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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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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8. 12:16 횃불/1981년

신앙생활의 적신호

-이 춘 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우리에게 평생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해지기를 염원하고, 하나님의 교회에 덕과 유익이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면서 동분서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게을러 아무것도 안하면서 말만 많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채찍이 임하는 것처럼, 반면에 너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보면 본의 아니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의()를 내세우면서 자기중심주의(自己中心主義)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오기 쉬운 위태로운 상태이고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적신호(赤信號)입니다.

사실 훌륭하고 진실한 운전기사는 아무리 바쁘고 급해도 일단 적색 신호가 켜있을 때는 절대로 앞으로 직진하지 않습니다. 운전사가 교통법을 잘 지켜야 되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생명의 말씀대로 믿고, 지키고, 순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지옥에 갈 불신죄인들처럼 언제까지나 육적으로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아무리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희생적인 봉사로써 충성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슬리면서까지 인간의 생각이나 방법까지 동원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의하라. 정지하라. 하고 위험성을 경고 하는 적신호가 들어 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행위로 끝나는 어리석음입니다,

첫 출발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잘 시작이 되었으나 그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은혜의 주님이 저희 육신적인 시야에 희미하게 보일 때는 사람을 중심하게 되거나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게 되고 자신의 업적을 크게 나타내려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1 17절의 말씀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하는 것만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참 본질이요, 선한 방법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어디까지나 믿음으로만 시작이 되고 믿음으로만 진행이 되고, 믿음으로만 마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믿음으로 선한 일에 이바지하고, 믿음으로 그 나라에 들어갑니다.

만일 우리가 갈라디아주의에 빠지게 되면 비참하게도 믿음으로 시작하였다가 행위로 마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환언하면 은혜로 시작하였다가 율법으로 마치는 것이요,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3:1~5).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아무리 할 일이 태산 같고 급해도, 비록 주님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떠났을 때는, 붉은 불이 켜졌을 때는 절대로 그것을 무시하고 육체의 행위대로 질주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가 되고,또 주께서는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하는 지나친 충성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육체적인 일들은 종국에 가서는 자신과 교회에 쓴 뿌리가 되고 누룩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비극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믿음과 성령님의 역사를 육체적인 노력으로, 율법적인 행위로 대치하려는 인본주의입니다.

만일 인간 본위주의에 계속 머물면서 그것을 신으로 대치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고전 16:22절 참조)

오직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내지교회생활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만이 그 시종(始終)이 가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초부터 은혜의 믿음으로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을 좇아 자유롭게 행할 때 복음적인 승리의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묵은 누룩이나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은 다 내어버리고 오직 순전하고 진실한 떡 곧 유월절 양 되신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전한 구속과 그 은혜를 믿는 믿음 하나로만 살아가십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63).

 

둘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온전히 자아 처리가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곧 그리스도인이 완전히 그 몸과 영혼 그 정욕과 자기의지가 완전히 죽지 않았을 때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청신호가 들어와서 모든 것이 은혜스럽고 기쁨으로 찬송하면서 무난히 천성을 향하여 달려 나아갈 때도 있습니다마는, 때때로 자기의 육체가 죽은 상태에 있지 않고 그대로 육적으로 살아 움직임으로서 자신과 이웃에게 분쟁 불화를 가져오고, 사랑스런 가정과 거룩한 교회에 암초가 되고 가시 노릇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5:24).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2:20).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희생 당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이미 죽었고 또 나도 이미 죽었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사로잡거나 정죄할 수 없고 나도 세상에 대하여 매력을 느껴 그것과 더불어 동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6:14)

사실 속죄함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다 온전히, 영원히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한바 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이미 다시 완전히, 영원토록, 일시에 살아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죽었고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고 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2:12, 3:1~4).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도 역시 그와 함께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은 자입니다. 동시에그리스도의 다시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대하여 의롭게 살아난 자입니다( 6:1~11).

그리스도인은 죄인이 아니고 죄에 거하는 자가 아니며 육신대로 사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때때로 육체의 소욕과 그 일들이 나타나는 것은 성령님을 좇아 성령님으로 행하지 않고 육신을 좇아 육신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거듭나는 내적인 변화가 분명히 없이 말로만 구원 받았다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것은 먼저 그 개인의 생명을 위하여 지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성령님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심을 입은 이후에 계속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계속 거룩한 생활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신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지극히 무익한 사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육이 완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그리스도인이나, 또는 육이 죽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영적인 생활을 등한히 여기고 도리어 자기본위주의로 살아 가는 육신적인 사람들을 들어 쓰지 않으시고 낮추시고, 계속 죄 중에서 교만히 행하면 그 사람의 영혼을 불러 가시기까지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적으로 행하면서 어찌 영적으로 쓰임받기를 기대할 수 있으며, 세상의 술취함과 혈기와 분노와 훼방과 비난과 음란과 탐심과 온갖 누추한 언행심사와 열매없는 어두운 일에 참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과 하나님의 거룩하신 교회를 돌아보리요!

- 이 형제가 채찍을 맞음이여! 이 부정한 자식이 부정한 무리 중에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도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육을 좇아 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육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지만 성령님으로서 육신적인 행실을 죽이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8:12,13).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5:14).

 

세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주의해야 될 적신호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에 대하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어도 실제적으로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으로 인도하심을 받거나 충만하심을 체험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적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또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속에서는 결코 신령하게 역사 하실 수가 없는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많은 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내재와 인도하심, 그리고 역사하심 내지 충만하심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구원을 받고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믿어 내려온 신자들 중에서도 간혹 이 성령님에 대하여 많은 오해와 무식과 범죄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성령님은 곧 하나님이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성령님을 받으려면 40일 금식 기도를 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고 십계명을 잘 지키거나 도덕적인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에베소서 1 13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대로 믿을 때 약속된 성령님으로 안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과 성령님을 받는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요 그 순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그리스도인이 정말 구원을 받았다면 계속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견지할 때 특히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찾아볼 때 초대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오직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성령으로 기뻐하고, 성령으로 교통하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사랑으로 교제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고, 진리의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의 생각으로 행하고····

이렇게 사도시대 초대교회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전부가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에 의하여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히 성령님으로 거듭난 후 성령님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성령님으로 거듭난 후 성령님을 좇아 성령님으로 사는 생활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전부입니다.

구원의 복음 곧 생명의 말씀대로 믿으면 성령님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순종하게 되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만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16:13).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교회와 생명과 본향과 구원과 신령한 것과 은사와 선한 일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인 것과 같이, 우리는 매일 매시간을 성령님의 안도하심을 좇아 행해야 하고 또 우리의 온 인격과 영혼이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 순종할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간절히 사모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론으로 끝나거나, 몇 장 몇 절을 외우는 것으로 끝나거나, 사람들 앞에서 겉으로만 좋게 보이거나, 개인 기도가 없거나, 선한 눈물이 없거나, 주님과 조용히 사귀는 시간이 없거나, 형제의 권면을 멸시하거나, 자기 주장과 계획과 배명에 바쁘거나 하면, 이미 신앙생활에 위험한 적신호가 들어 왔다는 증거입니다.

이상 세가지 사실, 곧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행위로 끝나는 어리석음, 자아가 완전히 죽지 않고 육신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그러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충만하심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결여 되어 있는 것은 이마 적신호가 밝히 켜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이 붉은 불이 들어온 것을 보고도 그냥 무시한 채 그대로 질주하는 운전기사가 있다면 그는 곧 큰 교통사고를 내고 자신과 시민들의 생명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 내 형제여!

전방을 보십시오.

그리고 좌우를 살펴보십시오.

지금은 이미 적신호가 켜 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마십시오.

- 운전기사여!

더 이상 졸지 마십시오.

도취된 상태에서 깨어 일어나십시오.

우리는 이미

자기의 의와, 계획과, 업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쓰레기통에서 깨달았습니다.

- 사랑하는 이여!

이사야에의 화젓가락이

내입에 닿았고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가 자식을 낳고 말았으니

예레미야의 눈물을 흘리며

애가(哀歌)를 부름이 당연하외다.

- 나의 친구여!

죽음의 고개 저 넘어

마가의 다락방으로 갑시다.

거기에 성령님의 불길이, 충만하심이

훨훨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대와 나를 위하여…..

일어나십시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렀습니다.


 

 

(1981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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