 이야기해 주시지 않은 것이 이상하군요.”

그것이 하인즈 씨가 많은 영혼을 인도했던 첫번째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문둥병자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치료법을 알고 있습니다.

왕이 크게 낙담하고 있는 사실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보내어 말했습니다.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그 말은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자만이 없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사람에게 나타내줍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이 말한 사람은 엘리사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있는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만이 아닌 성령의 충만이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된 사람들만이 감히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과 같이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본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거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엘리사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똑 같은 확신의 스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에 대한 모든 질문의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둥병이 깨끗해진 나아만

! 우리는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지시하는 것을 살펴봅시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

이것은 구약시대에 있어서 구원에 대한 상징적인 교훈입니다. 요단강은 죽음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침례는 그가 십자가에서 경험하실 죽음의 세례에 대한 하나의 그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니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영적인 문둥병자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서만 치료가 가능합니다.

엘리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믿었습니다. 엘리사는 또한 나아만이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문둥병이 치료될 것을 약속했을 뿐 아니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구속의 경험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문둥병자가 온전히 깨끗함을 받은 것과 같이, 영적인 문둥병자도 그리스도에 의해서 온전히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그의 몸을 요단강 물에 일곱번 담갔을 때 그의 살이 어린아이와 같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나아만은 깨끗해졌던 것입니다.

왜 나아만은 일곱번을 담갔습니까? 성경에서 일곱(7)은 완성 혹은 완전의 수입니다. 나아만은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나아만은 분한 모양으로 떠났습니다. 엘리사의 처방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노하여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물론 아마나와 바르발 강물은 요단 강물보다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물은 나아만에게 필요한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게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드디어 요단 강물에 몸을 담갔고 그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아만은 너무 감사해서 엘리사에게 예물을 받아달라고 구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행하는 품위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엘리사는 예물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가 이 대화를 듣고 후에 돌아가는 나아만을 좇아가 길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게하시는 그의 주인에게 두 생도가 왔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가져왔던 예물 중 일부를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게하시는 그것을 자신이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사환의 죄를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왕하 5:26).

바울이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기 전이었지만, 이미 엘리사는 감독(혹은 하나님의 사람)은 부정한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된다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유혹의 덫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 이제 우리는 왜 포로가 된 계집아이가 문둥병에 걸린 자기 주인이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만나기 원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80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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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